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아~주우구~......” 세 살배기 손자가 장난감을 들고 와서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답답해진 손자는 엄마에게 달려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고, 며느리는 능숙하게 통역(?) 해주었습니다.
"아버님, 이도(손자) 말하는 거 알아들으시려면 ‘수능 듣기 평가시험’ 보시듯 집중하셔야 해요."
며느리의 재치 있는 말에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며칠 전 목사님을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원고 초고 검토를 부탁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부족합니다. 실력 있는 분께 맡기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지만, 전작 출간 때 도움받았던 국문학과 지인분이 이번엔 사정이 있어 힘들다고 해서 나한테 부탁한다고.
지난주, 제목과 목차 기획을 위해 다시 만났습니다. 그런데 웬걸, 목사님 말씀은 듣지도 않은 채 내가 준비한 내용만 한참을 떠들었습니다. 일방적으로 내 생각만 늘어놓고 있는 나를 발견했지요. 한참을 말하고 나서야 뒤늦게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다행히 목사님이 끝까지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습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목사님 생각도 들을 수 있었고, 내가 준비한 방향에 대체로 만족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오늘 오전, K 선배가 만나자고 해서 학원으로 찾아갔습니다. 학원 운영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전자책으로 낼까요, 종이책으로 갈까요?"
이 질문을 듣자마자 나는 또다시 '강의 모드'로 전환했지요. 전자책과 종이책의 장단점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평소 강의하듯 일방적인 정보를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떠들고 나서야 K 작가의 진짜 고민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학원 운영으로 바빠 편집할 시간이 없어서, 비용을 들여서라도 출판사에 맡기고 싶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원하시는 건 빠른 출간이었는데, 나는 엉뚱한 곳에 삽질만 했습니다.
뒤늦게나마 진짜 필요한 걸 알게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곧바로 책 제목과 목차를 정리해 보냈습니다. 내 지식 뽐내기만 급급하고, 상대방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내가 민망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아내 앞에 불려 가 두 손 모으고 교육(?)을 자주 받습니다. ‘수다가 늘었다고!’
한 번씩 나도 말하다가 깜짝깜짝 놀랍니다. 늙으면 양기가 입으로 올라온다고 했던가요.
내일은 H 작가 부탁으로 인스타그램 강의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늘 사무실에서 강의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예전에 배웠던 영상을 찾아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듣기 평가의 달인'이 되어, 내가 전하려는 말보다 작가 의견을 충분히 듣고 난 후 원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콕 집어서 알려주려 합니다.
경청은 단순히 귀를 여는 것이 아닙니다. 맞장구를 치고, 끄덕이고, 눈을 마주치는 것을 넘어, 온 마음을 다해 상대방 쪽으로 기울이는 태도까지 포함됩니다. 상대방이 소중한 이야기를 다듬고, 데치고, 익혀서 먹기 좋은 이야기로 접시에 담아내듯, 자신의 생각을 차근차근 꺼내놓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지요.
나이 들수록 말이 늘어가는데, 정작 필요한 건 더 크고 따뜻한 귀가 아닐까요?
"남은 시간도 최고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