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로브그리예 -민음사
[바닥에는 지난주, 아니 그보다 더 전이었을지도 모를 어느 날,
으깨진 지네의 검붉은 자국이 남아 있다.]
단어만으로도 에너지가 느껴진다.
강도에 따라
분노가 되기도 하고,
애교가 되기도 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나는 머릿속으로 나름의 스토리를 떠올렸다.
남녀가 등장하고,
삼각관계를 이루고,
질투로 끝장을 달리고,
반은 미친 누군가는 파멸하거나,
혹은 반전이 있거나.
헐—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자면 ‘헐’이었다.
물론 남녀가 등장했다.
등장만 했다.
관찰하고 묘사하는데 순서가 없었다.
보이는 걸 그대로 찍어내는 느낌이었다.
질투는 강렬한 감정이 아니던가?
내 편견이었을까.
화자는 시종일관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아내의 일상을 따라갔다.
카메라 렌즈가 그녀를 비추는 것처럼.
화자는 단 한 줌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데, 나만 지긋지긋함을 느꼈다.
놀랍도록 섬세하고, 집요한 관찰이 질투의 표현이라면
작중 화자는 거의 병적이었다.
그의 관찰력과 정확한 표현력에는 경의를 표한다.
그것만은 몹시 부러웠다.
책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짜증이라는 감정만 남았다.
그러고 보면 예술이란 결국, 감정을 남기는 일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