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돌이 이야기 14

배고픈 방랑견, 배부른 반려견

by 하이진

비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잦아들었다. 지붕 밑 좁은 틈에서 몸을 웅크린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어둠 속에서 마주쳤던 누렁이와 검둥이는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새벽안개처럼 조용히 사라졌거나, 혹은 내가 모르는 더 거친 자유를 찾아 떠난 모양이었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마디마디가 비명을 질렀다. 젖은 털은 쇠사슬처럼 무거웠고, 어제 무리하게 달렸던 다리는 돌덩이를 매단 듯 저릿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뱃속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였다.


‘어제 먹은 핫바 조각은 이미 흔적도 없구나.’


텅 빈 위장이 쓰렸다. 그 쓰라림을 타고 억눌러왔던 기억들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회사의 파란 철문. 그 너머엔 "허허, 진돌이 잘 잤냐?" 하며 내 머리를 슥슥 문질러주던 경비 아저씨의 거친 손길이 있었다. 점심시간마다 "진돌아, 소시지 먹을래?"라며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던 이 주임의 미소도 떠올랐다.


무엇보다 그리운 것은 낡았지만 묵직했던 나의 밥그릇이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이면 어김없이 채워지던 고소한 사료와 깨끗한 물. 그것을 얻기 위해 내가 해야 했던 일이라곤 그저 꼬리를 흔들거나 반갑게 짖어주는 것뿐이었다.


이곳의 자유는 끝없이 넓었지만, 그 어디에도 내 몸 하나 편히 누일 자리가 없었다.

나는 이미 문명의 이기를 맛본 개였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새벽하늘은 차가운 청색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의문이 생겼다.


'내가 정한 방향으로 걷는다는 것은, 원래 이렇게 시리고 배고픈 일이었던가?'


코를 높이 들어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저 멀리, 아주 멀리서 내가 떠나온 곳의 익숙한 냄새가 섞여 오는 듯했다. 먼지 냄새와 커피 냄새,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던 사람들의 체취.


자리에서 일어나 젖은 몸을 크게 한 번 털어냈다. 빗방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모험심으로 들끓던 가슴은 어느새 차분하게 식어 있었다. 부끄러웠던 '회사 냄새'가 사실은 나를 지켜주던 온기였음을 깨달았다.


배고픈 방랑견보다는 배부른 반려견이 낫지.


나는 젖은 발을 한 자국씩 떼며, 생애 가장 외로운 새벽길 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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