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쓸 때마다 내가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보다는
'지금 나는 부엌에서 튀김을 올리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은유.《쓰기의 말들》. 필사. 81.P183.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정량의 글을 쓴다고 했다. 글 쓰는 체력을 위해 마라톤까지 한다고. 엄격한 자기 규율이 엄청난 작품 생산의 창작 비밀인 셈이다.
휴대폰 진동벨이 울렸다. PT 선생 전화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나는 도서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인구 씨, 오늘 안 오세요?"
"아, 죄송해요. 내일인 줄 알았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PT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되는 데, 정해진 시간 없이 유동적으로 운영한다. 매주 토요일 코치에게 다음 주 편한 시간대를 알려 주면 코치는 '월요일 4시, 금요일 5시'와 같은 문자 메시지가 도착하곤 했다. 그런데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금요일 오후 5시'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오늘(목요일) 오후 5시인데.
전화받고 바로 도서관을 빠져나와야 했는데, 하필이면 인터넷으로 물건 구입하는 중이었다. 주소지를 입력하고 결제 버튼을 누르고 버스정류장으로 달렸다. 그러나 헬스장 쪽으로 가는 버스가 이미 저만치 가고 있었다.
"에이 씨~~" 물건 구매는 수업을 마친 후에 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버스정류소 전광판에 헬스장으로 가는 버스 도착시각은 13분 후. 다른 버스는 17분 후였다.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복잡해졌다. 버스 도착시각까지 기다리기엔 무리다. 삼거리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카카오 택시를 불러야 하나 망설였다. 1킬로 미터 남짓 거리이기에 부르기가 미안했다. 삼거리에서 택시가 오는지 사방을 두리번 걸렸지만, 초초한 마음과는 달리 택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태양은 폭염경보를 증명하듯 팔뚝이 따끔거렸다. 다행히 저 멀리서 택시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짓으로 불렀다.
택시에 타자마자 다급하게 외쳤다. "아저씨 직진으로 쭉 가시면 됩니다."
도서관에서 헬스장까지 택시로 2분도 채 안 걸리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헬스장 건물로 달렸다.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제일 위층에 있다. 내려오는 시간이 왜 이리 느린지.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7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안 층수가 바뀌는 전광판을 계속 주시했다. 마침내 헬스장 도착. PT 선생이 반갑게 웃었지만 미안했다. 서둘러 훈련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미 30분이나 지각했다.
"다음 수업이 있으니 되는 시간까지만 해 주세요!" 겸연쩍은 얼굴로 코치에게 말했다. 코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상체 운동. 벤치에 누워 바벨을 힘차게 올렸다. 평소보다 운동 사이사이 쉬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그럴수록 호흡이 가파지고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왠지 평소보다 정신이 더 집중되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1시간 운동을 30분으로 단축했지만, 80퍼센트 정도 운동을 소화한 것 같았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선생님 죄송해요. 다음에는 시간을 꼭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휴대폰 진동벨이 울리고, PT 코치의 전화에 허겁지겁 도서관을 뛰쳐나온 순간, 일정관리를 못하는 내가 미웠다. 버스를 놓치고, 폭염 속에서 택시를 기다리며, 엘리베이터의 느린 속도에 안달하며, 나는 약속 시간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꼈다.
시간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약속을 지키는 것을 넘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다. 회사에 다닐 때는 분 단위로 시간을 관리했던 내가, 퇴직 후 느슨해진 일상 속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되었다. 하루 일정만 제대로 체크했더라면. 후회가 밀려왔다.
글쓰기는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활동이다. 자기 관리와 철학이 글에 녹여 나온다. 자기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글쓰기 수업을 듣는 학인들에 게 "나의 경험을 글로 쓰면 남을 도울 수 있다"라고 강의 때마다 힘주어 말했다. 내게 그럴 자격 있나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PT 코치가 나를 기다리듯, 내가 택시를 애타게 기다리듯, 나 역시 더 나은 글과 삶을 위해 애쓰고 애쓰며 좋은 글을 기다려야 한다. 작가는 자신의 삶으로 다른 이에게 모범이 되고, 누군가의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창작의 비밀은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글을 쓰는 일, 마라톤으로 엄격하게 자기 관리를 한다는 데 있다. 엄격한 자기 관리의 기반은 시간이다. 약속을 지키는 일, 시간을 잘 관리하려고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더 나은 삶을 만드는 일이고 작가의 기본 태도이다. 엄격한 자기 관리가 좋은 글을 만드는 비밀이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미래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