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어릴 적 이야기, <살아있는 돌>
태완은 동글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태완은 조잘조잘 동글에 대해 떠들었다. 우선 집에 가면 목욕을 시켜줄 거라고. 그리고 잠도 함께 자고, 밥을 먹을 때도 늘 곁에 두겠다고.
“아빠, 동글이도 밥을 먹을까요?”
문득 궁금해져 물었을 때, 태완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아버지는 눈을 찌푸리며 웃었다. 아버지는 늘 곤란할 때면 그런 표정을 짓곤 했다. 몇 초간 고민하던 아버지는 이렇게 물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무엇이 필요할 것 같니?"
어린 태완은 발을 동동 구르며 열심히 답을 생각해 냈다. 먹을 게 있어야 하고, 숨도 쉬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한다고.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도 맞지만, 사람은 그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단다.” “그럼 뭐가 더 필요한데요?” 태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잠도 잘 자면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애정과 관심이 필요해. 우리 태완이도 아빠가 이만큼 사랑해 주니까 행복한 거지. 이 세상을 태완이 혼자 살아갈 수 있겠어?”
태완은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안 된다며 아버지 팔에 얼굴을 부볐다.
“사랑을 받기도 해야 하고, 주기도 해야 되지. 사람은 그래야 살아갈 수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표정이 어딘가 서글퍼 보였다. 태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이내 말을 돌렸다. “그럼 아빠도 태완이가 사랑해 주니까 잘 살 수 있겠네요?”
태완의 자신만만한 답에 아버지는 그만 웃음이 터졌다.
“그래그래, 맞네.”
아버지는 태완의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었다. 태완은 동글을 품에 안고 아버지에게 기대 잠이 들었다.
집에 도착한 태완은 우선 목욕물을 받았다. 오늘은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글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이었다. 태완은 아버지가 먼저 대야에 들어가 있는 동안 먼저 동글을 씻겼다. 눈을 부릅뜨고 어디에 흙이 묻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한 후 세숫대야에 물을 받고 거품을 내서 보글보글 비눗물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동글을 담가 작은 손으로 뽀득뽀득하게 씻겼다.
“너도 여기에 몸 좀 담가,”
태완은 동글을 물에 넣어 놓고 자신도 아버지 옆으로 뛰어들었다.
"아유 이 녀석아, 천천히 들어와야지."
아버지에게 엉덩이를 한 대 찰싹 맞아도 신이 났다.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 노곤노곤해지며 뭉치고 아픈 다리와 무릎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태완은 몇 안 되는 장난감을 가지고 조금 놀다가 이내 까무룩 잠이 들어 버렸다. 아버지는 그런 태완의 머리를 대충 감기고 물기를 닦아 편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리고 태완을 번쩍 안아 들어 이불을 덮어 따뜻하게 데워놓은 아랫목에 뉘었다.
어린 태완은 세상모르고 잠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곤히 잠든 태완의 옆에 작은 손수건을 두고, 그 위에 동글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자신도 함께 그 옆에 누웠다. 창밖에는 소리 없이 눈이 내렸다. 조용하고 따뜻한 겨울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태완은 슬며시 눈을 찌르는 햇살에 얼굴을 찌푸리며 잠이 깼다. 아버지는 벌써 일을 나갔는지 없었다.
‘오늘은 어디 밭에 간다고 했더라.’
아버지는 해가 지고 나서야 들어올 것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이틀 밤을 더 자고 나서야 온다고 했다. 오늘은 또 무얼 하며 놀지, 잠시 고민하던 태완은 자신의 옆에 놓인 동글을 발견 했다.
‘아, 맞다. 동글이가 있었지!’
태완은 금세 기분이 좋아져 동글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굴리며 함께 무얼 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배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태완은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갔다. 아버지가 아침에 만들어 놓고 나간 밥과 국이 가지런히 상에 놓여 있었다.
태완은 그대로 부엌을 지나쳐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태완과 아버지가 함께 가꾸는 작은 텃밭이 있었다. 태완은 동글을 잠시 내려놓고 문 앞에 놓인 흙투성이 장갑을 꼈다. 그리고 텃밭으로 가 눈을 파헤쳐 숨어 있던 부직포를 벗겼다. 보온 효과를 주는 부직포 아래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작물들이 아직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이렇게 하면 겨우내 채소를 먹을 수 있어 아버지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태완은 아버지가 가르쳐 준 걸 기억하며 능숙하게 잡초를 몇 개 뽑았다. 잡초를 들고 일어나려던 태완은 바닥에 잠깐 놓아둔 동글과 눈이 마주쳤다. 잠시 고민하던 태완은 잡초를 내려놓고 대신 옆에 있던 달래 한뿌리를 뽑았다. 알싸한 달래향이 벌써 나는 것 같았다.
‘겨울 시금치는 참 달단다, 태완아. 얼지 않으려고 스스로 당분을 몸에 많이 저장하거든.’
아버지의 말이 기억난 태완은 옆 이랑의 시금치도 한 단 뽑아 품에 안았다.
“이제 가자 동글아.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태완은 씩 웃으며 동글의 몸에 묻은 눈을 옷에 닦고 소중히 손에 들어 집으로 돌아갔다.
태완은 부엌으로 가 찬장에서 조그마한 절구를 꺼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던 것처럼 그 안에 먼저 달래를 넣고 빻았다. 쌉싸름하고 향긋한 달래 향이 부엌에 가득 퍼졌다. 어느 정도 빻고 나자 간장 종지를 꺼내 한쪽에 달래를 담고, 이번엔 시금치 잎을 손으로 뜯어 절구에 넣고 똑같이 했다.
‘남은 건 아버지한테 반찬으로 먹자고 해야지.’
태완은 그렇게 생각하며 시금치를 모아 반대쪽 종지에 담았다. 완성된 결과물을 보니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자, 이제 밥 먹자, 동글아.”
태완은 상 위에 손수건을 깔고 동글을 그 위에 놓은 뒤 동글의 앞에 간장 종지를 가져다 두었다.
“냠냠냠. 맛있지?”
태완은 찧은 잎을 조금 덜어 동글의 입가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문지르며 먹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자신도 이어서 콩나물 국을 한 숟갈 떴다. 항상 혼자 먹던 아침이 오늘은 외롭지 않았다. 태완은 신이 나서 평소라면 남겼을 밥공기를 깨끗하게 비웠다.
“잘 먹었습니다-”
그릇과 간장 종지를 개수대에 가져다 놓은 태완은 작은 거실 한복판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아유 좋다. 배부르다.”
뒹굴뒹굴 거리던 태완은 동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뭐 할까, 동글아. 아, 만화책 볼까?”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눈을 빛내며 태완은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만화책을 몇 권 챙겨 나왔다. 그리고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 만화책을 펼치고, 동글이도 자기 옆에 딱 붙여 놓았다.
“같이 보면 더 재밌겠다, 그치.”
태완은 동글에게 지금까지의 줄거리를 설명해 주었다. 함께 볼 친구가 있으니 유독 더 재밌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 책을 읽다가 태완은 엎드린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동글도 함께.
오후의 해가 낮아지며 둘을 따스하게 비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