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그러다가 맞은편에서 올라오던 노부부와 마주친다. 그 순간 태완은 자신도 모르게 노부부에게 달려가 팔을 붙잡는다.
“어르신, 어르신. 말씀 좀 여쭐게요.”
태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노부부는 당황한 눈치다.
“혹시 흔들바위 가는 길이세요?”
“흔들바위? 아니 우린 울산바위 올라가는 길인데.”
할아버지의 말에 태완은 마음이 놓인다.
“네, 오늘은 흔들바위 가는 길이 많이 얼었더라고요. 울산바위만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할아버지는 어색하게 웃는 태완의 얼굴을 갸웃거리며 들여다본다.
“뭔 얘기를 하는 거여? 여기 또 뭐가 있남?”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할아버지의 눈을 보고 태완은 아뿔싸 싶지만 이미 늦었다.
“여보 여기 무슨 바위가 더 있나벼. 하여간 오랜만에 올라오니 허허. 총각, 거기가 어디요? 우리 좀 알려줄 수 있나?”
태완은 신이 나 보이는 할아버지의 말에 당황한다.
“어.. 처음이 아니세요?”
“그럼, 젊었을 적 자주 왔지. 이 산 구석구석 모르는 데가 없을 정도라니까.”
“그런데 흔들바위를 모르신다구요?”
태완의 말에 자신만만하던 할아버지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비친다.
태완은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이제 그는 할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는 꼴로 묻는다.
“흔들바위, 들어본 적 없으세요? 이름은 흔들바윈데 아무리 밀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그 흔들바위요. 엄청 유명해요. 자주 오셨다면 절대 모를 수가 없거든요. 다시 한번 잘 생각해..”
그때 할머니가 태완의 손을 뿌리치며 말한다.
“여봐요, 총각. 거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너무하네 진짜. 흔들바윈지 뭔지 아무튼 우린 모르니까 그렇게 알아요.”
이상한 사람이라며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진다.
불안한 예감이 든다. 그래. 한 명은, 아니 두 명은 모를 수 있어.
그는 빠른 속도로 하산해 국립공원안내소로 달려간다. 아직 잠이 덜 깬 국립공원 직원이 하품을 하다가 그와 눈이 마주친다.
“예, 무슨..”
“말씀 좀 여쭐게요. 여기 혹시 흔들바위라고 있지 않나요?”
“예..?”
“흔들바위요, 울산바위 가는 중턱에 있는 거요.”
“거 그쯔음에 바위가 많기는 한데.. 그 뭐 별명인가 보죠?”
“아뇨, 별명 아니고 공식적인 이름이에요. 매년 만우절마다 돌이 떨어졌다는 농담도 나오고 그러잖아요. 흔들바위 모르세요?”
“예 글쎄.. 저는 잘 모르겠네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하-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소리라도 한 번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진짜구나. 진짜야. 꿈이 아니다. 이건, ‘현실’이다.
흔들바위는 단순히 없어진 게 아니다.
이젠 아무도 그게 있었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흔들바위의 ‘존재’ 자체가 지워진 것이다.
세상에서 흔들바위가 사라졌다. 아무도 모르게. 그게 있었다는 사실조차 함께.
오직 나만 그걸 기억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주차장에서 만난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모두 하나같이 ‘흔들바위’는 들어보지 못했단다. 인터넷에 검색해도 흔들바위는 나오지 않는다. 세상이 나를 두고 깜짝 카메라를 하는 건가.
땀에 푹 젖고 지친 태완은 망연자실해 주차장에 서 있다. 그 사이 만차가 된 주차장은 열심히 교통정리를 하는 주차요원들과 방문객들로 시끌벅적하다.
‘꼬르륵-’
이 와중에 배가 고프다. 새벽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이다.
그래,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그는 차로 향한다. 쪽지가 창틀에 꽂혀 있다.
예쁘게 자르고 정성스레 코팅까지 한 것과는 달리 내용은 투박하다.
‘주차비 6000원은 선불임. 계좌로 이체하거나 주차 요원에게 결제바람.’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선불을 한단 말인가.
그는 약간의 의문과 함께 차에 올라타 성실하게 바로 입금을 한다. 그때 주차요원 한 명이 창문을 두드린다.
“지금 나갈거여?”
“예, 입금했어요.”
왜 주차 요원은 항상 내게 반말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며 쪽지를 돌려준다. 코팅까지 한 걸 보면 가지라고 준 것 같지는 않아서다.
“좌회전해.”
“흔..”
그는 한 번 더 흔들바위에 대해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감사합니다.”
별로 감사하지도 않지만 꾸벅 인사를 하며 그는 주차장을 돌아 나간다. 굶어 죽을 것 같으니 일단 가장 가까우면서도 저렴한 한식뷔페로 간다.
그는 시름에 잠긴 얼굴을 하고 제육볶음과 도토리묵무침을 아낌없이 푼다. 남김없이 먹는다.
허기가 조금 가시고 나니 아까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오른다. 멀건 미역국물을 입에 넣던 숟가락이 순간 멈춘다.
웃었다.
그 사람이 분명, 웃었다.
그의 입에서 ‘흔’이 나왔을 때, 그리고 나서 그가 뒷말을 삼켰을 때 주차요원의 입가에 분명 미소가 슬쩍 비쳤다.
그는 흥분해 숟가락을 쾅 내려놓는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이야. 흥분으로 온몸이 떨린다. 숨이 거칠어진다.
“이모 계산이요.”
