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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히 라 May 31. 2022

일 년 남짓

기록하는 기억 ㅣ 엄마는 육아 중 ♪

12개월 365일 +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기를 키우면서 그리고 그전에 아기를 낳으면서  이전에는 태아를 품으면서  많은  배웠고, 느끼고,  많이도 반성했다.


지금  순간 아기를 품고 있는  친구는 호르몬의 변화에 세상 놀라힘들어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나는 왜인지 새삼스럽게작년에 내가 그래던가 싶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그렇다.




280일 40주
그렇게도 10달



그렇게 뱃속에 있던 강낭콩 같은 아이가 태어.

나의 경우 정산적인 출산과 다르게 양수가 터져버려 거꾸로 진통을 따라 간 사례였고 예상과는 달리 빠른 시기에 그렇게 나도 그럴 일이 있을 줄도 몰랐던 지금은 나의 보물인 내 딸 : 이른둥이를 낳았다.


진통은 이틀을 넘겼고 첫째  병원에 가자마자 연락을 취했던 나의 엄마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평소에도 급한일이 아니라면 안부를 주고받고자  사정을 하는 스타일이 아닌 분들이라 나는 진통이 별로 없던  시간에 굳이 엄마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내가 아픔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콜백을 하지 않던 부모님께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을 그때, 엄마는 시기가 너무 빠른 탓에 이런 전화 일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하셨고 아빠는 그날 하루 외부 일정이 많았던 너무 바쁜 날이라 부재중 전화를 놓쳤노라 말씀하시며 이제야 확인하셨다.


그렇게 나는 당돌하게도 그 일을 내가 겪고 해낼 일임을 알고 있었다. 구태여 엄마 아빠의 목소리로 눈물을 빼거나 그 연락으로 무언가 달라지지 않음을 알았기에 어리광을 피우지도 않았다.




다음날 밤에 되어서야 나는 아기를 낳았다.

 

엄마는 나중이 되어서야 그 연락 이후 한 끼도 먹지 않고 장독대 근처만 서성거렸음을 내가 아는 우리 엄마의 그 해맑음으로 소리 내며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천지신명님을 찾아 청량하고 깨끗한 물을 올려 기도를 올렸노라 알리신다. 그 모습이 훤히 보여 나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떻게 시간이 흘렸다.


조리원 기간을 거쳐 산후도우미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기간도 지났다. 아기를 돌보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고 나는 생각했다. 언젠간 뉴스에서 신생아를 두고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던, 이제  스무 살이 되었던  부모의 이야기를 접했다. 그들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애를 두고 나가 놀고자 빠질  아이는  작음 숨을 거두었다.


그 뉴스를 볼 때는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생각이란 게 없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아기를 두고 한 짓이 피시방에서의 게임질이라니 ,


아기를 낳은 나는 알았다. 그들은 그럴  있다. 아기를 돌보는 것이 그냥 힘들지 않고 엄청나게 힘들다. 도움받을  없이 온전히 그걸 해내야 했던 철없는   대의 부모가 선택한  겪어냄이 아닌 ‘외면이었을 것이다. 그래 , 아기를 돌보는 기르는  너무 힘들다. 그들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아니라, 그렇게 책임감이라곤 없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누군가가 아기를 낳아 키운다면 그런 행동이 실행될 수도 있을 만큼_  아기를 돌보는 것은 힘들다는 것임을 뼈저리게 이해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철없는 부모는 그럴  있다고 생각되었다.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이건 그냥  일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누군가 실수로 임신을 하고 누군가 어쩌다 보니 아이를 가졌다는 말은 실상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저 쾌락을 즐기다 갖게  아이를 어떠한 준비도 없이 기를  없다. 나는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소재거리가 되었던 임신이라는  중대한 일에 대해 가벼이 지나친  모든 극본을 모아 다시 써야 한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연애를 거쳐 결혼을 준비해 낳은 아이임에도 힘이 들었다. 혼전임신으로 급하게 결혼 날짜를 잡는 커플들을 이해  했던  임신기간 중에 오는 신체적인 변화 때문이.  극변의 시기에  중대한 결혼 준비를 한다는  정말 버거운 일일 테니 말이다.


나라면 해내질 못할 일들을 해내고 마는 사람들도 많다.




어찌 되었던 아무튼 간에, 그래서 어른이 아기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철들고 이타적인 행동이 가능하게 자라난 어른만이 아기를 가져야만 한다. 소위 말하는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그냥 임신이란 것을 하면  된다. 그리고 실수로, 어쩌다 보니, 아기를 가지는 행위는 진정 말이 아니 되었다.


이 일은 어른들만이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어른이 아이를 키우며 한층 더 성숙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를 되돌아보고 예전을 추억하며 다가올 미래를 그리는 일은 그 작은 강낭콩 같았던 아이로 시작된다.



