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이야기 12

추적자의 발걸음, 뒤통수 조심하자.

by 하이진

진돌이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박힌 전단지 뭉치를 가방에 쑤셔 넣으며 이 주임은 집을 나섰다. 주말 아침, 평소라면 이불속에서 만화책이나 끼고 있을 시간인데, 발걸음은 회사 근처로 향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안 해서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업무의 연장이라면 연장근무 수당이나 경비라도 청구할 텐데, 이건 뭐 명분도 없는 ‘구호 활동’이다.


“그놈 영물이라 알아서 돌아올 거야”


다들 근거 없는 낙관론만 펼치는데, 그 말을 믿느니 로또 당첨을 믿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이 놈의 시끼, 오기만 해 봐 아주. 고생시킨 만큼 털이 빠지게 조물조물해 버릴 테다. 리더십 훈련소 입소는 덤이다.”


이 주임은 이를 꽉 깨물었다. 진돌이가 목줄을 끊고 탈출한 첫 번째 주말이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인근 식당가와 시장 일대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가게마다 들러 진돌이 사진을 들이밀었다.


“혹시 이렇게 생긴 애 못 보셨어요? 귀가 쫑긋하고... 성격이 좀 뻔뻔한데.”


돌아오는 건 무심한 고갯짓뿐이었다. 다리가 슬슬 비명을 지를 때쯤, 어느 골목길 담벼락 아래 멈춰 섰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더니 담벼락 위에서 호피 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른하게 앉아 있었다. 귀 끝이 살짝 잘린 녀석은 한눈에 봐도 사나워 보였다.


“안녕? 여기 터주대감이니?”


대답이 돌아올 리 없지만 괜히 말을 건넸다. 이 주임은 장난기가 발동해 손에 든 진돌이 전단지를 고양이 코앞에 들이밀었다.


“야, 혹시 이런 애 본 적 있어? 너보다 덩치는 좀 큰데 하는 짓은 철없거든.”


고양이는 꼬리를 살랑이며 이 주임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정보료를 내놓으라는 무언의 압박 같았다.


“먹을래? 이거 뇌물이야.”


가방 구석에서 비상용 츄르 하나를 꺼냈다. 도도하던 고양이의 눈빛이 순식간에 게슴츠레해졌다. 역시 자본주의의 맛은 종을 가리지 않았다.


“이거 소고기도 들어간 거야. 나도 비싸서 소고기는 잘 못 먹는데... 자, 정보 좀 줘봐.”


담벼락 위에서 우아하게 내려온 고양이가 이 주임 앞에 자리를 잡았다. 츄르를 뜯어 내밀자 ‘할짝할짝’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슬쩍 손을 뻗어 쓰다듬으려 하자, 고양이가 츄르를 먹다 말고 눈을 치켜떴다.


‘먹는 건 먹는 거고, 선은 넘지 마라 인간.’


“아이구, 알았어. 안 만져. 치사해서 원.”


츄르 한 개를 통행료로 조공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러다 시장 입구 수제 어묵 가게에서 드디어 결정적인 목격담을 확보했다.


“아유, 그 집 개 맞네! 하얗고 덩치 큰 놈. 어제저녁에 당당하게 와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더라고. 아주 ‘어묵 하나 줘도 쇼’ 하는 표정이라니까?”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진돌이는 시장통의 맛집을 풀코스로 즐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떠돌이 개마저도 굶기지 않는 시장 상인들의 후한 인심 덕택에, 녀석은 가출이 아니라 ‘미식 여행’이라도 다니는 것 같았다.


이 주임은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주말도 반납하고, 소고기 츄르까지 조공하며 발바닥 땀나게 뛰어다니는데. 가출범 진돌이는 시장 인심에 몸을 맡긴 채 미식가의 길을 걷고 있다니.


‘그래, 밥이라도 잘 얻어먹고 다니니 다행이다만...’


이 주임은 다시 가방 끈을 고쳐 맸다. 시장 어딘가에서 어묵 국물 냄새를 맡고 있을 그 하얀 뒤통수를 상상하니 손이 근질근질했다.


한 대 쳐주고 싶다. 격렬하게 때려 주고 싶다.



#진돗개#반려견#가출#주말반납#어묵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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