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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주 Nov 14. 2024

나의 첫 병원 이야기

벌써 12개월 하고도 6개월, 2년 차 간호사라니 (2)

어딜 가나 존재하는 걸까?


나는 나이가 많다.

결코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신규의 나이는 아니다.


내가 입사할 당시 신규 여자 동기들의 주민번호 뒷자리는 4로 시작했다.

나는 2로 시작하는 진격의 90년대 생이다.


물론, 사회는 나이가 다가 아닌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를 무시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나의 마이멜로디는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물론 그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언니 대접하지도, 본인이 연차가 높다고 나이를 무시 한 채 무례하게 굴지도 않았다.

아마 적정 선을 정확히 지켜 준다는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당연 마이멜로디를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부서 사람들 대부분이 내 나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대략 5년 차 정도까지는 나보다 어린 경우가 대다수였다.

어쩌면 이러한 사실이 나를 이 부서에 적응할 수 있게 해 준 큰 요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3월 입사자인 5명의 동기 중 내가 가장 마음 쓰는 수빈이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빈이의 프리셉터는 마이멜로디와 동기였다.

첫인상은 '키가 크고 예쁘게 생겼다' 정도.

아, 목소리가 굉장히 크구나 도 있었다.


그녀는 뭐랄까, 참 야무지고 FM인 사람이었다.

규정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규정이나 부서의 관행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거나 다르게 한다면, 그것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짓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르게 표현을 하자면 본인의 기준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편이었다.


"선생님, 왜 이건 이렇게 했어요? "

"아.. 다른 선생님한테 배웠을 때 이렇게 해도 된다고 하셔서..."

"제가 이렇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수없이 반복되는 저 대화.

내 동기가 하는 방법도 틀린 방법은 아니었고 대부분의 선생님이 하는 방법이었으나 그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좋게 생각하자면 정말 매뉴얼대로 배워서 정석대로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반면, 안 좋은 효과로는 모든 일을 하는 족족 그녀의 눈치를 보게 되며 기가 죽어간다는 것이다.


"제가 말해줬잖아요. 그런데도 모르는 거면 집에서 공부를 안 해온다는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

"맨날 죄송할 거예요? 진짜 가르쳐줄 맛이 안 나네"


또한 그녀의 심각한 단점이라면


"아니 내가 그때 알려준걸 지금 모르는 건 날 무시하는 거 아니야? 진짜 이해 안 간다"

"걔 아직도 그래? 진짜 갑갑하다. 멍청이 아니야?"


남한테 이러한 이야기를 옮긴다는 점.


타인에게 본인의 불편함과 거슬림을 거침없이 말하고 다니며 이것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빈이는 하루하루 기가 죽어갔다.

나, 그 동기도 만만찮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알려준 모든 걸 노트에 빼곡히 적어놓고 달달달 외워서 출근을 하였다. 또한 모든 걸 가르쳐준 그대로 하며 그녀의 신경을 덜 거슬리게 한 결과 결국은 더 이상 혼나지도, 시비 걸리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모두 지켜본 우리에게 그녀는 < 어지간하면 엮이지 않아야 하는 존재, 굉장히 피곤한 사람 > 되어버렸다.


나 또한 그녀와는 크게 결이 맞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가 만족하는 나의 장점이 있다면


어지간한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한다는 점.


또한 나 또한 질문이 많다는 점이다.


사실 그녀는 FM의 업무 방식을 고집하지만 그 방식을 왜 고수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거나, 생각보다 간호적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렇기에 아마 여러 가지 임상적 질문을 하는 나의 행동에는 크게 지적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녀는 응급실 내 누구보다도 야무지게 일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눈에 띄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나 또한 그녀의 마음가짐에 많은 생각을 했고 그 덕택에 나의 모든 처치를 꼼꼼하게 보며 실수없이 하려는 습관을 갖추게 해 준 참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그녀를 그저 요즘 표현하는 "꼰대"가 아니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그러나 차후 나의 늦은 동기가 그녀와의 프셉 관계가 되었을 때는 수빈이와 또 다른 폭풍이 몰아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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