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00'의 시대(6)

임박

by 향연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그는 잠깐 멈춰 호흡을 고른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다. 목에서 피맛이 나고, 이미 머릿속은 땀으로 가득찬 지 오래다.

주위가 어마어마한 두께의 눈으로 모두 덮여 있는 탓에 힘들어도 앉아서 쉴 곳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는 잠깐 방한 마스크를 내리고 따뜻한 물을 꺼내 마신다. 그리고 얼굴에 흥건한 땀과 물을 손수건으로 닦아 낸다.



‘휴-’


숨이 가라앉자,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만약 흔들바위가 그 자리에 있다면. 그래, 그럼 사진을 하나 찍고 오자. 또 그 이상한 꿈을 꾼다면, 깨고 나서 계속 그 사진을 보는 거다.


흔들바위는 이 자리에 있다, 네가 걱정하는 것과 달리. 그렇게 내 무의식을 설득하면 된다. 그러나 만약 없다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문다.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꿈 내용 그대로 흔들바위가 사라지고 남은 그 자리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나는 힘을 주어 스틱을 눈에 내리 꽂는다. 콰삭하고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정신을 번뜩 들게 만든다.


그럴 리가 없다.

그 바위는 거기에 몇 백년 동안이나 있었고, 누군가 혼자의 힘으로 그걸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없어졌다면 그건 범죄니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수사를 하다 보면 어떻게든 찾을 수 있겠지.


나는 머리를 쥐어짜내 일말의 낙천성을 가져 본다. 그래, 그러면 될 일이야. 걱정할 필요 없다. 다 방법이 있을 거야. 나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계속 전진한다.


‘흔들바위 100m’


표지판이 보인다. 안도의 웃음과 함께 그토록 긴장했던 자신의 모습에 코웃음이 나온다.


그래, 흔들바위가 있지도 않은데 이런 표지판이 여전히 붙어 있을 리가 없지. 그리고 여긴 국립공원이야. 없어졌으면 진작에 뉴스기사가 났겠지. 진짜 바보같다 나.


그는 못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걸음을 옮긴다. 마음이 한결 편하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 한 장 찍고 가야겠다. 저 여기 왔어요, 마음 속으로 말하면서.

그는 뜨거운 것이 목으로 올라오려는 걸 꾹 누른다. 우선 가자, 울더라도 가서 울자.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너무 일찍 온 탓인지, 그는 산행 중 아직 한 명의 등산객도 마주치지 않았다. 암자의 스님들을 제외하고는 이 산중에 오직 그뿐이다.


표지판을 본 이후로 그의 마음은 매우 편해졌다. 그는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며 산의 고요를 만끽한다.


먼 동이 터오고 있다. 그 빛에 어스름히 어둠이 사라지는 모습을, 골짜기의 눈들이 빛나기 시작하고, 안개에 가리워진 산의 능선이 선명해지는 장면들을 가득히 눈에 담는다.


좋다. 아버지가 설악산을 왜 그토록 좋아했는지, 이 순간 너무 잘 알 것 같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마지막 계단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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