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상급종합병원은 '수많은 인력'이라는 징점을 갖춘 채 나를 잡무에서 벗어나 널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대부분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었었다.
(혹시 다른 상급 종합병원은 이렇지 않은 곳도 있으려나)
사실 이 때문에 한 번씩 간호사 커뮤니티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간호사한테 blood culture 시키는 병원, 저는 이미 신규 때 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컸어요' 'ABGA, 그거 간호사가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오버타임 수당? 그런 거 주는 곳이 있나요?' '병원 청소 제가 다 합니다' 'NOD, EOD, ED 저희 병원은 매일 있는 근무푠데요?' 'DDDDNNN 근무표 실환가요?'
'기본급 140도 안 돼요' 이러한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병원이 얼마나 되겠어?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2차 병원에 응급실에 입사하고 나서 안 것은
저 것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물론 이 병원에서 저기에 적힌 예시에 모두 해당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되는 것도 있고 여기에서조차 저렇진 않다 싶은 것들도 있다.
일단 새로 들어온, 작은 도시의 유일한 종합병원 응급실의 특징이 있다.
이 병원 퇴사 할 때까지 천천히 하나씩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봐야겠다.
이 이야기는 간호사라는 직업에 청춘을 바치기 시작한 나의 자서전이자 이 시대 직장인의 소소한 일상이 되겠다.
먼저,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시골 종합병원에 대한 경험을 간략하게나마 들려주고 현재의 나를 만들어준 첫 병원과 현재 병원의 나를 들려주고 싶다.
이럴 수가, 노인 환자가 80% 이상이다
대한민국은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이다. 이로 인해 의료 환경도 과거와는 매우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물론 나는 작년인 2023년부터 간호사 생활을 시작하여 이러한 급 물살을 확연히 느끼진 못했겠지만 3차 대학병원마저도 응급실 내원환자의 60% 이상이 60대 이상의 중장년 및 노인환자들이라는 것만 봐도 분명 대한민국은 노인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결혼해서 29년 인생 단 한 번도 발을 들여보지 못한 지역으로 이사와 해당 지역에 유일한 종합병원에 입사한 뒤로 이러한 초고령화 사회 문제는 피부로 와닿게 되었다.
일단 이 병원은 80년 돈가 90년도에 개원했고 현재 GS, OS, MED, NS, NEU, GY, EM을 보고 있으며 나는 EM 소속의 응급실(ER)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실 이직 할 때에도 내가 첫 부서가 응급실이라 병동 가기가 무서워 또다시 응급실 입사를 희망하였던 것도 있다. (믈론 간호부장님이 흔쾌히 응급실로 배정해 주실줄은 몰랐다)
여기는 밭농사, 논농사, 과수원, 하우스 등 오만가지의 농사를 짓는 지역이라 참 다양한 환자들이 온다. 벌에 쏘인 할머니, 경운기가 엎어져서 논두렁에 빠져 forehead 쪽이 찢어진 할아버지, 비타민인 줄 알고 착각해서 세알이나 당뇨약을 먹고 저혈당에 빠져 실려온 할아버지, 농사일을 마치고 막걸리를 한잔 하다 갑자기 오른쪽 안면 근육에 힘이 안 들어가는 할아버지, 낫으로 잡초를 베다가 손가락이 절단되어 실려온 할머니...
이 모든 환자들은 내가 광역시에 거주하며 3차 대학병원에 있을 때에는 정말 보기 드문 케이스들의 환자들이다. 여기서 모든 공통점은 '노인'이라는 것. 시골 + 시골 유일 종합병원 + 온통 농사 = '노인'인 것이다.
그래서 색다른 풍경도 펼쳐진다. 나는 아침 7시부터 정규 데이 근무가 시작한다. 그래서 6시 30 ~ 45분 사이에 출근을 한다. 하지만 원무과 및 OPD (외래)는 9시에 정규 시작을 하기에 사실 3차 종합병원에서는 이 시간에 그다지 많은 환자들을 병원에서 보기가 힘들다. 물론 아침에 타 지역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일찍 외래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시간에 앉아 있겠지만 보통은 8시가 넘어서부터 점차 대기석이 차기 시작했었다.
여기는 다르다. 여기는 시골 유일 종합병원이다.
6시 30분 병원 내원은 할머니, 할아버지들께는 우스울 정도로 어렵지 않은 시간이다. 이미 대기석은 만석이고 다들 야무지게 번호표를 뽑아 앉아 있으신다. 심지어는 지나가다가 번호표 기계를 보면 6시 40분인데도 불구하고 발급 번호가 벌써 45번이다. 그럼 1번 환자분은 대체 언제 오신 걸까?
지하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기석을 지나쳐 응급실로 들어가게 되면 참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다. 기억나는 것을 몇 개 추려보자면, - 한 할머니가 검은색 봉지에서 참외 4개와 쟁반, 과도를 꺼내 깎기 시작하셨고 주위로 두 세명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둘러싸서 한 조각씩 나눠먹기 시작한다. 물론 그들은 서로가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참외로 모여 나중에는 대출을 얼마나 받았다는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로 흘러간다. - 넘어질 것 같이 걸으시는 할아버지가 눈에 밟혀 바지 뒷춤을 잡아 안전히 의자에 앉혀드리자 '먼 동네에서 왔네, 여기는 어쩌다 온 거야?'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미 이 병원에 입사한 이래로 이 질문은 최소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듣고 있기에 이제는 눈웃음으로 스리슬쩍 넘길 수 있게 되었다. - 할머니가 터치가 되는 폴더폰을 굉장히 집중해서 째려보시다가 지나가는 나의 손목을 확 낚아채며 '이거 문자 어떻게 보내는가?'라는 질문을 하셔서 나는 10분가량 붙잡혀 문자를 보내드리고 아슬아슬하게 출근했다. - 한 할아버지가 병원 입구의 세븐일레븐에 방문하고 싶었는데 본인이 쓰는 지팡이보다 옆의 할아버지의 지팡이가 탐이 나셨나 보다. '나 그 지팡이 한 번만 써 보면 안 돼?'라고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자 그 할아버지는 시크하게 '나 진료 보기 전에만 돌려줘'하고 빌려주신다. 물론 그 둘도 아는 사이는 아니다. - 외래 진료를 기다리다가 지갑을 안 들고 오신 할아버지가 '아 나 지갑을 놔두고 왔네.. 돈은 어떻게 내지? 주민등록증도 안 가져왔네...'라고 중얼거리시자 옆에 계시던, 그보다는 조금 더 젊어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나 차 들고 병원 왔으니까 나랑 가지러 가자. 어차피 병원 문 열려면 2시간은 더 있어야 하잖아. 집이 어디야 ' 라며 같이 지갑이랑 주민등록증을 가지러 나가신다. 물론! 이 두 사람도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다.
위의 이야기는 굉장히 적은, 지금 당장 생각나는 몇 가지 대화만 추려 본 것이다. 외래를 보기 위한 대기석도 이런데 응급실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