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은 침세례를 부른다.
이주임은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숭고한 손가락 노동을 했다.
땀은 안 흘렸지만, 손가락 관절염은 얻을지도 모르는 하루였다.
대체 무슨 서류가 이렇게 많은지.
어제 김이사 님은 대박(주)사장님께 접대를 하셨나 보다.
“이렇게 쓰시면 접대비 한도 초과됩니다. 복리후생비로 돌릴까요…”
물론 이사님께는 닿지 않는 소리 없는 아우성.
총칼만 없지 전쟁터 같은
접대의 살벌한 세계는 이해할 수 없는
이주임은 말단이었다.
오전에 깊은 몰입으로 서류를 꽤 줄여 놓았다.
덕분에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더 늦으면 구내식당도 문을 닫을 것 같았다.
헐레벌떡 식당으로 달려가는데—
엉? 쟤가 왜 저래??
꼬리까지 흔들며 이주임을 반기는 진돌이.
정상이 아니다.
시크 도도 개였던 진돌이, 어디 갔어?
다른 개인가?
생긴 건 분명 진돌인데…
이주임은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진돌이의 진의를 추궁하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밥을 먹고 나오자,
진돌이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춘기인가?
감정 기복이 심하네.
바라는 게 있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가는데,
가까워질수록 꼬리 흔드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뭐지?
뭘까?
대체 저 녀석을 이렇게 환호하게 만드는 건?
아!!
이주임의 머릿속 형광등이 ‘팟’ 하고 켜졌다.
자장면!!
먹고 싶었던 거구나.
어쩌지… 넌 못 먹는데.
그래도 마음씨 좋은 이주임,
냄새만이라도 나눠주기로 한다.
진돌이 코 앞에 대고
후우 후우, 자장면 냄새를 불어넣어줬다.
희망고문… 아니겠지?
진돌이는 거의 황홀경에 빠진 표정.
심지어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 정도야?
대체 어떤 냄새길래 이렇게 돼?
그런데—
그 침이 이주임의 코와 입에 골고루 묻어버렸다.
이주임과 거리 두기에 진심인 그 진돌이가
예고도 없이 ‘핥기 신공’을 시전 한 것이다.
구절도 읊지도 않고… 실로 위대한 무공이었다.
“악!! 침은 좀…”
이주임은 퍽, 하고 진돌이를 밀쳐냈다.
“널 좋아하긴 하지만, 네 침까지 좋아하진 않아.”
이주임은 가이드라인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약간의 오해만 남긴 채,
이주임은 양치질을 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