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돌아오지 않는 편도 열차입니다.
4박 5일간의 설 연휴가 끝나고, 하루 더 아들네 집에서 보냈습니다. 연휴 마지막 날 내려오려 했지만, 아내가 말렸습니다. "먼 길인데, 하루 더 있다 가자고."
아들이 사는 서산은 부산에서 천리길입니다.
강의 준비, 독서모임 준비, 퇴고…. 해야 할 일들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연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18일. 연휴 마지막 날이 손자 이도의 네 번째 생일이어서 하루 더 있다 오기로 했습니다.
아들 부부와 손자 손녀와 함께 키즈 카페로 갔습니다. 설 연휴 마무리하려는 가족들로 북적였습니다. 축소판 놀이동산 같았습니다. 손자는 까만 눈을 반짝이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습니다.
인기 많은 게임은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억지로 멈추게 해야 했고, 손자 이마 위 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양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자두같아 보였습니다.
당초 두 시간 예약했지만, 손자가 고집을 피워 한 시간을 더 추가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 마트에서 얼음 깨기 장난감을 샀습니다. 아들과 손자가 나란히 앉아 조립합니다. 완성된 게임기를 식탁에 올려놓고 온 가족이 둘러앉았습니다. 육각형 얼음조각을 하나씩 깨다가 펭귄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지는 게임. 지는 사람은 뿅 망치로 머리를 맞아야 합니다.
손자는 지든 이기든 뿅 망치에 머리를 맞을 때마다 작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깔깔거렸습니다. 장난감 같은 손으로 부서진 얼음조각 육각형을 다시 조립했습니다.
돌이 지나지 않은 손녀는 식탁 모서리를 잡고 까치발로 서다 넘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가끔씩 개구리 울음 같은 소리를 내 질렀습니다.
이어, 손자가 좋아하는 딸기가 듬뿍 장식된 케이크가 식탁 위에 놓였습니다. 초 네 개에 불을 붙이자, 손자의 까만 눈동자 속에 촛불이 보였습니다. 가족의 환한 얼굴이 그 눈 안에 함께 담겼습니다.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새콤달콤한 딸기와 케이크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습니다.
옆에 앉아 웃는 듯 안 웃는 듯 손자를 바라보는 아들이 보입니다. 알 수 없는 아픔이 몰려옵니다. 속으로 '아들아 미안하다'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 화장실로 갔습니다.
한때 저는 가족을 내팽개치고 술을 마시며 직장 동료들과 바다로, 산으로 쏘다녔습니다. 아들 졸업식도, 군대 면회도 한 번 가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아들은 아버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톨스토이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 이반은 죽음 앞에서야 깨닫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라고. 톨스토이는 이 소설로 '지금 이 순간을 진짜 자신의 것으로 살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어제 글쓰기 수업을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사는 해야 할 일은 절대로 뒤로 미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내일 할 일도 당겨서 한다고도.
자신도 한때 '미루기' 선수였다고 합니다. 미루지 않게 된 계기가 '암 선고'받은 때부터라고.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이 암 환자라고 하지요. 언제 떠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하지 못한 일'이 아니라 '함께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지요.
손자에게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네 번째 생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종종 잊고 삽니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합니다.
아내의 말이 맞았습니다. 강의는 다음에 준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자의 네 번째 생일, 뿅 망치에 머리를 맞고 깔깔거리던 그 웃음은 오늘 이 자리에서만 존재합니다.
"인생은 왕복 열차가 아니라 편도 열차입니다."
지나친 역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 옆자리에 앉은 사람, 지금 이 순간의 온기.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요. 저도 그러려고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