별로 장식된 방 안에서 우주인 헬멧을 쓰고 점프를 하는 소년을 보여주며 시작되는 이 영화는 인간관계의 우주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동시에 선천적인 장애로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소년을 중심으로 가족, 친구, 지인들의 태도와 관계 변화에 주목하는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룸>에서 성폭력 납치 피해자의 아들 역으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던 제이콥 트램블레이가 주인공 어기 역으로, 헐리웃 로맨틱 코미디의 살아있는 전설 줄리아 로버츠가 엄마 역으로 나와 예고편이 처음 공개되자마자 크게 주목받았던 <원더>는 따뜻한 헐리웃 힐링 무비였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1년에 3~4편 정도 기획되어 나오는 전형적인 헐리웃 가족 영화, 그 이상은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주인공이자 극의 화자로 나서는 류의 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보 같은 실수는 어린이를 애늙은이로 설정하는 것이다. 애늙은이 캐릭터는 등장인물들 중 가장 어리지만 행동과 생각은 가장 성숙하고 다른 어른들에게 조언 및 훈계를 한다. 어린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것이 핵심인 영화가 애늙은이 설정을 하게 되면 어린이의 진짜 순수가 아닌 어른의 가공된 유사 순수를 얻게 된다. 많은 영화들이 (별로 웃기지도 않은) 개그를 위해 이 같은 설정을 남발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원더> 역시 같은 실수를 범한다. 초반 어기가 처음 학교에 가서 3명의 친구들을 만나는 씬에서 이런 대사를 한다. "나는 어른들을 만나는 게 더 좋다. 아이들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솔직한 대사이긴 하지만 철저히 어른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대사다. 아무리 빡센 홈스쿨링을 받았고 전교에서 과학 1등을 할 정도로 똑똑한 아이라 하더라도 10년간 집에서만 살아온 10살짜리 어린이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기엔 너무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원더>의 주인공은 어기이지만 2시간 동안 어기의 시선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각각 파트를 나눠서 어기의 누나, 엄마, 친구, 누나 친구의 시선을 빌려 각자의 삶 속 인간관계의 변화와 성장을 보여준다. 하지만 역시 타인의 시선이더라도 주인공 어기와 접점이 있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 과정 전체가 우주를 동경하는 소년, 어기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성의 법칙을 설명하는 과학 수업 씬 바로 뒤에 부감으로 우두커니 혼자 교실에 앉아 있는 어기를 화면 중심에 배치하고 정신없이 움직이는 아이들을 측면에 배치함으로 어기의 외로움과 공전 컨셉을 결합해 인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연출도 있었다. 초반에 이런 흥미로운 연출과 컨셉들을 뒤로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영화는 지루해진다. 영화가 인물들의 관계 변화와 태도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그 변화 과정에는 둔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몇 달 간 어기와 별말도 섞지 않았던 썸머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침 절친과 절교한 어기에게 접근한다던가, 어기의 누나 비아와 친구 미란다의 소원해진 관계가 뜬금없이 회복된다던가, 어기를 괴롭히던 친구들이 갑자기 어기를 위기에서 구해준다는 식으로 관계 회복과 성장의 결과는 보여주지만 그 과정은 전부 생략되거나 대충 넘어가 버린다. 성장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성장의 과정은 생략한 체 결과만 보여주는 것은 반쪽짜리 성장 영화에 머물겠다는 선언이다.
이 영화는 착하다. 착해도 너무 착하다. 심지어 악역으로 나왔던 아이들도 후반에는 기꺼이 어기의 친구가 되어주고 반성하는 모습도 보인다. 어설픈 권선징악 이야기도 당연히 껴있다. 이 유치한 권선징악 이야기에서 그나마 돋보였던 점은 선이 악을 훈계하고 일갈하는 일명 '사이다' 장면은 없었다는 점이다. <원더>의 인물들은 대부분 너무나 착하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의 '고민'이 발생할 틈이 거의 없다. 그 틈을 '이해'로 얼른 덮어 버리기 때문에 관객은 그저 천사 같은 인물들의 친절을 눈물 글썽이며 구경하면 되는 것이다. 그나마 반쪽인 성장영화를 다시 반을 접어 반의반의 성장영화로 만들어 버리는 부분이다. 이 따뜻한 영화를 보고 진짜 현실에서 성장하길 기대하는 건 어쩌면 '원더', 기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그나마의 온기를 유지하는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 덕분일 것이다. 특히 엄마 역의 줄리아 로버츠는 단연 돋보인다. 어기를 처음 학교에 등교시킬 때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는 표정, 어기가 처음 사귄 친구를 집에 데려와도 되냐고 물을 때의 표정은 그 어떤 대사 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룸>에서 연기 천재라 불렸던 제이콥 트램블레이 역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줬고 아빠 역의 오웬 웰슨도 자칫 뻔하고 유치할 수 있는 대사들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하지만 영화에 진짜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주인공은 배우가 아닌 감독이다.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다음 영화는 성장을 '연기' 하지 않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