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에 들른 병원에서 검사한 호르몬 결과 수치가 높아, 급하게 다음 날 월요일 오전에 시험관 시술을 받게 되었다. 병원의 연락을 받은 건 점심을 먹으러 나온 식당에서였다. 숙대 입구 근처였는데, 병원이 서울역이어서 병원에 들른 후 숙대 입구 근처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식당에서 밥을 먹기 위해 음식을 시켜 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전화에서 간호사는 지금 빨리 난포 터뜨리는 주사를 2개 전부 다 놓으라 했다. (시험관 시술을 할 때는 주사를 놓는 것도 나고, 맞는 것도 나다. 평소에는 보통 간호사가 주사를 '놓고', 내가 '맞는데', 이걸 내가 다 하니 기분이 묘하다. 팀플을 혼자 하는 느낌이랄까.) 전화를 끊고 식당 화장실에 가서 배에 주사를 놓았다. 한쪽에 두 대 다 놓아도 된다고 해서 소독한 김에 왼쪽에다가 다 놨는데, 병원에서 주사 맞은 거까지 하면 왼쪽에만 주사 세대를 연달아 맞은 거라 바늘 통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주사 한 대만 맞은 오른쪽 배도 같이 아파서 주사 때문이 아니라, 약물 반응인 것 같기도 했다. 피검사하느라 왼쪽 팔에 꽂은 바늘 자국은 잘 없어져서 다행이다. 검사하는 분이 오른쪽 팔에 멍든 걸 보고 신중하게 주삿바늘을 빼자마자 꽉 눌러줘서 괜찮았던 것 같다. 애처로워하는 눈빛을 나에게 보낸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다.
월요일에 생각보다 긴 기다림 끝에 수술실에 들어가게 됐다. 수술복을 입고 머리에 망을 쓰니 바보 같아 보였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수술 바늘을 꽂는데, 내가 간호사에게 혈관이 약해져서 어려울 거라고 했더니, 신중하게 꽂아주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사전에 경고하지 않으면 꼭 여러 번 바늘을 꽂아보다가 실패한다. 최고 기록이 7번 꽂아봤다. 수술용 바늘은 매우 커서 아픈데, 그걸 혈관에 대고 잘 안된다면서 쑤셔댄 적도 있다. 그땐 수술을 앞두고 공복에 흉관 삽입한 채로 간호사가 그런 실수를 하고 있는 거라 매우 화가 났지만, 결국 화는 못 냈다. 처음으로 수술과 입원을 해보는 거라, 혹시 불이익을 당할까 봐 참았다. 지나고 보니깐 그 간호사가 일곱 번 실수하기 전에 다른 경험 있는 간호사를 불러달라고 했으면 나도 덜 고통받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그 뒤로 바늘에 대한 공포가 좀 생겼다. 푸시업을 하면 좀 나을까 했는데 별 소용이 없다. 수술을 많이 받은 사람은 혈관이 예민해져서 얇아질 수도 있다는데, 그래서 그런 건지도.
수술실에 누워 마취를 받기 전에 주치의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내 손을 잡은 주치의의 손이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주치의에게 혹시 난자 채취 후 수정이 2개 이상 되면 이 달에 이식까지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화 후에 마취제가 링거를 통해 내 팔에 전해지면서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짧은 순간, 두려웠다. 내가 의식을 잃는다는 것, 육체는 그대로 있는데 인식하는 나는 사라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대로 내가 사라질까 봐.
눈을 떴을 때는 회복실이었다. 좁은 공간에 나 혼자 있는 것이 평안하게 다가왔다. 오른쪽 검지에는 맥박을 측정하는 기계가 연결되어 있었고, 왼 팔에는 혈압을 측정하는 기계가 연결되어 있었다. 꿈을 꾸지도 않았는데, 좋은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술대에 누워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느꼈던 두려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명상을 끝내고 난 뒤에 느끼는 평안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세상이 이렇게 적당히 따뜻할 수 있구나. 간호사는 눈 뜬 나에게 와서 앞으로 40분 더 회복하고 일어날 거라 했다. 가끔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누워있을 때, 막 수술실에서 마취가 덜 풀린 채로 나온 사람들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는 걸 들을 때가 있다. 간호사들은 이런 사람 여러 번 봤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환자분, 가만히 계세요. 여긴 병원입니다."라고 말한다. 그 경험을 통해 마취를 하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시술이 매우 아픈 거라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다큐멘터리에서도 난자 채취를 위해 마취를 한 사람이 고통에 신음하는 걸 본 적도 있다.
