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소년에게로 이어진 별의 이야기
7장은 별을 사랑한 브루클린의 한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년의 반짝이는 의지가 빛을 잃지 않도록 곁을 지켜준 선생님과 부모님이 있었다. 그리고 훗날, 소년이었던 그 남자는 고백한다. 우주를 깊숙이 탐사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엄청난 행운' 덕분에 별과 행성을 향한 탐험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고.
그 소년은 마음껏 우주를 헤쳐 나갔을까? 숨이 다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았을까? 아마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이 호기심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수만 년 전 이 땅에 살았을 이름 모를 소년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불꽃을 떠올리고, 다른 세상의 사냥꾼들이 피워놓은 모닥불을 상상했을 테니까. 별이란 구멍이 숭숭 뚫린 커다란 짐승의 가죽 장막일지도 모른다는 그 아득한 상상력의 순간들이 겹겹이 이어져, 결국 브루클린의 소년에게까지 가닿은 것이 아닐까.
인류의 걸음은 나아가기도 했고, 때로는 돌아가기도 했다.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그 시대에는 당연히 맞았을 신념과 종교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다. '우주는 완벽해야 한다'는 고집이나 '실험은 천한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눈앞의 진실을 외면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지금의 우리가 보면 '허...' 소리가 나오는 대목들을 마주한다. 결국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이야기들이 얽히고설켜 인류의 지도가 그려진 것이다. 그 어설픈 조각들이 모여 결국 진리에 닿으려 애쓰는 과정에 울컥해진다.
특히 칼 형님은 피타고라스에게 할 말이 많았던 것 같다. 숫자의 신비에만 빠져 실험을 멀리하고, 지식을 자기들만의 비밀로 간직하려 했던 그들의 엘리트주의가 못내 마땅치 않았나 보다. 과학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햇살 같아야 한다고 믿는 브루클린의 소년에게, 피타고라스의 비밀 정원은 아마 꽉 막힌 담장처럼 보였을 것이다.
별을 사랑했던 소년은 이제 별이 되었다. 별을 탐험하고 싶어 돛을 올릴 준비에 분주했던 그 의지는 오늘날 인류의 항해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굳게 믿는 것들이 기분 좋게 뒤집히는 그날이 기다려진다.
시간이 지나고, 오늘의 글을 돌아보며 '무식해서 참 용감하게 썼구나' 하고 웃게 될 날이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전문적인 지식보다 마음에 와닿는 묘한 감상이 있다. 설명할 수 없어 답답한 부분이지만 이게 최선이니까.
수만 년 전의 원시 소년도, 2,500년 전의 그리스인도, 그리고 브루클린의 소년도 각자의 평범한 하루를 살며 밤마다 먼 곳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피워 올린 모닥불과 그들이 그렸던 환상들이 켜켜이 쌓여 오늘 나의 책장까지 닿았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뭉클하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같은 별 아래를 걷고 있는 나그네들인 셈이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너희도 애급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신명기 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