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On The Nature Of Daylight
응급실 한편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봐도 아무렇지 않았다. 다시 표현하자면, 감정에 대해 자동으로 경계하게 된다. 평소에 아버지를 얘기할 때 화가 나고 반복되는 안 좋은 사건에 좌절감을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현실의 아버지를 보면, 난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된다. 대체 이 사람은 뭘까, 하는 지긋지긋한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스스로에 대한 느낌이 감정이 배제된 기계같이 느껴진다.
아버지와 멀어지면서 나는 잘하면 내가 행복하게 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결혼을 하고 몇 번의 수술을 거치고 몸이 아팠다 회복하는 과정을 겪고 뼈가 마르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나아지면서 삶의 마지막을 떠올릴 때 겁에 질리더라도, 내가 마지막까지 도다를 때까지 내가 사는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친정어머니와 함께 신랑과 점심을 하고 응급실 병동으로 돌아와 보니, 침대 위에 아버지는 없고 주변에 핏자국이 있었다. 궁금하지도, 걱정되지도 않았다. 내 앞에서 아버지가 피 흘리면서 죽어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까?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걸 보니, 내가 한참 이상한 것 같았다. 그러나 만약 어머니가, 신랑이 그런 모습이라면, 현재 있지도 않은 아이가 내 앞에서 아파하기라도 한다는 생각을 하니, 몸이 욱신거렸다.
나중에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가 스스로 그 핏자국에 대해 말했다. 링거가 답답해서 본인이 바늘을 뽑다가 피를 흘리게 됐다고. 응급실 간호사들이 아버지 때문에 조금 당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아니지, 아마 그들은 별의별 유형의 사람들을 다 봤을 테니, 이런 게 지겹게 익숙할 수도 있겠다. 다양한 형태의 무례한 사람들, 그중 아버지는 자신에게 순간 일어나는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거나 손쉽게 해결하고자 하는 다 큰 어린애 같은 인물로, 술이나 도박으로 현실을 잊으려 하고 오로지 자신의 욕구가 우선이다. 아버지가 아프다고 해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그저 지겨울 뿐이다.
프로이트가 싫었다. 그의 남성적 외모도 맘에 들지 않았고, 남성=인간으로 생각하고 당시 여성에 대해 본인이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을 심도 있게 분석하기보다는 쉽게 판단해버렸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의 이론도 맘에 들지 않았다. "넌 다른 여자들과 좀 달라."라고, 그걸 칭찬이라고 하는 남자애들도 싫었다. 글을 쓴다고 할 때에는 "글 쓰는 사람이라 그런가, 다르네."라고 하다가 심리학 전공이라고 하면, "심리학을 공부해서 그런가?" 하다가 대학원 다닐 때에는 "공부를 많이 해서?"라고 하는 걸 보고, 주장과 근거가 얼마나 빈약한지 알 수 있었다. 이젠 그런 말엔 나도 영혼 없이 대답한다. "너도 다른 남자들과 좀 달라."
남성성이란, 정말 인간의 정상성 기준으로 삼아도 되는 것일까?
앞으로 여성 프로이트가 나온다면, 그때에 억압받은 남성성으로 히스테리 질환을 겪게 되는 사람들이 나타날까?-이걸 SF로 쓸 수 있겠구나.
지난날 아버지는 자유롭고 이기적이었으며 무례했지만, 어머니는 가정에 구속되었고 지나치게 희생적이었다. 아버지는 빚에 시달릴 때마다 어머니에게 빚을 안 막아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했고, 어머니는 매일 좌절감에 죽고 싶어 했다. 가족 모두가 병들어있었고 나는 병든 가족의 '증상'이었다. 이유 없는 통증에 시달려야 했고, 대학 병원에서 유전 질환을 포함한 온갖 검사에도 내 병은 찾아낼 수 없었다. 밤에 무릎이나 팔꿈치로 거친 통증이 몰려들면 나는 잠에서 깨어 병원에서 처방해준 진통제를 먹었고, 점차 통증은 진통제에도 가라앉질 않았다. 내가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리면서 이전에 몰랐던 것을 깨달은 점은 가족 중 아무도 내 통증에 진심으로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내 고통에 관심을 가져 줄 정도의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불행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은, 모두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층층이 누적되어 견고해진 불행의 사이클(cycle)에서 '깨달음' 한두 번으로 벗어날 순 없다. 가정은 '나'라는 존재가 시작한 지점으로, 사이클에서 벗어난다는 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맞서는 것과 같다.
스물다섯에 맞이한 어느 햇빛 좋은 날. 나는 닫힌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도 고통스러웠고 곧 죽을 것만 같았다. 몸이 떨리는데, 전날 마신 술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엔 과했다. 어두운 방에 누워 잠들 수도, 눈을 뜰 수도 없이 오로지 견디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강렬한 우울감으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죽음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죽어야 끝날 수 있겠구나. 죽음이 빛으로 다가와 창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저녁이 오자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마음이 진짜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번엔 정말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불행은 불안이다. 불안감을 많이 경험할수록, 내 불안이 강해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할수록 불행하다고 느낀다. 불안이 점차 몸 안에 쌓여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 되면 나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최근엔 대상에 따라 공감을 잘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감이 불가능한 유형이 자신의 욕구 해결에만 충실한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추가로 알게 되었다. 식탐, 무례함, 더 큰 파이를 가져가는 것 등등. 그건 내 그림자 영역이었다. 섣불리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을 뿐 내 안에도 주장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검사 결과 아버지 담낭에 담석이 있다고 했다. 더 정밀한 검사를 위해 며칠 뒤 내원을 해야 한다며 안내를 받고 응급실에서 퇴원했다. 어머니는 병원비는 큰 오빠가 치를 거라며 본인의 카드로 병원비를 계산했다. 응급실에서 퇴원한 후, 병원 지하 푸드코트에서 아버지는 죽을 드시면서, 과거의 자신을 용서하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용서하라고 명령하다니, 말의 내용과 어조가 맞지 않아 웃음이 나왔다. 자기가 그런 게 아니라 술이 그런 거라고, 옛날 아버지들은 다 그랬으니, 이제 늙고 힘없는 자신을 이해해야 자식인 네가 맘이 편할 거라고 했다. 내 신랑에게도 아버지의 안 좋은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출근해야 한다고 빠르게 걸어가며 서서히 멀어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그때에서야 슬픔이 몰려왔다. 우린 살면서 얼마나 많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면서 과거의 내 잘못을 옹호하다가 지금의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나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나란히 서 있는 늙은 여자, 내 어머니는 왜 자꾸만 작아지는 것 같을까? 여름의 한낮에도 삶의 쓸쓸한 면에 대해 생각하면 마음이 서늘해지는 걸 느낀다.
내가 꼭 살고 싶다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강하게 삶을 원하게 된 건 어릴 적 지독하게 아팠기 때문이 아닐까. 고통이 아닌 다른 삶을 경험하고 싶어서. 정확하게 상상할 순 없지만, 가까운 미래에 행복한 나를 만날지도 모르니깐. 지금 나는 20년 전 내가 간절히 바라던 미래에 와 있다. 고통보다 내가 더 큰 삶, 고통을 통제할 수 있는 삶. 그러니, 이제 괜찮다. 슬퍼할 수 있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