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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갓 Nov 25. 2017

광고 중 '평창'의 숨은 의미를 찾아보라능

어린 광고 리뷰 09.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TV광고

3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다시 올림픽이 열립니다. 8번째로 동하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나라가 되었는데요.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인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도 평창올림픽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할 텐데, 대략 7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인데도 국민적 관심도는 굉장히 낮습니다. 어쩌면 정치적으로 굉장히 큰 사건이었던 국정농단이 올림픽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도 있었고, 준비 과정에서 또 다른 재정적인 문제와 여러 사건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또 그것들이 알려지면서 기대가 많이 줄어들게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사람들의 낮은 기대를 극복할 방법은 완벽하게 대회를 마무리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평창올림픽/패럴림픽을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알리고 큰 관심을 쏟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 광고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까지 나서 자국민들에게 홍보할 필요성이 있었는지는 조금 의문이 들지만, 여전히 평창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정부가 발벗고 나선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든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TV 광고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329796

예쁘다(이미지 출처 : tvcf)






ㆍ 여러모로 급하게 만든 것 같다

전 이 광고를 처음 봤을 땐 순간, 초등학생 때 방학숙제를 하는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항상 개학 전날이나 전전 날에 일기를 한꺼번에 썼었는데요. 뭐, 누구나 다 그렇지 않았습니까? 날씨는 항상 맑음이었고, 어떻게든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양산형 소설을 마구마구 집필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무조건 '참 재미있고 보람찬 하루였다'를 적어 한 줄을 채웠죠. 그렇게 개학식에 일기를 제출하면? 더 이상의 자세한 과정은 생략하겠습니다. 나중에 보니 혼나고 매 맞은 일을 일기로 썼는데 마지막엔 보란 듯이 재미있고 보람찬 하루였다고 쓴 게 있었습니다. 몰아 쓰는데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이처럼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광고는 밀린 방학숙제 밤새워 겨우 채운 것처럼 결과물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급하게 만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는데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몇 개 있었습니다. 그리 궁금하지 않으시겠지만 한 번 들여다 볼까요?


급하게 만들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지(이미지 출처 : 네이버 웹툰 <미쳐 날뛰는 생활툰>)



1. 평창올림픽/패럴림픽 분위기가 안 난다.

40초 분량의 광고에는 평창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촬영 장소로 쓰였던 곳은 평창이 아닌 태릉선수촌입니다. 딱 봐도 올림픽이 열리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평창 경기장에서 촬영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다고 광고 만들겠답시고 대회가 코 앞에 다가온 선수들을 평창으로 끌고 가 시간 뺏어 가며 찍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욕만 배불리 먹었을 게 뻔하겠죠? 그렇다면, 태릉선수촌에서 올림픽 분위기(역동성과 열정 등의 표현)라도 냈어야 합니다.


뒤쪽에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관련 현수막들을 걸어놓았지만, 눈에 띄지 않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최다빈 선수, 컬링 선수들의 화면에는 로고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소품 준비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숨은 평창 찾기!(이미지 출처 : tvcf)


광고 구성으로 살펴보건대, 평창올림픽/패럴림픽 광고라기보다는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앞둔 선수들의 다짐을 나타낸 광고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응원해달라, 이런 것처럼 말이죠. 참 애매모호합니다. 올림픽 광고지만 그렇다고 그런 분위기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올림픽/패럴림픽 광고가 아니라고 해도 애매모호합니다.


무엇보다 올림픽/패럴림픽은 지상 최대의 스포츠 경기입니다. 시원하고 역동적인 분위기가 그와 잘 어울리겠죠. 그래도 올림픽과 패럴림픽이기에 어느 정도 선수들의 집중하는 눈빛이나 달리는 장면, 힘껏 채를 휘두르고 스톤을 미는 장면 등을 삽입하였으나, 시원하기보다는 시원찮습니다. 단순한 카메라 워크와 보통 조명을 사용하여 냉정한 스포츠의 세계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 찍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2. 리에이티브가 없다.

실제 올림픽에 출전하는 쇼트트랙, 봅슬레이, 피겨스케이팅 등 다양한 선수들을 모델로 사용했다는 점은 굉장히 좋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이 나서서 나도 평창, 너도 평창 우리는 평창, 평창만 기분 좋게 외치고 광고가 끝나는 것은 굉장히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크리에이티브가 없습니다. 냉정히 말해서, 각 종목에 맞는 선수들 몇 명 불러서 평창 몇 번 외치게 하고 마무리하자고 쇼부(?)를 친 듯한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광고를 멋있게 기획했다고 한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원하는 아이디어대로 제작을 끌고 가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아까 이야기했듯, 지금은 선수들이 훈련과 경기 준비에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할 시기이기 때문에 선수들을 섭외하는 과정이 힘들었을 수 있습니다. 만약 태릉선수촌 측에서 '잠시밖에 안 된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면, 저라도 저렇게 광고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광고 제작 과정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기에, 선수들을 활용할 시간이 부족해 크리에이티브를 펼칠 환경이 안 되었을 수 도 있다는 말이죠.