그는 급하게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다 그만 떨어뜨린다. 카드를 주우려고 허리를 숙인 순간, 백반집의 큰 티비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어제저녁 8시, 00그룹 회장 김 00 씨가 자신의 재산을 뜻밖의 인물에게 상속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자리에 ~이 나와 계십니다. ~님.”
“네, 말씀드리가 조심스럽습니다만, 사실 인물은 아닙니다.”
“그럼 누구죠? 아니.. 뭐죠?”
"예, 저도 당황스러운데요, ‘존재’라고 하면 적당할까요. 그 존재는 바로 에.. 돌멩입니다."
그의 귀에 ‘돌’이라는 단어가 꽂혔다.
"예, 돌멩.. 돌멩이요?"
아나운서의 얼굴이 당황스러움과 의문으로 가득하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어.. 예, 맞습니다.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많이 당황스러운데요. 사실입니다."
"..그렇군요. 아니 근데, 이게.. 가능하긴 한 겁니까? "
"예, 가능은 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법이 많이 개정됐거든요. 실제로 시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요."
"김 00 회장은 이런 면에서도 선구자가 되는군요. 역시 언제나 예상을 빗나갑니다."
"일각에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평소 김 회장이 '반려'의 범위를 넓히며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법 제정에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법적 근거로 이게 가능하게 된 겁니까?"
"미르의 상속은 작년에 만들어진 '정서동반자 보호법’ 제도 아래 가능했습니다. 김 회장은 이 제도에 따라 생전 이 미르를 ‘특수 반려 보호 대상’으로 등록했는데요. 이 개념은 정서적 유대가 깊고 일정 기간 이상 정서적 교류와 보호를 받은 존재를 말합니다. 이러한 '특수 반려 보호 대상'은 스스로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새 유형의 '준법인격체'가 될 수 있는데요, 그걸 '특수 권리 대상'이라고 합니다. 미르는 현재 이 '특수 권리 대상'입니다."
"특수 권리 대상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는 거죠?"
"예, 이전에는 동물이나 무생물에게 직접 재산을 상속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법적 대리인을 만들고, 신탁을 설립하며 사람인 집행자를 따로 지정해 간접적으로 유산을 상속했죠. 그렇지만 이 특수 권리 대상은 동물이나 무생물이 기존의 신탁 수혜자와 달리 그 자체로 '법적 권리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차이점입니다."
"그럼 거의.. 인간인 거네요?"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권리와 소유권적인 측면에서는 인간과 동일하게 주장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뜻이죠. 특수 권리 대상은 재산을 가질 수도 있고, 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주민등록처럼 신고도 해야 합니다. 또한 인간이 함부로 학대하거나 유기할 수도 없게 되죠."
"와, 이런 세상이 오는군요. 이젠 정말 모든 생명체가, 아니 모든 '존재'가 동일한 대우를 받는 세상이 되나 봅니다."
돌멩이에게 상속을 한다니 이게 뭔 일이여. 세상에 저 돌멩이는 복도 지지리 많지. 하이고 나도 돌멩이로 태어날 걸 그랬나벼잉. 오백억이 웬 말이여. 그 돈 나 좀 줬음 좋겄다 그려.
식당 안이 웅성대며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그 역시도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이름이 뭐여?”
“하이고 미르래 미르. 용이라는 뜻 아녀.”
“내 이름보다 멋들어졌구먼. 돌팔자가 상팔자여.”
"하유, 그정돈 돼야 오백억을 받는겨~"
"아이고 이사람아 아니지, 현금만 오백억이라잖여. 더 된다는 거여."
태완은 노인들의 대화를 듣다 그만, 그 단어에 꽂힌다. 미르?
태완은 어딘가 익숙한 이름에 미역국을 설설 저으며 한참을 고민한다. 미르, 미르.. 어디서 들어봤더라?
태완은 머릿속 사진첩을 구석구석 뒤적인다. 그러다가 그 이름의 출처를 알아내고는, 그만 몸이 굳는다.
아버지와 함께 설악산을 오를 때의 일이었다. 태완은 그때 그렇게 물었었다. 흔들바위가 왜 좋냐고.
아버지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흔들바위가 흔들려서 좋다고.
태완은 무슨 말이냐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정말이라면서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흔들바위는 늘 흔들리지. 그렇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아. 약해 보이지만 강하지. 그게 삶과 너무 닮아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인생과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는 먼 곳을 잠시 응시했다. 태완은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표정이 어딘가 쓸쓸해보여 묻고 싶던 것을 넣어 두었다.
그리고 말을 돌렸다. 그럼 아빠가 지어준 흔들바위의 이름이 있느냐고. 뭔가 아버지라면 이름 정도는 이미 붙여주었을 것 같다면서.
아버지는 태완의 말에 금세 표정이 변했다.
“역시, 아들이 아빠를 잘 알아. 그럼, 있고말고. 아빠는 늘 사람들이 이 바위를 ‘흔들바위’라고 부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왜요? 태완이 묻자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
“흔들리는 게 아니라, 떨어지지 않고 버티는 것. 그게 중요한 거니까.”
아빠는 흔들리는 이름이 아닌 강인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고. 그래서 용이라는 뜻의
'미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말이다.
미르. 태완도 왠지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우린 지금 흔들바위가 아니라 미르를 보러 가는 거였다.
'미르'
아버지가 흔들바위를 부르던 이름이었다. 그 순간 태완은 무언가 강한 느낌에 휩싸인다.
그는, 직감적으로 느낀다.
흔들바위의 실종과(이건 일종의 실종 사건이므로) 돌멩이의 상속에는 분명 어떠한 연관성이 있다고.
그리고 그걸 알아볼 수 있는 건 자신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