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씹을수록 통쾌하지 않다

세상은 왜 부하편만 드는가!

by 정글

“상사는 씹을수록 쓰지만, 추억은 곱씹을수록 달다. 나는 노을빛 같은 상사로 기억되고 싶다.”


내 별명은 ‘몽구스’였다.

동물의 왕국에 보면 ‘몽구스’란 동물이 있다. 고양이만 한 동물인데, 땅 구멍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 앞발을 들고 일자로 서서 천적의 동태를 살핀다. 천적이 나타나면 즉시 땅 구멍으로 몸을 숨긴다. 직속상관, 김 과장이 지어준 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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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과장은 술을 좋아했다. 오죽하면 주말이나 휴일에도 직원들을 불러 술자리를 벌였을까. 직장인들은 대부분 퇴근 시간이 기다려지지만, 나는 불안하기만 했다. ‘또 술 마시자고 하면 어쩌지?’ 책상에 바짝 엎드려 과장 눈을 피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퇴근 무렵, 사무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성질 급한 몽구스 같은 나는, 과장 동태를 살피기 위해 칸막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뿔싸! 과장과 눈이 마주쳤다. 오라고 손짓한다.

‘아, ㅅ발 또 걸렸다.’

도축장 끌려가는 소처럼 과장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한잔하러 가자! 가방 들어!” 과장은 자기 가방을 꼭 직원에게 들게 했다. 가방을 드는 순간 술자리 간택(?) 받은 셈이었다. 함께 갈 동료를 물색한다. 모두 책상에 고개를 숙이고 나의 눈을 피했다.


김 과장은 곱창을 좋아했는데, 술과 곁들여 먹으면 최소 20만 원 이상 나왔다. 2차, 3차까지 이어질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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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신 다음 날은 지옥이다. 머리는 깨질 것 같고, 속은 쓰리다. 몸은 천근만근이다. 더 큰 고통은 따로 있다. ‘띵동’ 메일 제목이 모니터에 스친다. ‘고통 분담 : 000만 원/n, 아래 계좌번호로 입금 바랍니다.’ 메일 내용을 확인한다. ‘에이 씨~ 돈이 뭐 이리 많이 나왔노?’ 아내 성난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수석계장에게 건의했다. “퇴근 때마다 직원들이 힘들어하니, 당직처럼 요일별로 순번을 정하면 좋겠습니다.” 직원들 불만을 핑계 댔지만 사실은 내 불만이었다. 잠시 순번제가 시행됐지만, 출장이나 휴가가 끼면 흐지부지됐다. 상황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과장과의 술자리는 늘 씁쓸했다. 몇 시간 동안 용비어천가만 부르다 끝났다. 과장을 택시에 태워 택시비를 던져주고 인사하고 문을 닫는다. 이제 해방이다. “야, 우리끼리 한잔하러 가자!” 과장과 회사를 안주 삼아 마시는 술은 잘도 넘어갔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새벽이 밝아올 때도 있었다.


다음 날 출근하면 과장은 멀쩡하고 우리만 망가져 있었다. 일은 일대로 해야 했다. 속은 쓰릴 대로 쓰렸다. 지난밤 함께 마셨던 동료와 심사 분석을 한다.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을 서로 복기해 본다. ‘과장과 헤어질 때 집에 갔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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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문화의 변화

요즘 회식 문화는 많이 달라졌다. 회식이 있으면 사전에 알린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여 당일 회식 통보를 하면 따진다. “왜 미리 말씀을 안 하셨어요?”, “전 선약이 있어 참석을 못 합니다.” 약속 있는 직원은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한다. 미안한 기색도 전혀 없다. 처음에는 적응 되지 않았지만, 차츰 적응되어간다. 그런 직원들을 보면 당당하고 소신 있게 보일 때도 있다.


상부 기관 손님이 온다든지, 중요한 자리일 경우엔 서운할 때도 있다. ‘우리 때는….’이란 말이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회식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대부분 간단하게 저녁을 겸한 술자리로 끝난다. 2차는 술집보다 카페로 가는 경우가 많다.


노을빛 같은 회식

관내 출장 중이었다. 돌아오는 길 회사에 도착하면 퇴근 시간이다. 차창으로 보이는 바다 노을이 너무 멋있다. 문득, 어제 승진한 직원을 축하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퇴근 시간 다 되어 가는데 어제 승진한 직원과 저녁 먹자”는 제안을 했다. 동행한 직원들이 더 좋아했다. 바다 노을이 아름다운 전망 좋은 식당에 자리를 잡고 그 직원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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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축하주가 몇 순배 돌았다. 바다 노을이 짙은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승진 직원의 얼굴이 노을보다 붉게 빛났다. 술잔도 노을, 바다도 노을, 우리 얼굴도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행복의 빛깔이 혹 ‘노을빛’이 아닐까?

세월이 흘러, 그때 승진한 직원과 저녁식사를 했다. “국장님, 그때 바닷가 노을 속의 축하 자리는 제 평생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라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책은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되새기는 책이다. 쓸쓸히 죽어가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남기는 메시지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한다.


‘나는 절대 저런 상사가 되지 않아야지.’ 술자리에서 수없이 다짐했다. 내가 후배들에게 남길 기억은 욕이 아니라 노을빛 같은 추억이길!


노을은 하루의 끝을 알리지만 동시에 새로운 희망을 약속한다. '노을빛 같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사람들 마음속에서 영원한 따스함으로 기억되길 소망한다.


내일 6화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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