너희들은 바보야... 평창밖에 모르는 바보...ㅠㅠ(이미지 출처 : tvcf)




3. 의미를 알기 힘든 대사

광고에서 제일 많이 들리는 대사가 있죠. '나는(나도, 우리는) 평창입니다'입니다. 한 번에 확 와 닿지는 않는 대사입니다. 분명 선수들은 무언가 다짐을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나는 평창입니다'를 외치니, 뭐 난 짱이다 이런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평창'이라는 단어는 어떤 장소를 부르는 지명(地名)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뭐 평창에 '열정'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고 한들, 사람들이 그냥 '평창'이라는 말만 듣는다고 바로 열정을 떠올릴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우리 집 강아지가 사료를 잘 먹을 확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모든 열정이 모이는 축제의 자리이다.(올림픽/패럴림픽 = 열정)
이번에 평창에서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개최한다'(올림픽/패럴림픽 = 평창)
→ '나는 평창입니다'를 들으면 '나는 올림픽/패럴림픽이다'를 넘어 '나는 열정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에 의해서 '나는 평창입니다'를 열정 가득한 선수들의 다짐으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늘 이야기하지만, 어떤 카피나 대사가 순식간에 시청자들의 마음에 확 박히지 않는다면 광고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광고 시청자들은 어떤 카피나 대사의 뜻을 모르면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냥 모르는 채로 잊습니다. 이로 미루어볼 때 '나는 평창입니다'는 그 의미를 생각하는 걸 넘어서, 해석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좋은 대사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의미가 광고 막바지에 나오는 김연아의 대사는 그나마 이해가 수월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 된 열정으로 평창입니다'로, 평창으로 우리는 하나가 된다는 의미가 그나마 설명이 이루어졌죠. 하지만 이 대사의 배치가 광고의 끝부분이라, 계속 이해를 못하다가 마지막에 의미를 알게 됩니다. 좋지 않습니다. 앞부분 30초는 날리게 되는 겁니다.


마지막 대사가 의미를 이해하는데 수월하다고는 했지만, 쉽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 된 열정으로 평창입니다'을 막상 들었을 때 무언가 말이 이상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으로'는 어떠한 방법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한다'같은 동사가 그 뒤에 이어져야 합니다. '전교 1등의 공책으로 공부한다'처럼요. 하지만 '평창'이라는 명사가 나옴으로써 문장이 어색해졌습니다. 문법에 어긋난 표현도 뜻을 전달하는 과정에는 큰 걸림돌이 됩니다. 문법에 맞으면서 의미 전달도 되는 '우리 모두의 열정이 모여 평창으로 하나 됩니다'가 어떨까 조심스럽게 제안해봅니다.

카피는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특징과 잘 엮은 표현을 사용해 마음에 든다. 그러나 대사가 문제.(이미지 출처 : tvcf)


답이 보이지만 넘모 어려웡





ㆍ여담 : 혹시 노력보단 제작비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멋있는 광고를 제작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돈입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은 크리에이티브라고 해도 그걸 실현시킬 수 있을 정도의 제작비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죠. 평창올림픽/패럴림픽 광고를 급하게 만든 것 같은 티가 굉장히 많이 나지만, 돈이 많았다면야 현수막 많이 걸고 패널도 설치하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정작 화면에는 조금 초라한 현수막 몇 개와 로고 패널 등이 전부였습니다. 아무래도 광고를 잘 만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제작비가 턱없이 적었던 것은 아닐까요?(비장)



ㆍ 중요한 임무를 맡은 이 광고, 그러나...

분명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첫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이건만 사람들의 관심은 그리 뜨겁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정부에서도 나서 국가 차원에서 홍보하는 것이지요. 평창 롱 패딩 덕분에 어느 정도 붐은 일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붐이 올림픽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광고는 평창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를 높여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는데요. 솔직히 말해 성공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광고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바로 '나는 평창입니다'라는 대사인데요. 무엇보다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뭔가 평창과 연관을 지으라면 지을 수 있지만, 바로 와 닿는 표현은 아니었기 때문이죠. 광고 댓글 중에 '나는 인천 계양구입니다'라는 댓글을 보았습니다. 한참을 웃었어요. 대사를 단순하게 받아들인 자만 할 수 있는 드립입니다. 그의 재치에 무릎을 탁 쳤죠. 사람들은 메시지가 간단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외면합니다. 가뜩이나 광고를 피하기 때문에 쉽게 다가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광고에 등장하는 제품에 관심이 있는 경우에만 그 뜻을 이해하려 합니다. 그럼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요? 아닌 사람은 아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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