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 폭죽 상자가 떨어지던 날

by 정글

혹시 지금, 죽을 것 같이 힘들고 괴롭지 않나요?

저도 그랬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런 일이 내게 축복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완벽했던 준비

2002년 11월 5일. 경남 산청에 있는 회사 수련원 개소식 날이었다.

무지갯빛 천이 건물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고, '산청 지리산수련원' 간판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간판 위쪽, 축하 폭죽 상자(1m 30cm × 50cm 철제통)에서 하얀 노끈 10개가 바람에 살랑거렸다. 하얀 노끈을 당기면 철제 통 안의 폭죽이 터지고, 오색비닐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개소 축하 현수막이 위에서 아래로 펼쳐지도록 설계했다.


개소식 날 아침, 본청 최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청장님 모시고 사천공항으로 본부장님 픽업 가는 길이야. 준비 잘하고 있지?" "네, 완벽합니다."

그동안 점검표에 따라 열 번도 넘게 확인했다. 새로 한다는 마음으로 본부장 순시 동선을 따라 또 한 번 꼼꼼히 살폈다.


'정 과장, 준비한다고 고생했어!' 우정사업본부장이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며 넥타이를 고쳐 맸다. 짙은 감색 양복, 빨간 넥타이, 검은테 안경을 낀 작지만 야무진 40대 중년 남자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2년간의 노력

수련원 개소 보조 감독으로 근무한 지 2년. 회사에서 한 시간 거리 공사현장에 200번도 넘게 다녔다. 당시 이 지역에는 인터넷 회선조차 없었다. 회선을 끌어오기 위해 본청과 산청 유선방송 인맥을 총동원해 전봇대 8개를 설치했다. 산청중산리 지역에 처음으로 인터넷이 들어오게 한 것이다. 객실마다 당시 제일 성능 좋은 삼성 TV를 설치했다. 수련원 인근에 유흥시설이 없어 방문 직원들을 위해 영화, 드라마 비디오 수백 개를 비치했다. 로비 안쪽에는 PC 3대를 설치한 인터넷 코너까지 만들어 관광객들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개소식 사흘 전, 본청 B과장이 현장을 둘러본 후 말했다. "전국에서 최고로 잘 만든 것 같은데?"

감사담당관도 방문해서는 귀띔했다. "행사 끝나면 이번 인사 때 감사실로 발령받을 거야. 혼자만 알고 있어."

이번 개소식이 내 성공의 발판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존감은 수련원 뒤로 보이는 천왕봉보다 높았다. 이미 이삿짐 일부를 묶어둔 상태였다.


그날, 오전 10시

전국 지방청장과 직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수련원 입구에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전국 수련원 중 최고인 것 같네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저곳 인사를 받았다. 마치 건물주라도 된 것처럼.


행사 시간 10분 전, 번쩍이는 검은 그랜저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본청 사업국장이 뛰어가 차문을 열어주자 본부장과 청장이 내렸다. 늘어선 관서장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중앙 의자에 앉았다. 경쾌한 음악이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지금부터 산청 지리산수련원 개소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방송이 울려 퍼졌다.

"각 지방청장님과 관계자들은 앞으로 나와 하얀 줄을 잡고, 하나, 둘, 셋 구령과 동시에 줄을 힘차게 당겨주시기 바랍니다."


악몽 같은 순간

참석한 100여 명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간판을 올려다봤다.

"하나, 둘, 셋!"

줄을 일제히 당겼다. 웬일인지 폭죽이 터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힘차게 당겨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안내방송이 다시 울렸다. 구령에 따라 더 세게 당겼다.

폭죽이 터지지 않고 축하 폭죽 상자가 '꽝!' 하는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널브러진 현수막 위로 오색비닐 조각들이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바닥에 파편들이 흩어졌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청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나와 최 과장을 동시에 쏘아봤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그동안의 모든 수고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행사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도망자가 된 하루

오찬장소. 본부장과 청장을 피해 다녔다. 눈에 띄지 않으려 도망쳤다. 하루가 그만큼 길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이 일은 순식간에 전국 우정청으로 퍼졌다. 평소 친하던 동료들의 안부 전화마저 "축하 상자가 안 터졌다며?"로 시작됐다. 잘난 체하더니 꼴좋다는 조롱으로만 들렸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이 따른다. 개소식 행사는 본청 주관이었고, 축하 곽 주문도 행사 주관 부서인 본청에서 했다. 나는 공사 완료 여부만 확인하고 보고한 게 다였다. 폭죽이 터질지 안 터질지 미리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은 내게로 돌아왔다.

얼마 후 감사담당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일로 발령이 어려워졌어. 미안해."


그해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당해 직급 최단기간 승진에, 하는 일마다 잘되던 시절이었다.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장밋빛 미래만 그려왔다.

'나에게 이런 일이?'

눈물이 핑 돌았다. 발령 날 것 대비해 묶어둔 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찬바람 부는 자취방에서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길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억울했다. 회사가 싫어졌다. 세상 탓만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슬픔과 괴로움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폭죽 상자가 '꽝!' 하고 떨어지던 순간, 내 교만도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만약 그날 행사가 완벽하게 성공했다면, 나는 아마 끝없는 자만심에 빠져 더 큰 시련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찬바람 부는 자취방에서 혼자 마셨던 소주는 쓰디썼지만, 그 쓴맛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이 있다. 세상은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 완벽한 준비도 때로는 무너진다는 것,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은 보통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를 성장시키는 건 실패의 순간들이다. 무너져 내린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며 배우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의 진짜 선물이 아닐까?


지금도 가끔 그 겨울을 떠올린다. 그때의 나에게 가서 어깨를 다독여 주고 싶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이 시간도 곧 지나갈 거야. 그리고 언젠가 이 시간이 너를 더 단단하고 따뜻하게 만들었음을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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