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肝)'을 아십니까?
별주부는 밀물에 몸을 맡기고 파도를 탔다. 무거운 마음으로 용궁을 떠나왔던 것과는 달리, 뭍에 가까워질수록 기분이 묘하게 들떴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낯선 해방감과 자유. 그것은 분명 설렘에 가까운 흥분이었다.
하지만 그 고양감이 박살 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육지에 발을 내디딘 직후였다.
"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절망 그 자체였다. 푸른 숲은 저 멀리 지평선 끝에 실금처럼 걸려 있었고, 그 사이를 끝을 알 수 없는 황금빛 모래사막이 가로막고 있었다. 지옥불에 달궈진 듯 뜨거운 모래밭은 푹푹 빠져들었고, 딛는 족족 발바닥이 익어가는 통증이 전해졌다.
전복이 바위에 붙어 꼬물대는 것보다도 못한 속도. 별주부는 절감했다. 토끼는커녕, 저 숲줄기에 닿기도 전에 등딱지 안의 수분이 다 말라죽을 판이었다.
별주부는 한 손으로 폭포처럼 흐르는 땀을 훔치며 등딱지 안쪽을 확인했다. 전복 껍데기로 만든 밀봉함 안에는 복어를 사흘 밤낮으로 달달 볶아 얻어낸 '신경 마비액'이 찰랑이고 있었다.
"자네, 정말로 토끼를 쑤실 생각인가? 조상님처럼 입담으로 꼬셔보는 건 포기한 건가?"
독을 계량하며 낄낄거리던 복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지옥 기행문 제12장. 토끼와는 변론하지 말라셨소."
복어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경고했었다. 양을 조금만 어겨도 토끼는 용궁에 닿기도 전에 사후세계로 직행할 것이고, 별주부는 '시체 간'을 배달한 죄로 목이 날아갈 것이라고. 치밀함만이 살길이었다.
성게에게 최고급 해조류를 뇌물로 주고 공수해 온 보라성게 가시 침, 햇살로부터 등딱지를 지켜줄 해초 오일, 그리고 최후의 보루인 용궁 이슬까지. 준비물은 완벽했다.
"없어진 건 없군."
그렇게 사흘 밤낮에 걸친 별주부의 '지옥 행군'이 시작됐다.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여기가 육지인지, 사후세계인지, 아니면 그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중간계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속에서 푸른 숲은 자꾸만 멀어졌다. 황금빛 모래는 이제 보기만 해도 신물이 났다.
'제기랄!!'
별주부는 등딱지 속 지옥 기행문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지옥 기행문 제38장] 너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너를 강하게 만들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선조를 향한 원망이 극에 달했다. 선조시여, 이 사막은 대체 언제 끝이 나는 것입니까. 진짜로 토끼를 데려오신 게 맞기는 합니까.
신앙에 가까웠던 믿음이 바닥날 무렵, 기적처럼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가 달궈진 등딱지를 식혔다.
천신만고 끝에 도달한 지평선의 경계. 초록색 잎사귀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별주부는 모든 긴장을 놓아버렸다. 머리와 사지를 등껍질 속으로 말아 넣은 채, 그는 지독한 수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똑똑.
단단한 등딱지를 두드리는 낯선 진동에 별주부가 잠결에 중얼거렸다.
"누구 쇼……?"
[지옥 기행문 제5장] 육지에서는 눈 뜨고도 코 베인다.라는 엄중한 경고를 잠결에 잊어버렸다.
"선생님, 혹시 '간(肝)'을 아십니까? 혈색이 많이 안 좋으신데, 제 이야기 좀 잠시 들어보시겠어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리를 불쑥 내밀자, 말똥말똥한 눈과 마주쳤다. 흰 털, 붉은 눈, 그리고 쫑긋하게 솟은 길쭉한 귀.
지옥 기행문 속 삽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바로 그 토끼였다.
선조시여. 이렇게 한 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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