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이야기 10

네가 자유를 알아?

by 하이진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긴 지 오래였다. 이주임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진돌이를 욕했다. 화면 속에는 기획안 대신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문서 하나가 띄워져 있었다.


[찾습니다] 이름: 진돌이 / 종: 진돗개(백구) / 특징: 노란 가죽 목줄, 눈치가 빠르고 가끔 멍청한 표정을 지음]

"이 무슨 진돗개 망신이야, 정말... “


이주임은 마른세수를 하며 프린트 기기 앞으로 향했다. 잉크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뜨끈뜨끈한 종이 백 장이 쏟아져 나왔다. 전단지 속 진돌이는 세상 물정 모르는 해맑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니 울컥 화가 치밀다가도, 이 추운 밤 어디선가 덜덜 떨고 있을 녀석 생각에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이 새끼 들어오기만 해 봐. “


회사를 나선 이주임의 손에는 테이프 뭉치와 전단지 다발이 들려 있었다. 낮 동안 김이사에게 ‘개 관리 하나 똑바로 못 해서 업무 분위기 흐린다’며 호된 꾸지람을 들었던 터라 발걸음이 평소보다 무거웠다.

"너 부럽다고 했던 사람들 말 다 믿지 마라, 진돌아. 그 사람들 지금 다 집에서 뜨끈한 국물에 밥 말아먹고 있어. 너만 고생이라니까?"


첫 번째 전봇대에 전단지를 붙이며 이주임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시장 입구, 핫바 가게 앞 전신주에도 한 장을 붙였다. 이주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주변을 기웃거렸다. 셔터가 내려간 어두운 골목마다 진돌이의 하얀 꼬리가 보일 것만 같아 자꾸만 고개가 돌아갔다. 전단지를 돌리는 이주임의 등 뒤로 차가운 밤바람이 스쳤다.


"개에게 산책이 없다는 건 몹쓸 짓이지. “

상가 번화가를 지나 어두운 주택가 골목까지, 이주임은 굽 높은 구두가 발을 파고드는 고통도 잊은 채 전단지를 붙여 나갔다. 편의점 앞에 전단지를 붙일 때는 아르바이트생의 눈치가 보였지만, 염치 불고하고 "혹시 하얀 진돗개 지나가는 거 못 보셨어요?"라며 물었다. 돌아오는 건 고개를 젓는 무심한 반응뿐이었다.


동네 어귀 큰 나무에 붙이고 나니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졌다. 텅 빈 거리에는 이주임의 가쁜 숨소리만 가득했다. 그녀는 가로등 불빛 아래 붙여진 전단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유가 나를 부르네... 멍멍!'이라며 비꼬던 동료들의 농담이 머릿속을 스쳤다. 줄을 끊고 나간 진돌이는 어쩌면 그들 모두가 꿈꿨던 대리 만족의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것에 따르는 대가를 알고 있었다.


”네가 자유를 알아? “


이주임은 남은 전단지 뭉치를 가방에 집어넣으며, 멀리 어둠이 내려앉은 산등성이를 응시했다. 그곳 어디선가 진돌이가 자유의 냄새를 맡고 있기를, 그리고 대가를 배워 돌아오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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