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
우리 집에도 별자리에 관한 책이 있다.
내 책은 아니고, 동생이 별에 심취했던 시기에 구입한 책이다.
각자 가정을 꾸린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그 책은 우리 집에 남아 있다.
나는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는데.
어린 시절, 고향의 밤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저녁을 먹고 어머니가 뒷정리를 마치면 아홉 시도되기 전에 불이 꺼졌다.
눈이 어둠에 익어가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생과 속닥이며 장난치던 기억이 난다.
장난이 심해져 부모님의 심기를 거스르면 방에서 쫓겨났다.
둘 중 꼭 하나만 쫓겨났다.
아직 어린 나이였던 나는 어둠이 무서웠다.
풀벌레 소리도 으스스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공포까지는 가지 않았는데,
밤하늘 가득 퍼부어 놓은 별들 때문이었다.
짧은 반성의 시간 동안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제대로 그것들을 찾았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이어 붙이면 여기도 국자 모양, 저기도 국자 모양.
이 별이 제일 밝다 싶어 눈을 돌리면 더 밝은 별이 나타났다.
별에 대한 내 기억은 이 정도가 전부다.
코스모스 8장은 별자리로 시작됐다.
별자리는 장소에 따라, 각도에 따라, 세대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는 말에
조금 낭만적인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그 기분을 오래 누리기도 전에
아인슈타인과 특수 상대성 이론을 만났다.
아인슈타인은 그렇다 쳐도, 상대성 이론은
내 뇌가 이해하기를 정중히 거부했다.
그저 이렇게 받아들였다.
우주에는 ‘속도 제한’이라는 디버프가 있고,
빛의 속도라는 절대 기준을 지키기 위해
우주는 기꺼이 시간과 공간을 비틀어
터무니없는 현상을 만들어낸다.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을까, 이 우주는.
빛의 속도에 다가가면 아무리 달려도 속도가 나지 않고
발이 바닥에 붙들린 듯한 느낌일까.
속도의 한계는 누가 정했을까.
우리는 여전히 꿈속에 있는 걸까.
빛의 속도가 절대선인지 악인 지는 모르겠지만
규칙은 깨라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언젠가 이 한계를 넘어서는 날이 올까.
궁금해졌다.
코스모스를 읽는 내내 공통된 질문 하나가 있다.
도대체 왜?
왜 자꾸 우주, 심지어 태양계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걸까?
역마살이 우주에까지 뻗친 호기심쟁이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왜지? 왤까?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만
솔직히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길어야 백 년인데.
아, 개인이 아니라
인류의 시간을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왜 이렇게 못 기어나가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꼭 가야 한다면
핵폭탄을 터뜨리며 1등으로 달려가기보다
햇살을 받으며 유영하는 돛단배를 타고 싶다.
우주가 거대한 꿈이라면
숨 가쁘게 달리기보다
그 꿈결 같은 찰나의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며 이어가고 싶다.
그다음 풍경은
후대가 아름답게 이어 주기를 바라면서.
천재들의 원대한 꿈은
이해도 안 되지만,
이해를 원하지도 않는다.
PS.
핵미사일을 싹 해체해 우주선 엔진으로 쓰자는
칼 형님의 생각에는 덩달아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