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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_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여기에 머무르기

by 하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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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딱딱하게 쌓아져 간다.

괴롭다고 생각하는데, 이 괴로움이 어디서 오는지 살펴보니,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오는 것이었다. 난임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해 듣고, 배에 주사를 놓다가 잘 못해서 멍이 들기도 하고, 호르몬의 영향으로 몸뿐만 아니라 마음 상태도 변화하는데, 시술 후 눈을 뜨면 나 혼자 누워, 이 전 과정에서 오롯이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고통은 우리가 모두 혼자라는 인식을 명료하게 하게 만든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혼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 기독교적 표현으로는, 모두가 자신의 생에서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것이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혼자라는 인식에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낸 추가적인 정신적 고통만큼은 사라지고, 생각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떻게 지속적으로 생각의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을까 하다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명상 과제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깊은 수준의 명상에 도전한다기보다 매일 실천할 수 있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해보기로 했다. 최근 스마트폰 앱으로 나온 명상 앱이 여럿 있는데, 그중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카카오같이가치]를 이용해보았다. (카카오같이가치는 웹사이트여서 스마트폰 대기 화면에 추가해서 앱처럼 실행할 수 있다.)



명상 1일째


1. 마음보기 연습 기초 1


토요일에 시작. 첫날이지만 처음치고 잘 집중할 수 있었다. 나의 호흡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그런데 가이드 음성 마지막에 '내가 있는 공간을 나에게 끌어온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2. 자애명상


전에 여러 번 해봤던 거고 3분이라는 짧은 명상이라 그런지, 수월하게 잘 된다. 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명상이다. 그 대상에게 긍정적인 바람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 기분이 평안해진다..



명상 2일째


1.마음보기 연습 기초 2


두 번째는 3월 19일 화요일에 했다. 이틀째 핸드폰을 실행하지 않고 혼자서 해보다가 다시 [카카오같이가치]로 해본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지, 일어나자마자 생각이 많고 마음챙김 명상을 하면서도 호흡에 집중하다가 잠시 딴생각을 하곤 했다. 혼자 할 때는 그냥 딴생각으로 가곤 했는데, 안내에 따라 하니, 다시 호흡에 집중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2. 스트레스 명상


스트레스를 받을 때의 내 감각에 집중하고 스트레스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면서 내가 스트레스 자체가 아니라 스트레스보다 큰 존재임을 인식하기,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눈과 눈 안쪽 머리로 오고, 목덜미가 아프고, 턱에 힘을 준다. 호흡도 한숨 쉬듯 간헐적으로 크게 쉰다.


3. 걷기 명상


이건 걸으면서 가능한 명상이 아니라, 땅에 닿는 발바닥의 느낌, 관절의 움직임 등을 세심하게 느껴야 하므로 출퇴근하거나 이동하면서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음. 그럴 때에는 출퇴근 명상이 있으니 그게 적당하다.






명상 3일째


1. 마음보기 연습 기초 3


이틀째 들었던 오디오를 끝까지 듣지 않아 다시 이틀째부터 들어야 했다. 하는 수없이 이틀째 명상 오디오를 작게 틀어놓고 침대방에서 나와서 커피를 마셨다. 오늘 마음챙김은 식탁 앞에서 앉아 시행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유튜브로 난임 다큐를 봐서 그런지 마음이 슬프고 혼란스러웠다.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는데, 마음챙김은 생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바라보는 거라는 안내에 안심이 됐다. 평소에는 내 생각을 그대로 나인 것처럼 경계 없이 여기는데, 마음챙김을 통해 내 생각을 지켜보면서 나와 분리하고 있다. 나는 생각이 지나가는 통로일 뿐, 생각 그 자체가 아니라는 인식을 한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하는 연습이 되고 있다. 그러나 마음챙김을 하면서 내 호흡이 불안정함을 느낀다. 기흉인지, 공황인지 모르겠지만, 숨을 쉬는 내내 갑갑하고 그러다가 이따금씩 한숨을 크게 한 번씩 쉬게 된다. 지난밤 신랑이 한 말도 기억났다. 난자 채취 시술을 받고 나와 결제를 하려고 하는데, 우리 커플 뒤에서 어떤 한 커플 중 한 여자가 울면서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엔 난자가 6개밖에 나오지 않았어.” 울면서 말이다. 난 하나만 채취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신랑에게 사실 하나든 여섯 개든 열 개든 상관없어. 되기만 한다면야. 그렇게 말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명상 4일째


1.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근하거나 등교할 때


집에서 명상할 시간이 없어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했으나, 마음보기 연습 기초는 지하철에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외부 자극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보기 연습 기초는 도중에 끄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근하거나 등교할 때]를 했다. 내가 있는 지하철 내에서 나에게 불쾌함을 주는 사람들-냄새, 소란스러움 등을 불쾌하다는 감정으로 넘기는 과정을 알아차리고 나를 지켜본다. 옆의 사람 목소리가 크구나, 하면서 나와 그 사람(들)을 인식하니깐 불쾌한 감정이 더 커지지 않았다. 그리고 저 사람을 나에게 피해를 주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니, 이 소음을 친구나 가족이 떠드는 것처럼 인내할 수 있었다.


