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벌겋게 보였다. 안경에 초장이 흘러 와이셔츠와 바지로 흘러내렸다."
자갈치 횟집에서 과 회식이 있을 때였다. 감성돔 회, 참돔, 멍게, 해삼, 산낙지가 불빛에 살아있는 것 같이 반짝반짝 빛났다.
부산 남항 앞바다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오가며 부앙~ 뱃고동 소리가 가끔 들렸다.
회식 시작. 회사와 자신을 위한 건배 제의가 있었다. 과장은 잘 해 보자는 의미로 다시 한번 건배제의 했다. 공식적인 행사는 끝났다. 지금부터 술 판. 술이 몇 순배 돌아갔다. 여기저기서 큰 소리로 웃는 소리가 들렸다.
7개 테이블 중 나는 중앙에 있는 식탁에 앉았다. 앞쪽 왼쪽에 과장, 오른쪽에는 허 주사, 내 옆에는 김 계장, 이렇게 4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과장에게 술을 돌아가면서 권했다. 술이 몇 잔 오고 가고 분위기는 좋았다.
평소 조용했던 김수아 주무관 얼굴이 불그스럼하게 달아올랐다. 소주 병과 잔을 들고 다니면서 술을 권하기도 했다.
그때였다. 내 앞에 있던 과장이 "에이 씨발 니들 하고 술 못 마시겠다...,"라는 말과 함께 초장 그릇이 내 얼굴로 날아왔다. 미처 피할 겨를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초장 세례와 과장의 고함 소리에 화기애애했던 회식장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뭔가 큰일이 난 것처럼 모두 나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 얼굴에 초장을 뿌렸던 과장은 내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숨이 막힐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주변에 있던 직원들이 과장을 말리며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내가 뭔가 잘못 말한 것이 있는지 옆에 있던 김 계장과 맞은편에 있던 허 주사에게 물었지만 그냥 우리끼리 대화한 것밖에 없다고 했다.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술을 든 손이 떨렸다. 내게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과장이 출근했다. 나는 과장이 내게 와서 사과하기를 기대했다.
"어젯밤 내가 술이 취해 미안했다"라고 말하기를.
한 시간이 지나도 과장은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과장 책상 앞으로 갔다.
"과장님, 어제 제가 술이 취해 기분 나빴지 예~"
"뭐~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요!"
과장은 모니터에 시선을 둔채, 짧게 답하고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뭐가 기분 나빠서 초장을 내 얼굴로 뿌렸는지 묻고 싶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간신히 참았다.
그때부터 과장이 꼴도 보기 싫었다. 한동안 꼭 해야 될 말 말고는 말을 섞지 않았다. 과장을 미워할수록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되었다. 회사에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과장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죽을 맛이었다.
미워하는 데도 체력이 든다. 시간도, 감정도, 때때로 돈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대를 미워하는 데 에너지를 소비하는 경우가 있다. 내 살기도 바쁜데 이득이 없는 일을 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살아가면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미운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과장이 그날 초장을 내 얼굴에 왜 뿌렸는지 알 수 없다. 혹여 아침에 부부 싸움을 하고 출근하지는 않았는지, 아침 간부 회의에서 청장에게 꾸지람을 들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날 과장의 상태를 알지 못했다. 한동안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
우리는 상대방의 상태를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처지에 처해 있는지, 미운 짓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럴 땐 그냥 내버려 두자.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고 회복된다.
내가 승진해서 과장으로 발령받았다. 휴대폰 벨이 울렸다.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과장이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받았다.
"정 과장, 내 여행사 차렸는데 회사 워크숍 행사할 때 우리 회사 이용해 줘라!"
의미 없는 목소리로 그냥 "예"라고 했다. 과장은 퇴직해서 여행사에 취직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도 이제 퇴직을 했다. 그토록 미워했던 사람이 이제는 그저 퇴직한 선배일 뿐이었다. 초장이 얼굴에 뿌려졌던 그날의 분노도, 밤새 뒤척이며 느꼈던 억울함도, 출근길마다 짓눌렀던 그 무게도 이제는 희미한 기억 속 한 장면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내가 그를 미워하며 소비했던 그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결국 나만 힘들게 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나는 과거의 분노를 붙잡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미워하는 것도, 용서하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다. 용서는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용서하면 자유로워진다는 걸 예전에 괴로워하는 나에게 가서 이야기해 주고 싶다.
"미움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인데, 열쇠는 네가 쥐고 있다고."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