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에 잠든 지 30분 만에 일어나 슬픔에 사로잡혀 다시 잠들 수 없었던 그때, 신이 지옥을 만든다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같은 모습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견이 첨예하게 갈라지는 사람들, 그들이 모두 옳은 길로 가고 있었으며, 옳은 일을 위해 각자 본인이 원하는 시기와 방식을 택했다. 발언하는 자, 침묵하는 자, 그림을 그리는 자, 글을 쓰는 자, 묻는 자, 대답하는 자, 화내는 자, 억울한 자, 변명하는 자, 변명하지 않는 자, 사과하는 자, 사과받지 못한 자, 지켜보는 자, 지켜보지 않는 자, 우는 자, 뛰는 자, 걷는 자, 듣는 자, 들어본 적 없는 자, 실망하는 자, 상처 받은 자...... 그들은 모두 옳았으므로 그들의 행동 방식에 이의를 달 수 없었다. 세상은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보다 더 괜찮아지지 않았나 생각할 수 없었다. 물리적 환경은 조금 더 좋아졌는지 모르겠지만(그것도 달리 볼 여지는 있다), 이제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실체가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고는 있는 사이버 온라인의 세상까지 확장되어, 한 인간이 경험하는 세상은 아주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다만 속도의 문제다.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아니 파악할 시간도 없이 빠르게 회자화되고 사라지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도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게 하다 그것마저도 금방 잊혀 버린다. 자살은 많아지고, 살해 협박도 많고, 묻혀 가는 진실의 양도, 속도도 엄청나다. 이미 삶이 지옥 같은데, 죽음이 해방이 되지 말란 법이 있을까? 죽음으로 덮어져 묵인되는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웬만한 죽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추구하게 되었다. 죽음을 애통하는 자, 죽음에도 애통하지 못하는 자 모두 다 옳다. 잠에 들지 못해 피가 마르면서 아직 캄캄한 창을 멍하니 바라보며, 소리 없는 십자군 전쟁에 전 세계인이 각개전투로 참여 중에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샤르트르의 유명한 이 말은 지옥에 대해 여러 층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샤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으로만 보면, 지옥이란, 절대 실현해 줄 맘이 추호도 없는 타인에게 우리는 나의 욕망을 투사하고 매어 있으며, 서로 고통을 주고받으며 갇힌 방에서 절대 벗어나고자 하지도 않는 곳이다. 방에 갇힌 세 사람, 기르생과 이네스, 에스텔은 절대 이룰 수 없는 욕망을 타인에게 투사한다. 반전운동을 하며 영웅 행세를 하던 기르생은 우체국 직원이면서 레즈비언인 이네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이네스는 기르생을 날카롭게 비난할 뿐이다. 반면 이네스는 아름다운 에스텔을 성적인 대상으로 욕망하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기르생을 파멸로 이끌고 싶지만 기르생은 에스텔을 욕망하지 않으므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또한 에스텔은 남자로부터 자신이 성적 대상으로 욕망되는 것을 욕망하지만, 기르생은 이네스에게 영웅으로 인정받고 싶어 할 뿐이다. 그리고 그 방으로 이들을 안내했던 안내자가 이 방을 떠날 의사를 물었을 때도 그들은 실현할 수 없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간절함으로 떠나기를 거부한다. 희곡의 결말에 다다라서 기르생은 이 방이 왜 지옥인지 알게 된다.
이런 게 지옥인 거군. 정말 이럴 줄은 몰랐는데……. 당신들도 생각나지, 유황불, 장작불, 석쇠……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그런데 기르탱이 인식한 지옥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과 다른 게 뭘까? 이 세계는 나의 전부이므로 나는 벗어날 수도 없고 계속 내 욕망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 어떤 것도 욕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방을 벗어날 수 있는 해방인 동시에 죽음이기에 욕망하지 않고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 고통을 한 없이 느낄 수는 없기 때문에 가끔 고통을 잊을 뿐, 우리는 숨 쉬듯 고통스러운 존재인 줄도 모른다. 또한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얘기했던 고백을 나를 향해 뒤집어보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지옥인 것이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지옥을 선사할 수 있다. 그러나 잠들지 못했던 시간이 지나 잠들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울고 싶은 마음도 사라진 지금은 그래도 내가 누군가를 구원할 순 없어도 지옥을 선사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고 싶다. 긴 시공간 속에서 수많은 콤마 중의 하나인 인간이 이미 존재한 이상 서로에게 지옥이 되지 않기를, 내가 언제든 타인에게, 그리고 나에게 타인이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하루에 한 번이라도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말이나 글이나 발언되는 순간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으니 거짓이고 나는 오늘 진실 하나를 전달하기 위해 셀 수 없는 거짓말을 했다. 매일 진실하자 마음을 먹어도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거짓이므로, 사실은 정말 진실한 사람은 언어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내 안의 블랙스완]은 처음 쓸 때의 의도와는 달리 이렇게 어두운 글로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만,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었다. 내면의 어둠을 받아들이고 세상의 어둠을 인식하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며칠 동안 맴돌던 이야기의 상당한 부분이 타자화하는 순간 사라졌지만, 어떠랴. 어차피 거짓말만 더 늘어놓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