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10장

영원의 벼랑 끝에서, 세포가 남긴 기록

by 하이진

10장을 다 읽고 난 뒤, 멍하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머릿속엔 오직 몇 줄의 문장이 떠올랐다.


몸 밖의 또 다른 세계, 수많은 코스모스들, 우리는 모두 코스모스다.


칼 세이건은 이 장에서 우주의 팽창과 수축, 그 끝을 알기 위해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인간의 집요한 호기심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3차원의 뇌를 가진 인간에게 4차원의 우주와 영원의 시간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우주가 팽창하다 사멸하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해서 종말에 이르건 와닿지 않았다. 다만 우주마저 태어나고 죽는데,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면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광막한 우주 대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내 몸속의 아주 작은 ‘세포’ 하나를 떠올려 보았다.


그 세포는 자기가 사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다. 혈관이라는 붉은 강을 따라 흐르며 거리와 속도를 배우고, 자신의 짧은 생으로는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수많은 ‘별(세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경탄했다.


“저 멀리에도 지적인 생명이 살고 있을까?”


혼란뿐이라 여겼던 이 세계가 정교한 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작은 세포는 온몸으로 전율했다. 비록 자신은 정해진 속도와 거리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유한한 존재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세상의 끝’을 향해 나아갔다.


운이 좋았던 그 세포는 마침내 손가락 끝, 자신이 살던 우주의 벼랑 끝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른 거대한 우주를 마주했다. 벼랑 너머에는 수억 개의 또 다른 코스모스들이 질서도 규칙도 없이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세포는 아연해졌다.


“우리 우주 밖에도 이렇게 많은 우주가 있다니.”


그러나 벼랑 끝을 본다는 것은 곧 자신이 속한 우주와의 이별을 의미했다. 세포는 생이 다해가는 순간, 마지막 기록을 남겼다.


“나는 단 하나의 우주를 읽으려 책을 폈는데, 내 몸속의 수조 개 우주를 발견하고, 내 밖의 수억 개 우주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우주를 알고 싶어 하는 걸까. 복잡한 이론의 이름들을 안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고 싶어 한다.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우주라면, 이 우주 너머에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하는 일 역시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우주의 비밀과 영원의 끝에 닿고 싶다는 본질적인 욕망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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