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_태완 시점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나는 꿈을 꾼다.
그러니까 꿈속에서 나는 지금처럼, 산을 오르고 있다.
얼마나 올랐는지 모르겠지만, 늘 이쯤에서 꿈이 시작된다.
영화로 표현하자면 급박함과 속도감이 느껴지는 어지러운 카메라 무빙과 함께 거친 호흡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린다. 귓가에서 맥이 뛰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다. 너무나 간절하게.
그리고 그것이 그 자리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강한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오버페이스가 된 상태지만 쉴 수 없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나쁜 예감이 현실이 됐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다. 간절하게 아니길 바라지만 무의식 속에선 이미 강하게 확신하고 있던 그 어떤 것을 마침내 마주한다.
흔들바위는 그 자리에 없다.
몇 번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꾸었지만 매번 그 순간은 고통스럽다.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울음을 토해낸다.
나는 멀리 떨어져서 그것의 부재를 가득 눈에 담는다. 그것이 있었던 빈자리를 더듬고 껴안으며 추억한다. 그러고 나서 꿈을 깬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아버지는 내 꿈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다만 이 이상한 꿈을 계속해서 꿀뿐이다. 사실 이쯤 되면 왜 진작 확인해보지 않았냐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처음 꿈을 꾸었을 때 왜 흔들바위를 찾아가 보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그저 개꿈인 줄 알았다. 내 기억 속에서 흔들바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 바위와 나와의 연관성은 조금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개꿈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고 나면서부터 생각이 바뀐 거다. 이 꿈과 흔들바위, 그리고 나 사이에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참 뒤에야 본가를 정리했다.
차를 타고 아버지 집 앞에 멈춰 섰을 때,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굉장히 오랜만에 그 집을 어릴 때 나의 시선으로 본 것 같았다.
아버지와 함께 텃밭을 가꾸고 마당을 정리하던 일, 툇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던 일, 등목을 하던 일, 더 전에는 엄마와 함께 있었던 기억까지. 그 모든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 차창 너머로 바라보며 한참을 머물렀다.
그 마당을 지나 수없이 드나들었던 현관문을 열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집 안의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 안에 배인 아버지 냄새, 퀴퀴한 장롱 냄새, 작업복에 묻은 흙냄새가 한꺼번에 느껴졌다. 그 속으로 푹 파묻히듯 천천히 들어갔다.
본가를 방문할 때면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던 식탁과 거실, 저녁이 되면 늘 책을 읽으시던 소파.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지만 책을 좋아하셨다. 흙을 만지는 사람일수록 똑똑하고 아는 게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늘 책을 많이 읽히려고 하셨다.
작은 거실을 지나, 욕실을 보았다. 점점 허리가 굽고 왜소해 가던 아버지가 흰머리를 염색하고 수염을 깎으시던 세면대와, 오래 신어 바닥이 닳은 욕실화, 살짝 빛이 바랜 수건, 그렇지만 윤이 나게 청소된 바닥. 욕실을 지나, 아버지 방문에 섰다.
손잡이에 올려놓은 손이 떨렸다. 나는 눈을 꼭 감고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방안에 짙게 배인 아버지 냄새가 열린 문 사이로 흘러나왔다. 익숙하면서 그리운 냄새. 왠지 모르게 이 방에는 온기가 서려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사이로 먼지가 떠다니는 게 보였다.
고요하고 차분한 느낌.
나는 아버지 침대에 가만히 누웠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버지 품에 안긴 것 같았다. 포근하고 따뜻한 품.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스르르 눈이 감겨 잠깐 선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일어나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나는 가져온 상자를 열어 아버지 물건들을 넣을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책상 위 한 구석에서 그걸 발견한 거다. 아버지와 내가 함께 흔들바위 앞에서 찍었던 사진을. 그리고 아버지가 젊었을 적 혼자 흔들바위 앞에서 환한 얼굴로 찍은 사진도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장소에서 아들과 함께 추억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그러니까 흔들바위는 아버지에게 기념비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짐작하건대 아마 어머니와 둘이서 흔들바위를 찾은 사진도 있었을 것이다. 혹여나 내가 볼까 봐 어딘가에 잘 정리해 두었겠지.
사실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고 난 뒤에도 한참을 고민했다. 반드시 흔들바위를 방문해야만 한다는 생각과, 그저 꿈일 뿐이고 흔들바위는 확인하지 않아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잘 있을 거라는 생각.
이 두 생각이 계속 충돌했다. 이번에도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
흔들바위가 정말 사라졌다면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또 그 꿈이 계속해서 내게 이야기했던 게 정말 사실이라면, 무서울 것 같았다. 이게 마치 내가 감당해야 하는 어떤 운명을 예언한 게 아니었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흔들바위가 그 자리에 여전히 있다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왈칵 떠올라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먹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던 거다.
그리고 난 지금 그 사실을 확인하러 가는 길이고, 매우 긴장한 상태다.
문제는 지금 이 상황이, 꿈속의 그때와 너무 닮아 있다는 거다.
거친 호흡과
귓가에 맴도는 맥박까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과
불안감에 멈출 수 없는 걸음까지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