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코스모스를 읽기 시작했다.
오래된 책이고, 불면증 치료에 유용하다는 평을 듣는 벽돌책.
나로서는 ‘어렵다’는 편견이 먼저 떠오르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사소한 지적 허영심이었다.
주변 지인들이 다 읽었다고 말할 때,
나는 당당하게 “안 읽었다”라고 말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결국 읽어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남아 있었다.
과학에도,
은하에도,
천체에도
큰 관심은 없다.
다만 이 책이 인문학과도 긴밀한 결을 이루고 있고
인류의 기원과 역사에 닿아 있다는 말에
역사와 세계사를 좋아하는 나로서
조금은 이해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나름의 동기부여를 해보았다.
당연히 ‘구입해야 할 도서 목록’에 올라야 할 책이지만
끝까지 읽을 자신은 여전히 없었다.
돈키호테 벽돌판을 사두고 읽다 만 기억,
샌델의 『JUSTICE』를 책장에 꽂아두며
“아— 이건 허영심이구나”
부끄러움을 느꼈던 이후로
‘있어 보이는 책’을 덜 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구매를 보류하고
지역 도서관으로 향했다.
2021년 특별판을 빌려왔다.
책을 손에 쥐자
어쩐지 설렜다.
드디어 나도,
이해되는 것만 이해하고
눈에 들어오는 문장만 읽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펼친 첫 장에서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얼마나 위트 있고 멋진 헌정사인지.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 하나의 기쁨이었다.
이 넓은 우주 속의 한 순간을
너와 스쳐가며
함께 나누었음을 기쁨이라 부르는 것.
그리고 마주한 문장.
고요하게 바라보다.
해석하려 들지 않고,
개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고 바라보는 태도.
우주를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신을 떠올리게 된다.
그동안은 그럴듯한 설명과 이해로
믿음을 끼워 맞추고 있었다면,
이 책의 첫 장에서
신의 태도를 처음으로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신은 우주를,
그 속의 작은 티끌까지도
정관 하는 존재가 아닐까.
그저 바라보는 것.
우리는 그 일을
인간의 언어로
‘사랑’이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의 믿음 이란 것도
신을 정관해야 하는 게 아닐까?
섣부른 결론을 지어 본다.
신은 신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나는 그것을 경외함으로 바라본다.
그뿐이다.
한동안
‘책 속의 한 줄’은
코스모스가 될 것 같다.
이해는 이해대로,
오해는 오해된 채로,
고요히
읽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