명상 5일째


1. 마음보기 연습 기초 4


마음보기 연습 기초 4일 차를 침대 위에서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따 만나 뵙기로 한 분에게 보여드려야 하는 문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밤 사이에 꿈을 한참 꿨다는 생각과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일어났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엄마 집에 집에 못 간다 하고, 핸드폰 좀 들여다보다가 명상을 시작했다.



오늘은 명상할 때의 느낌, 생각, 감정들에 이름표를 붙였다. 그리고 자꾸 호흡에 집중하는 것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생각에 쫓아갈 때가 있었다. 생각이 나 느낌을 강아지라고 생각하라고 하고 한 곳에 강아지를 모은다는 상상을 하라고 했다. 한 곳에 강아지를 모아놓아도 호기심 많은 강아지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금세 딴 곳으로 이동한다. 명상할 때 나를 방해하는 생각도 그러한 강아지처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라는 것 같다. 강아지라는 사랑스러운 존재를 떠올리니 가슴 안이 간질간질하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명상에 집중할 수 있기를. 내 숨에만 집중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명상 6일째


3월 24일 일요일 아침. 피곤하고 교회에 가기 싫어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마보 5일 차를 침대 위에서 했고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명상 7일째



3월 26일 화요일 아침. 알람을 듣고도 더 자다가 늦게 일어났다. 혼자 일하다 보니 규칙적인 생활이 잘되지 않는다. 기분이 약간 다운되는 듯했고, 생각은 내가 해야 할 일들로 복잡해져만 갔다.


마보 6일 차를 들으며 들이마시는 숨에 복잡한 생각을 한껏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에 복잡한 생각을 밖으로 내뱉었다. 호흡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땐 숨에 숫자를 붙이는 것이다. (내 호흡보다 가이드하시는 분이 호흡 숫자를 빨리 세었지만 그리로 따라가지 않았다.) 내 호흡이 들이마실 때는 온몸으로 퍼졌다가 내쉴 때는 온몸을 돌고 다시 폐를 거쳐 코로 나가는 걸 상상하며 느끼며 진행했다.


하루에 딱 십 분간 생각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며 시행하고 있다.



명상 8일째


1.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근하거나 등교할 때


아침에 지하철 안에서 했는데, 제대로 하지 못했다.



2. 마음보기 연습 기초 7


자기 전에 마보를 하면서 명상 중반 정도에 가슴 가까이에 얽매어 있는 기운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루 동안 불안과 우울감을 크게 경험했는데, 호흡에만 집중하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편안하다는 것, 아무 생각이 없어진 느낌이다.





기록은 여기 까지지만, 이후에도 명상을 틈틈이 이어갔다.

명상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바뀐 점은 '평안'이다. 불안을 제거하려 애쓰기보다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불안을 바라보는 것보다 현재 나의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니, 평안해질 수 있었다. 전에는 감정이 내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면, 명상을 통해 감정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가 흘러 나가는 것을 경험했다. 어깨나 허리에 통증이 생길 때에도 오른쪽 흉통을 느낄 때에도 그 느낌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지켜보면 통증도 머물렀다 사라질 때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적 변화, 신체적 통증, 생각의 흐름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니, 흥미롭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것들에 관심을 가지니, 마치 부모의 따뜻한 시선에 잘 못 되는 아이 없듯이, 서서히 잠잠해진다. 그리고 약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서했다.


편두통, 어깨 결림, 흉통, 허리 통증, 내가 어쩔 수도 없이 자꾸만 치솟는 호르몬 수치,

지하철에서 배려 없는 행동으로 불쾌감을 느끼게 했던 사람들,

내가 짊어지고 가는 무거운 짐들,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는 나의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

그리고 매일 마주하는 나의 나약한 내면과 강해지고 싶은 바람.


현재 나를 괴롭히는 것들 중 몇 개나 내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일까. 내 인생 전체를 길게 펼쳐놓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현재 나를 괴롭히는 것 중에 진짜 가치가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잠시 멈추고 가볍게, 이전보다 더, 점점 더 가벼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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