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시작한 손녀에게 배우는 글쓰기

by 정글

아들네 집은 서산에 있다. 부산에서 차로 다섯 시간을 달려야 다섯 달 된 손녀를 만날 수 있다.
8월 마지막 주 토요일, 손주 보러 서산으로 향했다. 햇볕은 따갑다. 금강휴게소 주차장에서 건물 안까지 뛰어 들어갔다. 휴게실 에어컨 바람마저 뜨거웠다.

아이스라테와 빵을 샀다. 뛰어서 차 안으로 왔다. 에어컨 바람을 최대로 높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쉬다를 반복. 드디어 서산아들 집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13층까지 가는 얼레베이트가 느려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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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는 나를 보자 돌고래처럼 방긋 웃었다. 두 손으로 번쩍 들었다. 얼굴 위로 올려 눈을 맞췄다. 손녀 까만 눈동자 속에 내가 보인다. 나는 손녀 눈 속에서 사르르 녹는다.


그날은 마침 이유식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며느리는 손녀를 보조의자에 앉혔다. 숟가락으로 이유식을 입에 떠 넣었다.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금세 입가에는 이유식으로 범벅이 되었다. 며느리가 숟가락으로 입 주위 음식을 다시 모아 넣어주기를 반복했다. 손녀는 두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숟가락을 잡으려 했다. 그러다 며느리 손을 덥석 붙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이레야, 이거 놔야 이유식을 주지.”


며느리가 손을 흔들어도 꽉 붙잡은 채 버티는 손녀 모습이 귀엽다.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았다. 며느리가 쇼츠영상을 만들어 보내왔다. 나는 휴대폰 속 영상을 수시로 열어보며, 실성한 사람처럼 히죽히죽 웃는다.


https://youtube.com/shorts/nBCfzP3u7as?si=W7WGtOthWt1adFTj


손녀는 우리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다. 오직 먹는 데만 집중했다. 입 주위가 엉망이 되어도, 두 팔을 벌려 더 달라고 허공에 손을 저었다. 이유식을 얻으려 엄마 손을 잡고 버티는 모습, 그 작은 손짓과 몸짓 하나하나가 우리를 감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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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초보 작가는 처음부터 헤밍웨이나 정철,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사랑받는 글을 쓸 수 없다. 초보 작가가 독자에게 가장 사랑받는 방법은 독자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다. 독자에게 사랑받으려 억지를 부리면 사랑받기 힘들다. 철저히 무심해야 한다.


손녀가 우리에게 잘 보이려고 의식하며 이유식을 먹었다면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손녀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손녀다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사랑받는 글을 쓰려면 손녀가 손녀다운 것처럼, 그냥 나로 살고 나다운 글을 써야 한다. 나답다는 말은 곧 아름답다는 말이다. 나다운 글을 독자는 좋아한다. 헤밍웨이는 헤밍웨이 글을, 정철은 정철 글을, 무라카미 하루키는 무라카미 하루키 글을 쓴다. 세 작가글이 비슷하다면 독자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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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사랑받는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작가로서 가치관을 정해야 한다. 아래 방법대로 하면 나다운 글을 쓸 수 있다.


첫째, 무엇을 쓰는가

내가 살아온 경험, 느낀 감정, 배운 교훈을 중심으로 쓴다.

평범한 일상도 나만의 해석이 담기면 특별해진다.

독자는 내가 겪은 솔직한 이야기에서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


둘째, 어떤 관점으로 쓰는가

세상에 대한 나만의 해석을 담는다.

같은 사건도 내 시선으로 다시 읽고,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다.

그렇게 해야 글이 살아나고, 읽는 사람이 ‘너다운 글’이라고 느낀다.


셋째, 누구를 위해 쓰는가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는다.

내 글을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단 한 사람을 떠올리고 쓴다.

한 사람에게 닿는 글이 결국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나다운 글을 쓸 수 없다. 손녀의 새까만 눈동자 안에 비친 나처럼, 내 글 속에는 오직 나만의 세상이 담긴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감정, 나만의 시선이 있다. 독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의 글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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