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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아무개 Mar 19. 2022

INFP와 ENFP, ENFP 셋의 우정

셋이 함께라면 와인 한 병과 라면만 있어도 밤을 새웠다.

나는 96%의 내향형 인간, 극 I의 INFP다.

그리고 나에게는 소중한 친구 둘이 있다.

이 둘은 ENFP다.

둘은 나와 달리 키가 크고,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했다. 

우리 셋의 공통점이라면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 눈치를 많이 본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한마디로 쩔었다.


그래서 나이가 다른 우리 셋이 친해진 것도 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같은 학과였던 우리는 셋 중 가장 언니인 S를 따라 사무국에 들어갔다. 나와 H는 같은 학번이다. 

S는 파워 E의 성향이라 사무국장을 거쳐 학생회장까지 맡았다.

H와 나는 S의 오른팔과 왼팔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우리 셋은 한 팀처럼 움직였다.


내가 실연을 당하면 H와 S는 방구석에서 나오지 않는 나를 찾아와 학교 앞 왕십리 곱창집으로 데려갔다.

참이슬 후레시와 야채곱창 3인분을 주문했다. 

그러면 나는 무장해제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내 이야기를 줄줄 늘어놨다.

둘은 누구보다 내 편이었다. 그때만큼은 가장 든든한 내 편이 있어서 금방이라도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볶음밥까지 박박 긁어먹고 나와 2차 3차까지 우리는 달렸고 아침 해가 뜨면 할매손국밥 집에 들어가 순대국밥 한 그릇으로 마무리하고 헤어졌다. 


헤어져도 몇 시간 자고 일어나 셋은 또 함께였다. 각자 고향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했고, 가장 언니였던 S는 나의 보호자 같았다. 내가 대학교 때는 MBTI가 유행이 아니어서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INFP ENFP ENFP 인 걸 셋이 알았더라면, 우린 그럴 줄 알았다면서 유난을 떨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것이다. 워낙 나는 내향적이고, H는 사람 좋아하는 무던한 성격에 뭐든 ok 걸이고, S는 E 중에서도 가장 큰 E 일 테니까. 그리고 나머지가 같은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우리의 우정이 내 평생의 방패막이가 되고, 서로의 방패막이가 되어 나를 지켜줄 줄 알았다.   


얼마 전, S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남겨진 H와 나는 부둥켜안고 수십 차례 울었다. 셋으로 똘똘 뭉쳐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방패가 부스러기처럼 조각이 났다. H와 나는 여전히 S가 어학연수를 떠났던 그 1년의 빈자리처럼 지금도 어딘가를 여행 중인 거라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을 생각하며 H와 나는 S가 보고 싶다고 허물없이 이야기하며 S를 마음껏 그리워한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그곳에서는 카톡이 없어서 답장을 받을 수 없지만 우리는 S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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