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기
어젯밤부터 마음이 영 껄끄러웠다.
손가락 끝에 돋아난 가스라기처럼 불편했다.
“무슨 일 있어?” 하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도 없다.
막연하고 답답하고 불안하고
그러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 알 수도 없어졌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동안 너무 ‘안락하게’만 지내온 건지도 모르겠다.
치열하게 직면하기보다는 흘려보내고, 스쳐가고, 잊어버리는 쪽을 택했다.
덕분에 무언가를 깊이 배울 기회도 함께 흘려보낸 채 나이만 들어버린 기분이다.
나는 여전히 타인과 ‘얽히는 것’이 두렵다.
좁고 익숙한 울타리 안이 안전하게 느껴지고, 혼자가 훨씬 편하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걸까.
보잘것없는 밑천이 드러나는 게 싫은 걸까? (그렇다.)
상처받는 게 걱정일까? (당연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상처받지 않기”에만 몰두하느라,
정작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걸.
나만 피해자인 것처럼 굴면서,
내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가스라기를 돋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오만하구나.
모든 것을 섬세하게 느끼며 살면
아마 제명에 못 살겠지.
매 순간 희비가 교차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야 할 테니까.
그래도 가끔은, 카메라 렌즈를 천천히 돌리는 촬영 감독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각도,
공기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
쏟아지는 햇살 속에 떠다니는 먼지 같은 것들.
어떻게 흔들리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 환기 좀 시켜야겠다.”
심오한 깨달음이 아니어도
어쩌면 그 정도의 자각이 바로 ‘생각의 시작’ 일지 모르니까.
사람이 죽으면
영혼의 거울 앞에 서게 된다는 말이 있다.
흉악할 것 같아서 무섭다.
이럴 때는
일단 창문부터 활짝 열고,
공기부터 바꿔야겠다.
그리고 웃어.
미소가 영혼에 새겨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