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별주부전 1

간 때문이야.

by 하이진


“그래, 토끼 간을 구해 올 자가 정녕 아무도 없단 말이오?”


용왕이 황달로 누렇게 뜬 눈동자를 번뜩이며 대신들의 면면을 훑었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시선을 피하며 별주부를 힐끗댔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넓은 바다에서 육지용 '하이브리드형 폐'를 탑재한 자는 오직 별주부뿐이었으니까.


별주부는 대신들의 시선이 등에 꽂히는 걸 느끼며 머리를 등껍질 속으로 서서히 밀어 넣었다. 애초에 토끼 간이 효험이 있긴 한 건지 의문이었다. 바다에도 딱딱하게 굳어가는 용왕의 간을 말랑하게 만들 귀한 약재가 널리고 널렸는데, 왜? 도대체 와이? 자꾸만 자신을 육지로 못 보내 안달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별주부, 자네밖에 내 믿을 이가 없소.”


용왕이 길게 우는 소리를 냈다. 하도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인 뻔한 레퍼토리였다. 하지만 계급이 깡패라고, 별주부는 기어들어 가는 머리를 억지로 빼내 고개를 주억거려야 했다.


“전하, 여러 문헌을 살펴본바 토끼 간은 그저 희소성 때문에 불로초처럼 부풀려졌을 뿐, 실제 효험은 신통치 않다고 하옵니다. 차라리 문어나 오징어의 다리를 삶아 드시지요. 그것도 아니면 어패류 녀석들을 싹 잡아들여 탕이라도 올리겠습니다.”


“어허, 다 소용없다는 걸 경이 더 잘 알지 않소. 게다가 자꾸 백성들을 탄압하다가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경이 책임질 거요?”


그랬다. 이미 다 해본 일이었다. 하지만 용왕의 간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실 약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놈의 술이 문제지.


곱고 부드러운 산호의 첫 순을 따서 백일 밤을 정성으로 빚은 ‘산호주’. 한 잔에 시름을 잊고, 두 잔에 풍류를 읊고, 석 잔에 게(개)가 된다는 용궁 최고의 명주. 그 빌어먹을 술을 끊는 게 우선인데, 용왕은 명약만 찾으며 간에 무리를 주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었다.


“전하, 일단 금주를 하심이 어떠실는지요?”


눈치 없는 대신 하나가 소귀에 경 읽는 소리를 지껄였다. 그게 됐으면 지금 이 사달이 났을까. 대신들의 깊은 한숨 소리가 편전을 가득 채웠다. 용왕이 저 지경이니 용궁의 앞날은 심해만큼이나 캄캄했다.


“에이, 용궁의 미래와 짐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가 단 하나도 없구나! 썩들 물러가시오!”


용왕이 역정을 내며 손에 쥔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퇴궐하는 무리에 끼어 슬그머니 빠져나가려던 별주부의 뒷덜미에 서늘한 목소리가 꽂혔다.


“자네는 좀 남지.”


‘젠장….’


별주부는 튀어나오려는 욕을 꾹 삼키며 머리를 다시 몸속으로 구겨 넣었다. 등딱지 위로 식은땀이 흘렀지만, 바닷물에 씻겨 티조차 나지 않았다. 눈치 없는 새끼 새우들만 열린 문틈으로 장난을 치며 오갈 뿐이었다.


“천 년 전, 자네 가문에서 토끼를 실제로 데려온 적이 있었지. 그때야 순진해서 속아 넘어갔다지만, 이제 우리는 알지 않나. 다시 한번 잘 구슬려 데려오게. 내 자네를 바다의 이인자로 만들어 주지. 재상 자리는 어떤가?”


용왕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술병을 찾았다. 저 손목을 분질러버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누르며 별주부는 시간을 달라고 청했다. 선조의 문헌을 찾아 방법을 모색해 보겠다는 말에, 용왕은 사흘의 말미를 줄 테니 확답을 가져오라며 은근한 협박을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온 별주부는 서재 구석에서 낡은 서책 하나를 꺼냈다. 토끼에게 속아 화병으로 명을 달리 한 조상이 임종 직전까지 써 내려간 ‘지옥 기행문’이었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 기록을 보기에 앞서 두 가지만 당부한다.]


첫째, 토끼를 믿지 마라.

둘째, 첫 번째 당부를 절대 잊지 마라.




밤에 불을 끄고 누워서 애들이랑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별주부 이야기가 나왔어요.

황당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편인데,

별주부전이 용궁의 지령을 받아 장기밀매하는 이야기라고 우기다가

아!! 실제로 써볼까 싶어 시작해 봤어요.

장기밀매 이야기를 쓰기에는 무서워서 조금 온건하게 가보기로 했습니다.

별주부는 재상이 될 수 있을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미지는 제미나이입니다.]



#별주부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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