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별주부전 9

정직한 사기꾼.

by 하이진

달주부는 이에 낀 사과 껍질을 이쑤시개로 느긋하게 후비며, 서류의 세세한 내역은 보지도 않은 채 마지막 장 [최종 정산 예정액]만 확인했다.


“아버님, 이 수치들을 그대로 믿으십니까? 중간 마진이니 재고 비용이니, 누가 봐도 뻔한 분식회계 아닙니까.”


아들의 날 선 지적에 달주부가 낄낄거리며 이쑤시개를 툭 던졌다.


“믿는다.”


예상치 못한 단호한 대답에 아들이 눈을 크게 떴다. 달주부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가서 실사를 할 것도 아니고, 안 믿으면 또 어쩔 테냐? 현장에 발 한 자국 안 들이고, 손에 흙 한 톨 안 묻힌 채 따박따박 수익을 만드는 구조를 짰으면 된 게지. 그래서 처음부터 8 대 2로 세게 지르고 들어간 게다. 깎일 것까지 계산해서 말이다.”


아들은 그제야 아버지의 노회 한 설계에 무릎을 탁 쳤다.


“정말 현명하십니다. 저쪽이 죽어라 재주를 넘는 동안, 저희는 앉아서 열매만 취하는 구조군요.”


“원래 세상은 재주 부리는 놈 따로 있고, 돈 버는 놈 따로 있는 법이다. 저 별주부 녀석, 지금쯤 제 머리가 제일 좋은 줄 알고 밤새도록 장부 칸을 메우고 있을 게다.”


“그럼 앞으로 복잡한 증빙 서류는 생략하고 마지막 장만 보내라고 할까요?”


“내버려 두거라. 얼마나 손에 땀나게 장부를 고치고 있겠냐. 그놈이 공들여 구라(?)를 칠수록, 우리한테 보내는 정산금은 더 안전해지는 법이지.”


달주부가 낄낄대며 이에서 빼낸 사과 껍질을 다시 입안으로 밀어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아들은 그 기괴하고도 탐욕스러운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아버지가 구축한 이 완벽한 '빨대 시스템' 앞에서는 조용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 별주부는 용왕에게 보낼 비밀 서신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다.


별주부는 책상 위에 놓인 '황금 비트 상패'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토끼 회장의 앞발에 들려 번쩍이던 그 영광은, 수궁의 옥좌에 비하면 한낱 도금된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는 용왕만이 해독할 수 있는 수궁 비기로 서신을 써 내려갔다. 이전의 구구절절한 보고와는 결이 다른, 목숨을 건 커밍아웃이었다.


[지밀봉서: 수신 용왕 폐하]


폐하, 송구하오나 지금까지 올린 붉은 액체는 토끼의 간이 아닌, 육지의 '비트'라는 채소로 만든 대용품이었나이다.


하지만 낙담하지 마소서. 소신이 이 비릿한 채소즙으로 육지의 최고 권력자인 '토끼 회장'의 눈과 귀를 완벽히 가렸나이다. 놈은 지금 저를 심복으로 믿고 있으며, 조만간 제가 설계한 '용궁 지사 설립 기념회'에 직접 참석하기 위해 바다를 건널 준비를 마쳤나이다.


즙이 아닌, 토끼의 몸뚱어리 그 자체를 폐하께 바칠 날이 머지않았나이다.


다만, 영악한 달주부가 소신의 이 원대한 계획에 먹물을 튀길까 걱정이옵니다. 그자의 감언이설에 홀리지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옵소서.


※ 추신: 비트즙도 간 건강에는 영약이라고 하니 복용은 계속하시는 게 좋습니다.


용왕에게는 '진짜 토끼'를 약속하고, 토끼 회장에게는 '용궁 시장 독점'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며, 그 사이에서 자신을 옥죄는 달주부라는 빨대를 제거하는 묘수를 펼쳤다.


‘역시, 두 다리 뻗고 자려면 정직한 게 제일이지.’


서신을 마친 별주부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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