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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Nov 19. 2024

무딘 칼이 주는 따뜻한 행복


나는 면도날같이 완벽한 아내보다 부엌칼같이 무딘 아내가 좋다.


예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월요일 아침 회사 휴게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앞 사무실에 근무하는  박 감사관이 종이컵에 커피잔을 들고 왔다. 나하고  친해서 그런지 직급 차이가 나서 그런지 항상 반말이다. 


"인구야, 지난주 니 마누라 근무하는 우체국 감사 갔다 왔다. 감사하러 간 게 아니라 씨~ 감사 받고 왔다"라고 했다. 


지적하려면 업무 편람을 들고 와서 자기가 한 일이 맞다고 근거를 대는 통에 힘들었다고. 



아내는 회사에서 걸어 다니는 '업무편람'으로 통했다. 신입시절, 선임이 잘 가르쳐 주지 않아 퇴근할 때 편람을 집에 가져와서 달달 달 외웠다고 했다. 인근 우체국에서 일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감독관청 담당자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전화해서 묻곤 했다. 업무실적도 탁월했다. 예금 실적, 보험 실적, 우체국 쇼핑 실적 등 아내가 가는 우체국은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지적을 당하거나, 못한다는 말을 듣고 집에 오면 밤새 고민하고 괴로워했다. 잘못한 것이 있는지 분석하고 분석한 결과를 내게 가져와서 자신이 잘못이 없다고 열을 내곤 했다. 그런 아내를 보면 안쓰러웠다. 


그랬던 아내가 요즘 자주 실수한다.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찾아 헤맨다. 

"여보, 내 폰에 전화 좀 해 봐라" 

수시로 폰을 찾는다. 휴대폰 둔 곳이 어딘지 몰라 헤매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다.



오늘 아내가 교회 모임 갔다가 나를 데리러 사무실 앞으로 왔다. 차에 타자마자 휴대폰을 내게 건넸다. 네이버 톡톡에서 독서모임 문의 왔더라며 답장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문의 내용에 답장을 마무리할 무렵, 운전하던 아내가 나를 쳐다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여보, 큰일 났다. 휴대폰이 없다"

나에게 준 줄 모르고 모임에서 가져오지 않았다고 착각한 듯했다.

내가 휴대폰을 들고 흔들자 

"어? 아... 맞다. 내가 또 헷갈렸네.


아파트 출입문 앞에 도착했다. 차단막이 차량을 인식하지 못해 열리지 않았다. 아내가 후진기어를 넣고 차를 뒤로 빼고 있었다.

"어~어~여보, 차가 자꾸 뒤로 간다"

"왜 차가 앞으로 안 가지? 분명 기어를 넣었는데..."

백미러로 뒤를 보며 앞으로 가려고 하는 아내. 

“여보, 지금 후진 기어다.”

“아이고, 맞다! 요즘 왜 이렇지.”


아내가 빙그레 웃었다. 완벽하지 않아서, 조금은 모자라고 실수도 하지만, 그래서 더 따뜻한 우리의 일상.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완벽함 보다는, 부엌칼처럼 무딘 아내가 더 좋다.


아내는 요즘 맥북을 배우고 있다. 나는 오늘 줌으로 생성형 AI 교육을 받았다. 아내가 거실에서 부른다. 맥북을 하고 있는 데 잘되지 않는다고. 몇 번을 방에서 거실로 불려나갔다. 


"나 지난번 배웠는데, 벌써 다 까먹은 것 같아..."

"괜찮아.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도 기억 못 하는 데 뭐"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완벽하지 않아서, 조금은 모자라고 실수도 하는 게 인간미가 있다. 나도 AI가 도입될 때부터 AI 콘텐츠 제작 등 전문과정을 배웠지만 다 까먹었다. 오늘 다시 배웠다. 인생이란 배운 것을 잊어가는 과정 아니겠는가?



때로는 기억도 잃어버리고, 실수도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함께 웃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 무뎌진 칼날처럼 무디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 무딤 속에 더 깊은 행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면도날 같은 아내가 아니라서 오늘 하루가 좀 더 따뜻했다.


집으로 오는 길, 시민공원 앞 노부부가 떠올랐다. 할머니가 횡단보도 빨간 신호등에 건너려 하자, 할아버지가 살며시 손을 잡아주던 모습. 서로의 무딤을 보듬으며 걸어온 세월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도 그렇게 익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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