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아직은 '코스모스' 하면 가을꽃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코스모스의 바다' 앞에서는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흔들리는 그 꽃이 먼저 그려진다.
겨우 1장만 읽었기 때문일까.
첫 장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 코스모스를 떠올리며 한참을 기웃거리게 됐다.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우리는 인류야말로 우주가 내놓은 가장 눈부신 변환의 결과물이라는 선언을 듣는다.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이고,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으며, 이제는 그 코스모스를 알고자 하고, 나아가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라 말한다.
책장을 넘기며 가장 먼저 마음이 환해졌던 건 고대 근동, 알렉산드리아의 이름을 만났을 때였다. 들어 본 적 있는 지명, 익숙한 인물들, 그리고 꿈처럼 남아 있는 거대한 도서관의 기억. 우리는 지금 빛나는 지성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도서관에서 토론을 나누던 그 시대의 사람들을 떠올리면,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어느 시대에나 빛나는 정신은 존재했고, 그들의 사유가 오히려 우리보다 한층 더 깊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묘한 경외와 동질감이 동시에 찾아온다.
그럼에도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는 지점이 있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이 ‘정관(靜觀)’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개입하지 않고, 함부로 정의하지 않는 태도. 그런데 장이 끝날 즈음, 우리는 “알고 변화시키는 존재”라는 말 앞으로 돌아온다. 인간은 결국 멈추어 바라보지 못하는 존재일까. 이해하는 순간 개입하고 싶어 하고, 변화라는 이름으로 파괴하려 든다.
우리는 화성을 탐사하고, 달의 자원을 이야기하며, 더 먼 세계를 꿈꾼다. 그것이 인류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 말한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나는 모르는 게 많으니까.
그렇지만, 오래전 신대륙을 발견했다며 그곳을 ‘개척’하던 사람들의 탐욕이 먼저 생각난다. 이해를 위해 파괴하고, 변화라는 이름으로 지배하고, 결국 나아가고 흘러왔다 말한다.
칼 세이건도 인간의 확장만을 찬양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생 인간의 오만함을 경계했고, 문명이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우주로 보낸 골든 레코드는 “우리는 다정하다”라는 선언이라기보다, “우리는 다정하고 싶다”라고 믿고 싶었던, 인간의 바람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무한한 공간 속의 한 점이고, 흐르는 시간 속의 한순간일 뿐인데도, 이렇게 치열하게, 때로는 잔혹하게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가.
역사를 읽을수록 인간의 위대한 잔인함에서 생각이 멈춘다. 고인 물은 썩고,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말을 우리는 진리처럼 배워왔고,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변화의 물결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 간 생명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서글퍼진다. 내가 그 사라져 간 존재의 한 부분인 것 같아서.
코스모스의 바닷가에 선 지금의 감상은 이렇다.
인간은 정관 하지 못하는 존재인 것 같다.
점이기 때문일까.
스쳐 지나감을 견디지 못해서일까.
하찮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무한히 흔적을 남기려 발악하는 이유는 뭘까?
정관은 어쩌면 낭만이고, 조금은 판타지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여전히 개입하고, 이해하려 하고, 남기려 하는 존재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코스모스를 정관 하기 전에, 인간을 정관 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인간의 바닷가에 서 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