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나는 괴물이었다. 괴물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사람이 되었다.
천안아산교육원 가는 날이다.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시계를 봤다. 큰일 났다. 열차 출발시각까지 가려면 빠듯했다. 어젯밤 만취해서 집에 왔다. 휴대폰 알람이 울렸는데 내가 듣지 못했다. 가방을 대충 챙겨 아파트를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다.
“아저씨, 최대한 빨리 부산역으로 가주세요!”
기사 아저씨는 70대 중반으로 보였다. 바쁜데 택시 기사는 신호를 칼같이 지켰다. ‘사람도 없는데 신호 좀 어기면 안 되나? 에이, 뭐 저런 늙은 사람이 운전해!’ 속으로 욕이 나왔다.
출발 5분 전! 택시 기사 앞에 돈을 던지고 역으로 달렸다. 열차 플랫폼 도착! 가쁜 숨을 내쉬며 열차 꽁무니를 멍하니 바라봤다. 5초만 빨랐더라도 탈 수 있었다. 택시 기사가 원망스러웠다. 다음 열차를 탈 수밖에. 수업 시간에 10분 지각했다. 그날 종일 택시 기사와 열차 꽁무니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3차까지 술을 마신 후 택시를 탔다. “아저씨!, 아저씨!”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떴다. “약주 많이 하셨네요. 개금 주공아파트 도착했습니다.” 택시에서 내렸다. 5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 방향감각을 잃었다. 차 소리 나는 도로 쪽으로 걸었다.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내 집을 찾아 집 앞에 도착했다. 벨을 눌렀다. 아내가 밉다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꽝꽝 문을 발로 찼다. “문 열어! 문 열어!” 옆집 아파트 문이 열린다. 흘긋 나를 쳐다보더니 구시렁거리며 문을 닫았다. 아내가 현관문을 열었다.
“당신 때문에 못 살겠다! 맨날 술이고!, 집에 오기 싫으면 나가 살던지! 내가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다.” 바가지 긁어대는 아내의 훈계가 시작됐다. 술이 확 깬다.
“됐다! 그만해라. 내가 먹고 싶어 마시나, 회식인데 어쩌라꼬!”.
“당신이 사업하는 사람이가? 맨날 술 처먹게.”
오늘은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술에 취해 주변이 희미했다 밝아졌다 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내렸다. 더듬더듬 비번을 눌렀다. '삐빅~ 삐빅' 소리만 계속 났다. “누구세요!” 방 안에서 남자 목소리가 났다. 순간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같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편네가 외간 남자를 집에 들였나!
“야! 너는 누군데, 빨리 문 열여 새끼야~”
문을 발로 찼다. 갑자기 문이 확 열렸다. 건장한 남자가 나를 째려보며 칠 기색이다. 남자 뒤로 아내인 듯한 사람과 아들도 보였다.
“당신 누꼬? 술 처먹었으면 곱게 집에 가지 왜 남의 집에 와서 행패야!, 에이 재수 없어!”
“죄송합~”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쾅’ 닫았다. 우리 집은 203동 1003호인데 옆 동 201동 1003호에 잘못 찾아갔던 게다. '그냥 집에 잘 못 왔다고 말하면 되지 욕을 하고 지랄이야!' 투덜거리며 옆 동인 우리 집으로 왔다.
탁구 동호회 월례회가 있는 날이었다. 회사 마치자마자 탁구장에 갔다. 회장, 총무님이 술, 과일, 음식 준비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1등 우승 상품이 탁자 위에 빛나고 있었다. 탁구 동호회 조별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도중 내가 하는 경기가 끝나면 몰래 술을 마셨다. 실력이 발휘될 리 없다. 예선 탈락했다. 땀 흘리고 마시는 시원한 폭탄주는 꿀맛이었다. 목구멍을 타고 내장으로 흐르는 짜릿함. 그래 이 맛이야!
탁구장에서 1차 술을 마셨다. 2차는 삼겹살집. 3차는 노래방, 해외여행 갔다 온 회원이 양주 가져왔다. 양주가 욕심나 과음했다.
"아저씨 아저씨 여기서 자면 어떡해요"
내 몸을 흔드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다. 아파트 단지 벤치에 누워 자고 있는 나를 순찰하다 발견한 것이다. 집으로 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아저씨 추운데 이런 데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내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기 말라고' 한마디 하려다 참았다. 회사 출근하면 상사가, 집에 오면 아내가, 이제 경비 아저씨까지 잔소리다.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지난 33년간 마신 술을 추산하여 술병을 길게 늘어놓아 보니 무려 16킬로미터나 되었다. 몸 버리고 돈 날리고 가정은 엉망이 되었다. 아내는 나를 괴물 취급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는 술 대신 글을 마시고 산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제일 잘한 일은 뭐지?”
“오늘은 내 인생에 어떤 의미였는가?”
“오늘 하루, 감사한 일은?”
환갑을 앞둔 지금에야 철이 조금 들어가는 것 같다. 나는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다.
열차 꽁무니만 바라보며 택시 기사를 원망한 아침도,
술에 취해 엉뚱한 집 문을 두드리던 밤도,
경비 아저씨의 나를 걱정하는 말도,
아내의 한숨 섞인 잔소리도,
모두 원망의 대상으로 삼았다.
밖을 보면 원망할 것만 보이지만, 나를 돌아보면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보인다. 세상은 그렇게 나로부터 조금씩 변화하고 나아지는 것이다.
내일 14화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