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되어 개운한 아침
"오늘은 포도주 만들기 놀이야. 같이하자."
엄마의 떨떠름한 표정에도 아랑곳없이 곧장 본론을 꺼낸다.
"고급 포도주가 될 거야? 최고급 포도주가 될 거야?"
"차이가 뭐야?"
"숙성의 시간이지. 최고급 포도주는 삼십 분 걸려."
"그동안 뭐 하면 되는데?"
"겹겹이 쌓인 이불속에서 삼십 분 동안 가만히 있는 거야."
"오올... 좋은데."
지금까지 단연코, 이토록 편안한 놀이는 없었다.
침대에 베개를 베고 눕자 애들은 신이 나서 그 위에 이불이며 베개를 겹겹이 쌓아 올린다. 숨은 쉬어야 한다며 친절히 뚫어주는 숨구멍. 먼지 따위 어떠랴. 어차피 함께 살아가는 것.
적당한 무게감, 알맞은 온도, 노곤노곤한 숨. 자기 좋은 환경이 완성됐다. 저절로 나오는 골골 송.
오 분이 안 되어 큰 놈이 오른쪽에 붙었다. 한쪽 다리를 슬쩍 밀어 넣길래,
"이물질 섞이면 썩어."
"괜찮아. 난 썩은 포도주, 귀부 와인이야."
곧 둘째가 왼쪽으로 슬며시 끼어든다. 자기는 화이트 와인이란다. 그래서 나는 레드 와인을 하기로 했다.
화이트 와인이 먼저 곯아떨어졌다. 곧이어 귀부 와인의 의식도 나풀나풀 멀어졌다. 레드 와인은 언제 기절했는지, 눈을 떠보니 개운한 아침이었다.
완전한 숙성의 시간이었다.
오늘 밤에는 치즈 만들기 놀이하자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