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할 때에는 신랑의 차분한 모습이 좋았다. 나는 옆에서 “어떡해, 어떡해! 다 망했어! “ 호들갑 떨고 있는데, 신랑은 별 다른 표정 변화 없이 날 쳐다보다가 내 호들갑이 진정되는 듯싶으면 괜찮은 해결법을 제시했다. 결혼 후에도 내가 폭주해도 함께 폭주하거나 나랑 맞짱 뜨는 법이 없었다.
한 가지 불만은 속내를 알 수 없다는 거였다. 뭐 먹고 싶냐고 해서 내가 먹고 싶은 거를 말하면 ”아 그건 어제 먹었고, 아 이건 자주 먹는 것 같아서 지겹고…“이런 식이다. 내 제안이 다양해질 무렵, “엇, 그거 맛있겠다!” 한다. 수십 번, 수백 번 반복되다 보니, 이젠 내가 먼저 한다. “뭐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걸 말해.” 먹고 싶은 게 있음 한 번에 말하지, 왜 뺑~~ 둘러 말하냐고 따진 적도 많았다. 짱나게…(퍽! 퍽!
결혼해서 시댁 식구들을 만나니, 다 남편 같았다. 원하는 게 분명 있는 것 같은데 직접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었다. 너무 신기한 건 그들은 그렇게 의사소통이 되는 거였다!! 남편 시부모님 고향을 하나씩 들르면서 알았다. 어쩌면 남편은 서울에 태어났어도 충청도 베이스라 그런 거라는 걸…(시부모님은 충청도에서 태어나고 자라셨다가 성인이 되어 서울에 거주하고 계신다.)
남편을 충청도 베이스라 하면, 나는 전라도 베이스라 할 수 있다. 우리 부모님도 어릴 때 전라도에서 서울도 올라왔기 때문이다. 10살에 서울에 올라오긴 했지만, 엄마의 김치는 양념이 세다.
마음이 불편한 일이 생기면 남편은 평소 같지 않게 이상한 농담을 한다. 유치원생들도 유치해서 안 할 것 같은 농담. “아 진짜 왜 그래?”하면, “가짜 그럴 수는 없으니깐. 허허.”라고 답하며 내 불타는 시선을 피한다. 실없는 농담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남편 덕분에 알았다.
남편은 표정도 별로 없고 말도 별로 없고 사람에 대한 관심도 스위치 온 오프가 잘 되는 사람이다. 회사에서 일할 때에도 자신이 원하면 자체 노이즈 캔슬이 가능하다.
반면 나는 그렇지 못한다. 온갖 것이 날 흔들어제낀다. 그래서 집에서도 더워서 틀어놓은 선풍기가 시끄러워서 노이즈캔슬 이어폰을 끼고 있다. 그러면서 혼자 쎄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 혹시 나 몰래 누가 집에 침입한 거 아닌지 확인한다. 혼자 쌩쇼를 할 때가 많다.
남편은 식물을 좋아한다. 우리 집에는 희귀 식물이 많다. 몬스테라 알보도 있고… 또 뭐뭐 많다. 신랑이랑 식물원도 여러 번 갔고, 식물 괜찮다는 카페도 많이 갔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신랑은 식물들을 확인하러 베란다로 가고, 퇴근하면 식물들부터 확인한다. 주말에는 분갈이를 해주고 예쁘게 자라라고 가지치기도 한다. 유튜브도 주식, 식물, 커피만 본다. 내가 “식물을 왜 그렇게 좋아해?”라고 물었더니, 남편은 “식물은 말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남편이 가끔 사이코패스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남편을 만나고 나서 충청도 사람들의 언어가 재밌어졌다. 유튜브 검색창에 ‘충청도 유머’라고 치면 충청도식 돌려 말하기의 정수를 볼 수 있다. 그 영상들 중에 내가 남편한테 실제로 들은 것도 몇 개 있다. “여보, 바퀴벌레! 바퀴벌레!!!” 소리를 지르며 방 안을 뛰어다녔는데, 남편은 “왜 그래, 그거 키우는 거야.”라고 했다. 다행히 결국 잡긴 했다.
이젠 나도 남편의 영향을 좀 받아 변하는 것 같긴 하다. 허허실실, 아주 쪼오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