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명화극장

이런 영화를 보고 고작 채찍이냐?

by 하이진

주말 저녁, 아들과 함께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봤다.

2004년 개봉 당시 한 번 본 영화였는데, 다시 보니 그 사이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유튜브에서 우연히 영화를 접했다며 꼭 보고 싶다고 했다.

내게 남아 있는 인상이라곤 고통, 잔혹함, 인간의 악의 같은 불편함뿐이어서

사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다.

초등학생이 보기엔 너무 잔인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아들은 촬영 과정에서 주연 배우가 실제로 다친 이야기,

십자가의 무게가 실제와 거의 같았다는 이야기 등을 쏟아내며

“감독이 고증에 미친 사람”이라며 흥분했다.


나는 그런 뒷이야기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의외로 흥미로웠고,

결국 아들의 열정에 끌려 같이 보기로 했다.

아들의 꼬임에 넘어간 셈이다. 허허.


예상대로 영화는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종교적인 부분을 떠나,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악의가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서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저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자 아들은 뜻밖의 말을 했다.

“빌라도가 억울할 것 같아. 사도신경에 이름이 박제돼서 대대손손 욕먹잖아.”

그 말에 나도 동의했지만 이렇게 답했다.

“아들아, 그래서 권력자가 마냥 좋은 게 아니야.

누리는 만큼 책임도 져야 하는 거거든.”


이쯤이면 교훈적이고 따뜻하게 마무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나 우리 집은 반전이 늘 존재한다.

아들은 수많은 서사 가운데 예수님을 때렸던 채찍에 꽂힌 것이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집에 있는 레고 브릭, 고무 탱크 체인 같은 재료를 모으더니

날붙이가 달린 채찍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니… 왜? 감동적이고 마음 울리는 장면은 수두룩한데, 왜 하필 채찍인가.


여기서 아들의 비밀 아닌 비밀을 밝히자면,

아들은 근본 밀리터리 덕후다.

1·2차 세계대전 무기류는 물론이고,

이젠 고대 무기까지 관심을 확장해 가는 거냐?


채찍의 속도와 타격력에 대해 신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옛말에 이런 말이 생긴 걸까?


“커서 뭐가 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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