나 자신이 무척이나 철이든 한해였다.

엄마 생각도 많이 났고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도 한없이 느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내 생에 집착이 생겼다는 점이다. 어릴 적 나는 나이 50이라는 숫자는 늙은 여자로 여겼다. 그래서 생에 미련이 없다면 안락사가 가능한 나라에 가서 모든 걸 정리하고 죽음을 택하는 삶도 참 좋겠다 생각한 적 있던 사람이다.


또한 이십 대의 나는 객사가 꿈이었다. 나의 죽음을 생각할  어느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고사는 진정 싫었고, 그렇다고 너무 늙어  몸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나이에 자다가 저세상을 가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설계하고 꿈꾸던 죽음은 휴가를 떠나는 내가 예쁜 옷을 싸가지고 가서 여행지를 즐기다 죽는 바로 ‘객사였다. 그렇게 된다면  여행위해 집안을 정리하고 나왔을 터이고 나름의 휴가기간위해 어느 정도 누군가에게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인수인계도 정해졌으리라 생각되어 나는 언젠간 그렇게 휴가를 떠난 내가 좋은 휴양지에 놀러 가서 실컷 놀다 미련 없이 내가 그동안 살던 일상적공간이 아닌 곳에서 그렇게 죽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환갑을 맞이하자  또한 나중에  나이에 저리 멋지고 어여쁜 엄마로 남겠노아 다짐하게 되었고 아이를 가진 나는 이제, 환갑이 아닌    있다면 정말 오래도록 살고 싶어졌다.


50에 안락사를 생각하던 나는 말이 안 되었음을 깨달았고 휴양지에서의 객사라는 죽음의 방법을 꿈꾸던 나는 그 전제조건으로 내가 오래오래 살고 내 딸이 스무 살은 넘어 나와 내 남편이 늙었을 때’라는 조건을 붙이게 되었다. 그래, 언젠간 죽는다면 내가 꿈꾸던 방식의 객사는 좋다. 하지만 정말 나는 오래 살고 싶은 생의 욕구가 더 간절해졌다. 그러니 목숨 질기게 살다 행복한 휴양지에서 죽으면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어쨌든 내 자식 때문이고 내가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난 내 자식을 두고 일찍 죽기 싫어졌다.   

너와 참 많은 행복을 누리고 싶고 너의 자람을 그토록 지켜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그동안 했던 작은 잘못이라도 사죄하고 용서받고 싶어졌다. 왜인지 그 모든 것이 널 위함이다. 네게 혹여나 해코지가 될까 싶고 너에게만은 좋은 것만 보여주고 힘들지 않게 키우고 싶으며 늘 웃는 아이로 만들고 싶어졌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아프지 않길, 슬프질 않길 바라본다.


아기를 낳은 나는 테레사 수녀나 세계평화협회의 일원이라 더 된 것처럼 그렇게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



이렇게 내가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함에 그 어떤 바람이 없다. 내 딸인 너는 그저 건강하고 해피한 아이러 자라나기만 해 다오. 무엇을 위해 미친 듯 티이 달려가는 인생이 아닌 그저 지금 웃음소리 그대로 그렇게 맑디 맑게 웃어다오. 네가 잘되어 날 보필하라느니 네가 성공하여 나 또한 뻔지르르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 없이 베푸는 나의 희생임을 강조하고 싶다.


너를 위해 내가 이렇게까지 했다는 그 어떤 얹어도 주지 않으려 한다. 그저 나는 내가 아닌 타인인 너를 위해 이렇게 엄마로서 살아갔음에 세상 수없이 많음 엄마들이 그러함에 그저 그렇다고 여길 것이다.




다만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은 생겼다.



나는 확신한다.

나는 죽으면 무조건 천국행이다.

아기를 키우면서 나는 확신했다.

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인내하고 희생하며

착하게 살아가는데  사후, 천국쯤은 확정이 분명하다.

#엄마의 확신


#엄마는 천국행

#사후세계가 있다면






이 글은 쓰다 잠들고 쓰고 그렇게 다시 보기를 반복하다 이제야 마침표를 찍어본다.

22.05.31 (21.10월 부터 쓰던 글)


이른둥이로 태어난 내 아기 내 딸은 아직 평균치보다는 작지만 열심히 그 수치를 따라잡고 있다. 아마 세월이 더 흘러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된 내 아이를 마주하며 이 글을 쓰던 나를 회상한다면 그때 그 짧은 시간 동안 난 참 별거 다하고 별생각을 다했노라 웃을 것만 같다.



내 딸이 자라면서 나의 육아일기는 더 두터워지고 나 또한 아이와 함께 자라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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