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글쓰기가 어려워지나요?
저번 주 목요일 제일 친한 친구를 만나서 을지로 3가에 있는 호프집을 갔다. 퇴근 후 불목을 보내기 위해 온 아저씨들이 많이 있었던 곳이었다. 친구를 만나서 지금까지 준비된 결혼 준비 과정을 브리핑했다. 말을 하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시간이었다. 한 번씩 내가 말하면서 그 순간 느낀 감정을 입 밖으로 쏟아내면 그 말에 또 한 번 감동 할 때가 있다. 그 날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전까지만 해도 내 삶의 목표는 '행복해지기' 였는데,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지도 않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오빠를 만나고 나는 행복해 진 것 같다. 이제 그걸 바탕으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맞다. 요즘 나는 큰 고민 없이 앞만 보고 지내고 있다. 늘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신세 한탄하고 그 감정에 갇혀 우울해하던 내가 많이 옅어졌다. 너무 좋고 감사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힘들지 않으면 생각이 없어지는지 글을 쓰기도 그림을 그리기도 어려워졌다. 힘들고 우울한 감정을 곱씹을 게 없어져서인지 무슨 소재로 글을 쓰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항상 힘들다, 센치하다 등의 감정으로만 글로 써왔나 보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어두운, 알 수 없는 휘갈김이 내 그림이 되곤 했다. 거기에 떠오르는 메세지는 '정상적이고 싶어요.'등의 꽤 어두운 메세지들이었다.
요즘 브런치에서 애독 중인 매거진이 있다. 딸 아이와 늙은 개를 소재로 매주 목요일에 연재되는 매거진이다. 아주 일상적이지만 자세한 감정의 묘사가 신기하고 재밌다. 마치 글을 위해 저 사람의 배경이 움직여주는 느낌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평범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낸 것이지, 특별한 것을 그대로 쓴 느낌은 아니다. 나도 그런 글을 이제부터는 쓰고 싶다. '우울해요, 힘들어요.'의 메세지가 담긴 글은 멈출 때가 되었다. 감정의 기복이 파란만장했던 20대 초반을 끝내고, 조금 더 성숙하고 친근한 20대 중반으로 들어서야지.
23살, 24살에는 스무 살, 스물 두 살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힘들었기 때문이다. 28살이 되면 왠지 26살로 돌아가고 싶을 것 같다. 내게 지금처럼 안정적일 때가 올까 싶었다. 마치 옛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너무 좋은 거 티 내면 마귀가 질투한다."라는 말을 들을 거 같지만, 여긴 나의 개인적인 공간이니 마음껏 표현하련다. 질투하세요. 사실인걸요.
앞으로 힘들더라도 상처가 크게 파일 것 같지 않다. 얇은 종이에 기분 나쁘게 살짝 베이고 '아..야..!' 하며 잠시 들여다보고 다시 일상적인 일을 할 것만 같다. 결혼을 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은 점은 항상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라던데. 그것이 꼭 결혼이 아니었어도 가능한 존재지만, 결혼은 공식적으로 빼박 내 사람이란 틀이 되어주니깐. 늘 옆에 내 사람이 있으니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사람의 장단에 맞춰 다시 나는 살아가야 하니깐. 아주 행복하게. 이 글을 쓰고 보니 잠시나마 '행복해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나?'라는 생각을 했던 게 멍청했다는 생각이 든다.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