회복실에서 나오면서 링거 바늘을 뽑고 그 위에 대일밴드를 붙이는데, 간호사가 약간 빗나가게 밴드를 붙이는 것 같았다. 그러려니 하고 회복실을 나오는데, 오른팔에 차가운 것이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피로 팔이 적셔지고 있었다. 시술을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놀랐다. 안 그래도 시술 전이라 긴장하고 겁먹었을 텐데, 내가 일조한 것 같았다. 간호사는 알코올 솜으로 내 팔을 닦아주고 다시 대일밴드를 제대로 붙여주었다. 다행히 다시 피가 날 일은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머리의 망을 벗고 보니 머리가 엉망이었다. 머리에 물을 묻혀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화장실 한 번 더 들러주고 밖으로 나왔다. 신랑은 노트북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신랑이 자리를 정리하고 오길 기다리면서 정수기 앞에서 거기 높여져 있는 감잎 차 티백 두 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감잎 차가 참 맛있는데, 수술 전에는 금식을 해야 해서 못 먹는다. 그래서 수술 전 내 거 하나, 수술 후 내 거 하나 해서 두 개를 챙겼다.
비용을 계산하기 위해 접수대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젯밤 신랑이 그러는데, 접수대에서 우리 뒤에 있던 커플 중 여자가 울면서 남자에게 이번에는 난자가 여섯 개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난 지금껏 세 번을 채취했지만, 난자 촉진 주사를 맞아도 두 개, 대부분 하나였다. 오늘도 하나였다. 그래서 이번 달에 이식까지 못 가고 동결로 진행해야 했다. 하나를 얼리든, 10개를 얼리든 동결 비용은 동일하다. 여섯 개가 나온 그 여자나 나나 비용은 똑같으니, 오히려 내가 억울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신랑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사실 하나든 여섯 개든 열 개든 상관없어. 성공만 한다면야.”이라고 말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가능성, 확률 싸움에서 이미 난 밀렸다. (난자 여섯 개 채취했다고 우는 그 여자는, 시험 문제 하나 틀려서 전국 등수에서 떨어졌다고 우는 전교 일 등 같은 느낌이었다. 난 괜찮은데, 그 여자분도 괜찮았으면 좋겠다.) 접수대 앞에서 잠시 기다리면서 보니, 접수대 앞 소파에 누워있는 여자가 보였다. 시술 중에 가장 힘든 게 난자 채취하는 것이니, 아마도 저 여자분은 난자를 채취하고 아파서 누워있는 걸까? 아니면, 수정란 이식을 받고 잠시 누워 있는 걸까? 기흉이 걸려 숨이 가빠 올 때도 난 주목받는 게 싫어서 누워있던 적이 없었다. 내 상황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내 안으로 감추는 게 내 특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래가는 것 같기도 한데, 모르겠다.
난자 채취를 한 뒤에는 배에 날카로운 통증이 며칠간 있다. 콩보다는 더 작은 난자를 내 뱃속에서 억지로 끄집어내고 5일간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 안에 상처가 있나 보다. 통증 외에 출혈도 있다. 시험관 시술은 의학 발전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다. 비밀스럽게 진행되었던 인간 탄생의 순간은 만천하에 다양한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난자, 정자 개수가 몇 개인지 이야기 나누고 수정은 난자와 정자의 주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진행한다. 수정란을 동결해서 세포의 시간을 멈춰 놓는다. 그리고 만 35세 이상과 미만에 따라 이식받을 수 있는 수정란 개수가 달라진다. 만 35세 미만은 한 번의 시술에 2개의 수정란을 이식할 수 있고, 만 35세 이상은 3개까지 가능하다. 작년까진 만 35세 이상은 4개까지 가능했는데, 올해 변경되었다. 동결해놓은 수정란을 해동하는 과정에서 수정란을 잃기도 하니, 막상 이식에 필요한 개수를 나와 같은 사람이 달성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다른 이들에 비해 난자 채취를 더 자주 해야 하고,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면 더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이가 없다고 해서 내 삶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닐 테니.
시험관 시술을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연스럽다, ‘자연-스럽다'의 '자연'은 대체 뭘까?
자연의 입장에선 인간의 생로병사를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실상 우린 생로병사 중 '생'에 있어서만 자연스러움을 강요할 뿐, 우리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늙고 병들고 죽지 않기 위한 공부와 실천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서의 자연은 수동적으로 바라본 자연이다. 대지와 하늘-있는 그대로의 지구. 그러나 지구는 딱히 인간에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인간을 태양볕으로 죽게 하고, 추위로 죽게 내버려 둔다. 인간의 생로병사에 관여하지 않는 게 자연의 입장이다. 아니, 자연은 인간을 자신을 갉아먹는 암이나 박테리아로 여기는 지도 모른다. 우리가 암을 대할 때의 태도처럼 자연도 인간을 그렇게 대하고 서서히 죽이고 싶은지도.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남은 인간은 슈퍼 박테리아같이 점점 강해져 지구를 병들게 하면서도 지독하게 오래 머문다.
