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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우는 진짜 이유

이덕무 독서 팔경

by 정글


정말로 진지한 소설에서는

진정한 갈등이 여러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작가 사이에서 벌어진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은유, 《쓰기의 말들》. 필사 84일.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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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우는 이유는 자신처럼 열정적으로 책을 읽으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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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도블록을 걷는 데 발 앞에 뭐가 툭 떨어졌다. 매미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있는 것 같았다. 매미를 집어 들고 손위에 얹었다. 요리조리 돌려도 기척이 없다. 맨홀 사이 하수구에 버리려다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도로가 화단에 흙을 파서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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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매미가 생각났다. 비가 내리고 있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데 좀 더 깊게 묻어줄걸!


지난주 <은유 작가와의 만남> 특강을 들으러 양산도서관에 갔다. 강의 시작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도서관 앞 '양산 워터파크' 나무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시키고 있는 데 매미가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울어댔다. 한 마리가 울자, 따라 울고, 또 따라 울고, 또...... 소리가 합쳐져 귀가 먹먹했다. 매미는 날씨가 무더울수록 더 힘차게 운다고 한다. 또 매미는 수컷만 운다. 매미가 귀청 떨어져라 우는 이유는 암컷을 위한 사랑의 세레나데, 즉 종족 번식을 위해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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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가 생각났다. 나는 시골에 살았고 여름에 매미가 많았다. 매미를 잡으러 나무 위로 살금 살금 올라갔다. 매미가 소리 내어 격정적으로 울 때는 뒤쪽 몸통 아랫부분을 치켜들고 운다. 매미가 우는 동안 내가 다가가도 잘 날아가지 않았다. 한 곡(?)을 끝내는데 목숨을 거는 듯. 우는 그 순간을 포착하여 잡으면 수월하게 잡혔다. 잡은 매미를 한참 데리고 놀다가 잘 때는 종이 상자 안에 풀잎을 따서 함께 넣어두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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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필사한 내용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 많은 언어, 표현, 감정이 어떻게 화수분처럼 계속 나올까? 비록 동어반복이고 유치해도 자기감정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 가면서 말을 기르고 어르고 달래며 정신의 확장이 일어난다. 자기 경험과 감정을 진술할 수 있는 그는 자원이 많은 사람이다. 이것이 왜 가난이란 말인가. 좋은 책은 혼란을 주고 혼란은 쓰기를 자극한다."



역시 은유 작가 다운 문장 표현이다. 어쩜 이런 표현을,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녀는 힘들고, 괴롭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책을 읽었다고 했다. 도서관이 해우소였다. 책을 읽으면 나만 불행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위안을 얻었다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했다. 좋은 책을 많이 읽었기에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을 특강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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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을 쓰고 싶어도 좀처럼 늘지 않는다. 좋은 글을 쓴다고 하면서 얼마나 책을 읽고 있는지 생각해 봤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일 후순위에 책 읽기를 둔다. 어떤 때는 독서모임 가는 하루 전날 책을 읽기도 했다. 내 속에 든 게 많아야 좋은 글이 나오는 데......,


"그 많은 언어, 표현, 감정이 어떻게 화수분처럼 계속 나올까?" 결국 독서다. 책을 많이 읽어 정신적 확장이 일어나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쓰면 쓸수록 내 글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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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 때 실학자 이덕무는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 책만 읽는 바보)'라고 했다. 그는 책 읽기 좋은 독서 팔경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1. 집을 떠나 있을 때
2. 술 마시고 약간 취기가 남았을 때
3. 상을 입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4. 옥에 갇혀 있을 때
5. 앓아누워 있을 때
6. 귀뚜라미 우는 가을밤
7. 고요한 절간
8. 마을을 떠난 자연 속


결국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장소가 어디든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글은 내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표현되는 결과물이다. 결국 본 것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다. 책을 많이 보고 사물을 많이 보고 본 것을 변주해서 글로 표현하면 좋은 글이 된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 하면서 책 읽기를 게을리하는 내 모습을 본다. 어리석은 사람 같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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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의 죽음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서하고 글을 쓴다면서 얼마나 책을 가까이했는지. 여름 한철 온몸을 다해 목이 터져라 울어대던 매미 발톱만큼이나 책을 읽었는지 생각하니 부끄럽다. 마지못해 책을 읽고 숙제하듯 글을 쓰면서 내 글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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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났고, 어제가 말복이다. 24절기가 지나고 또 지나고 언젠가 매미처럼 삶을 마감할 날이 온다. 남은 삶 온몸을 불살라 읽고, 쓰는 풍성한 삶을 살아보기로 다짐해 본다. 또 내일 실패하고 실패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매미를 생각하기로. 매미의 명복을 빌며!


서늘한 새벽바람이 휙 방안에 들어와 책장을 넘긴다. 가을이 오나 보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희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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