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 단풍 들었네

다르게 익어가는 시간에 대하여.

by 하이진

고향집 대문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땅달만 한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그 아래 작은 텃밭에는 부추도 파릇하고 대파도 길쭉하다. 여름이면 상추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 꽃처럼 돋아난다. 그리고 가장 가리에 심긴 몇 개의 땡초 나무에서 열리는 매운 고추는 칼칼한 된장찌개도 되었다가, 땡초부추전이 되기도 했다.

추석에 집에 내려갔더니, 식구들 모두가 탐을 내는 대봉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나무줄기가 휠만큼 잔뜩 열려 있는 게, 욕심을 잔뜩 부려 열매를 맺었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알이 굵은 감을 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언제 먹을 수 있어?”

“가을 되면.”


밝은 주황이 다홍빛으로 물들면 감은 꿀처럼 달아진다. 지금은 키 작은 대봉감나무 한그루 밖에 없지만, 어린 시절 마당에는 키가 큰 감나무가 몇 그루나 있었다. 가을이면 하루 날을 잡아 감을 수확했다. 그러면 할머니와 어머니는 그걸 깎아서 줄에 매달아 곶감을 만드셨다. 동생과 나도 긴 장대로 홍시 하나 따보겠다고 낑낑거렸던 게 생각난다. 나무 꼭대기에 남겨둔 까치밥처럼, 풍성하고 흥겨웠던 그림이 아련하게 남았다.


올 가을에는 남동생 내외가 고향에 내려가 엄마와 감을 땄다고 한다. 그렇게 수확한 감을 엄마는 익으면 못 부친다고 서둘러 택배를 보내셨다. 택배 상자를 열자 빛깔 고운 가을이 우리 집 거실에 들어앉았다. 어른 주먹보다 큰 감이 탐스럽게 담겨 있었다. 하나하나 닦아 베란다에 꺼내 놓았다. 그렇게 우리 집 베란다에도 주황빛 단풍이 잔뜩 들었다.


“언제 다 익어?”


가을바람과 따뜻한 햇살에 천천히 익어 가는 감을 보면서 아이들이 조바심을 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조금 익은 감을 참지 못하고 들고 오는 아이에게 익은 부분만 살짝 잘라 입에 넣어주었다. 달콤함에 떫은맛이 섞여 있었다. 그래도 아이는 맛있다며 활짝 웃었다. 다 같이 내어 놓아도 다르게 익어 가는 감을 보면서 사는 것도 그렇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변화가 안 보이고, 익기는 하는 건가 싶은 날을 보내고 나면 결국 빨갛게 달아지는 시간이 온다는 것을... 너의 시간이 나의 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감이 익어 가는 모습을 보며 조바심을 참아본다. 달콤해질 그 시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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