그렇다면 시공간을 초월한 의미로서의 자연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우리가 ‘신의 섭리’라고도 부르는 일이 일어나며, 목격하지 못한 평행 우주나 다차원까지도 포함하며 아직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현재 우주라고도 하는 그 영역을 넘어서는 자연으로 말이다. 광의의 자연의 입장에선 시험관은 물론이고 인간의 유전자 조작과 신체 개조 등의 과학적 활동 또한 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다. 우리에게 사고의 확장이 가능한 뇌를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 성장한 것 같지만, 자연 입장에선 그 또한 주어진 것으로, 말하자면, '(인간) 스스로 학습' 같은 거다.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나 자기 맘대로 시험관 시술이나 임신중절 시술을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욕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신과 자연, 종교마다 동일한 개념으로 쓰기도 하고, 분리해서 위계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인데, 어느 쪽이든 신이 허락하지 않았다거나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반대하는 사람은 그 근거와 그 근거에서 내가 생각하는 신은 어떤 존재인지, 자연스러움의 범위는 어느 정도인지 점검해보길 바란다. 어느 의견이 맞고 틀리고는 아니다. 오히려 시대에 따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거나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뛰어넘는 사고를 할 수 없으니, 미치지 않는 한, 무슨 생각을 해도 동시대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니 맘껏 생각해보자. 그리고 내가 가지 않았거나 가지 못할 길을 걷는 사람들을 상상으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게 어떨까? 간접 경험으로도 인식의 틀을 넓히는 것이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이니, 종의 능력 발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으로 네이버에 '난임 다큐'로 검색해서 이 다큐를 보게 되었다. 대한민국 여성의 생물학적-사회적 위기를 짧은 시간에 잘 다루었다. 가임력이 높은 이십 대 시절에는 아이를 가지지 않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약간의 기반을 마련하고 아이를 가지려 하는 3,40대에는 난임으로 고생한다. 20대에 스트레스를 많이 경험해 심신에 타격을 받았다면, 3,40대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내 잘못도 아닌데, 대가는 내가 감당한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고 키운다고 해서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다.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간절히 원하면 될 거라고 믿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불사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노후까지도 포기하고 시술을 받는 사람들, 쉼 없이 아이에게 헌신하는 사람들... 그들을 대상으로 형성된 산업은 또 얼마나 번창하고 있는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내가 주로 쓰는 방어기제는 '이지화' 다. 감정을 나와 분리해서 대상화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지화(intellectualization)는, 사고는 의식되지만 감정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 용어는 고립, 합리화, 의식(ritual), 취소(undoing), 받은 대로 되돌려줌(restitution), 신비적 사고 등의 기제들을 포괄한다. 세부 기제들은 서로 다르지만, 보통 한 묶음으로 나타나곤 한다. 불편한 감정에 집중하지 않기 위해 감정과 자신을 분리해, 생각의 늪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성공적 삶의 심리학』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한성열 옮김, 나남출판
방어기제 층위에서 신경증적 방어기제로 분류하곤 하는데, 양날의 검과 같기 때문이다. 이지화를 과하게 사용하면, 유보된 감정들이 강박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보된 감정이 독으로 삶에 침투하는 것이다. 이지화는 전 연령대에서 나타나는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이지화를 많이 사용하는 아이들은 성숙했다는 평가를 받곤 하는데, 강박 행동이 수반하는지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눌러왔던 공격성이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가 겁난 아이가 어른들이 칭찬하는 '영민함'으로 드러내며, '강박행동'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안전하게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곳, 대상이 필요하다.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일 테다. (강박은 융의 '콤플렉스'이론으로도 설명 가능하지만, 여기에선 프로이트 방어기제 이론으로만 설명합니다.)
방어기제를 하나만 쓰는 사람은 없다. 여러 층위의 방어기제를 고루 사용하게 되는데, 주로 사용하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내가 사용하는, 성숙한 기제들로는 유머, 예상, 억제, 승화가 있는데, 그 외의 성숙한 기제는 이타주의가 있다. 앞으로는 이타주의를 포함해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하고 싶다.
【내 안의 블랙스완】의 글로 나의 방어기제를 살펴볼 수가 있는데, 두드러지는 건 이지화와 승화다.
글을 쓰는 자체만으로도 글을 쓰기 전에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들에 대해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고 가끔 내 표현에 만족감을 얻는다. 내 감정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수정되기도 하며, 의미를 찾기도 한다. 이 과정을 '승화'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글에서도 자꾸 감정을 배제하려는 이지화가 나타나는데, 글이 나에게 주는 유익한 점은 내가 처한 상황과 내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글을 통해 나는 이지화 하려는 노력에 결과적으로 실패한다. 그래서 【내 안의 블랙스완】을 쓰면서 강박적 사고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 내 안에서 저절로 흘러나간다고 느낀다.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게 내가 가냘프게나마 삶에 매달릴 수 있는 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