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를 위해 움직인다

by 정글


합리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동'해야만 하는 것이다. 무관심과 냉소는

지성의 표시가 아니라 이해력 결핍의

명백한 징후이다. -한나 아렌트

은유.《쓰기의 말들》. 필사. 95.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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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악~ 여보!"

거실에서 아내 비명소리가 들렸다.


방에서 급히 밖으로 나갔다. 아내가 양손을 흔들고 있었다. 벌이다. 잠시 윙윙거리다가 보이지 않았다. 수건을 들고 천정 위로 흔들고 장롱 위로 흔드는 등 벌을 찾았지만 기척이 없었다.


아내를 안정시키고 방으로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아내 비명소리. 이번에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거실 큰방 베란다 화장실 침실 아들 방 곳곳을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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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주방에서 갔다가 깜짝 놀라 하마터면 컵을 깨뜨릴 뻔 했다. 컵을 들자 그 속에 벌이 있었다. 얼른 손을 흔들었다. 바닥에 떨어져 기어 다닌다. 죽이려다가 잘 못 들어온 벌인데 죽일 필요까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하룻밤을 지낸 사이인데......종이를 바닥에 깔아 벌이 위로 기어 올라오게 했다. 벌이 고분고분 종이 위로 올라왔다. 밤새 지쳤는지 힘이 없었다. 조심 조심 종이를 들고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날려 보냈다. 힘차게 숲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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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글쓰기 강의를 듣는 데 주방에서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났다. 수업에 집중되지 않았다. 문을 닫았다. 수업을 마치고 방에서 밖으로 나왔다. 아내가 막 끊는 된장국을 식탁 위로 올리고 있었다. 대접에는 콩나물밥이 담겨 있었다. 밥위에 된장국, 참기름,고추장을 넣고 비벼 한입. 꿀맛이다. 아내가 만든 된장국은 한강 이남에서 최고다!


오후 1시 30분. 아내 PT장 가는 길. 따라나섰다. 나는 PT장 앞에 있는 카페로 갈 요량으로.


태양이 살갗이 따갑다. 아내가 쓰고 있는 양산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작은 양산이지만 햇볕을 가릴 수 있었다. 보도블록 위로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200미터 가는 길이 2킬로 미터 가는 것 같다. 땀이 가슴팍 골을 따라 배꼽으로 흘렀다. 카페 도착! 천국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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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길을 잃고 거실로 날아와 아내가 겁을 먹고 비명을 질렀지만, 벌은 꽃가루를 옮기며 열매가 맺히도록 돕는다. 우리가 먹는 과일과 된장국에 만드는 자료인 콩도 벌들의 수고 덕분이다.


양산은 단순히 햇빛을 가리는 도구 같지만, 나를 더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이자 작은 그늘이다.


아내가 끌인 된장국은 속을 편안하게 하고, 몸을 지탱하는 에너지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힘이 내 몸을 건강하게 지켜준다.


세 가지 모두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돕고 있다. 햇빛을 가려주는 양산, 열매를 맺게 하는 벌, 몸을 지켜주는 된장국. 도움은 언제나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고 내 삶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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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뿐이랴! 출근길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경비 아저씨, 버스 안 자리를 양보하는 따뜻한 마음, 책상 위 모락모락 커피 한 잔, 퇴근길 마주한 강아지 눈빛, 심지어 손안에 휴대폰까지 모두 나를 혼자 두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삶을 지탱하는 힘은 드러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움직인다.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세상이 조금은 덜 외롭고 따듯하게 느껴진다. 나도 누군가에겐 그런 따뜻한 사람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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