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임으로의 이미지
고원의 봄은 늘 늦게 찾아온다. 봄의 기운은 이미 들려오지만, 하늘에서는 눈송이가 먼저 내린다. 그렇게 눈발이 흩날리는 날, 나는 마임 공연을 보러 탄광 사택촌으로 갔다.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왔지만, 아직 그 실체는 멀고도 아득하기만 하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더니, 어느새 폭설이 올 듯 무거운 하늘이 펼쳐졌다. 마임이라는 장르 자체가 익숙치 않아 관객이 많지 않을까 걱정되었는데, 거기다 눈까지 내려 열심히 준비한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까 속으로 걱정이 든다.
마임 배우는 바로 김성구 님이다. 국내에서 마임을 개척한 선구자 중 한 분으로, 어느 날 태백을 방문해 마임이라는 불모지에서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는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고 계신다. 태백은 한때 광산도시였고, 연탄 불로 사람들의 삶을 따뜻하게 데우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다시 피워내려는 그의 의지는 참으로 의미가 깊다.
공연이 열린 장소는 ‘탄광사택 꿈꾸는 예술 터’라는 곳이었다. 공간은 아담하고 배우들과 호흡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서, 더 깊은 몰입을 기대하게 했다. 공연 전에는 마임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있었다. 마임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하며, 공연을 즐기기 전 기억하면 좋을 포인트들을 전달해 주었다. ‘판토마임’은 자연과 인간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데서 출발해 시대에 따라 변모해 온 예술이라고 했다. 마임은 ‘말을 포기하고 몸짓으로 우리의 사물, 우리의 고민, 자연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몸짓으로 표현한다는 건 인간의 상상력과 감각에 크게 의존하는 작품이란 뜻이었다. 나는 과연 이 몸짓이 내 감각에 닿을 수 있을지 잠시 걱정스러웠다. 그럼에도 마임은 인간적이고 본질적인 예술 형태이며, 관객들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준다 했다. 그래서 관객은 단순히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와 함께 ‘공동의 환상’을 만드는 창작자가 되어 보라고 이야기한다.
공연 시작 직전 김성구 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대를 향해 고요히 응시하며, 신발 끈을 매는 그의 손놀림에서 조용한 결의가 전해졌다. 무대 조명이 꺼지고 조용히 공연은 시작되었다. 숨죽인 어둠 속에서 배우와 관객이 가까이 있다는 긴장감이 흐른다. 낯선 빛과 잔잔한 음악이 어우러지고, 무대 위 소품들이 관객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소품들이 사라지자, 김성구 님의 손과 몸짓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연은 태백에 사는 할아버지의 일상을 담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물을 건너다 발이 젖고, 양말을 벗어놓고는 주위를 살피는 간단한 동작 하나하나가 삶의 이야기를 전했다. 할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는 무대 위에서 꼼지락거리며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파편들을 풀어내듯 몸짓으로 전했다. 마임이라는 표현 형식을 통해 배우가 살아온 인생과 그가 꿈꾸는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날 공연은 관객과 배우가 경계를 허물고 함께 만드는 감각의 축제가 되었다. 말이 아닌 몸짓만으로 전해지는 인간의 본질과 일상을 마주하며, 나는 순수한 예술의 힘을 새삼 느꼈다. 비록 늦은 봄의 날씨처럼 쓸쓸하고 차가웠던 그날 저녁, 공연장은 마음속에 따뜻한 봄기운을 심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