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
잔뜩 흥분한 채로 계산을 하고 나온 태완은 다시 차에 탄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돌멩이가 상속을 받았다. 그리고 흔들바위가 사라졌다. 과연 이게 우연일까?
그러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시동을 걸었다가 끄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놓으며 허둥대던 태완은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 속에서 차츰 생각이 정리된다. 차창 너머로 무언가를 바라보듯이, 약간의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차갑게 얼어붙은 시트가 미지근하게 데워질 때까지 태완은 차 안에서 생각에 잠긴다.
흔들바위는 흔들린다. 위태로워 보이지만 아무리 밀어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겉으로 볼 때는 약하지만 그 안엔 굳건한 중심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만우절마다 흔들바위와 관련된 농담이 있었던 이유는 오히려 그 바위가 절대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그 연약함 속에 있는 강인함 때문에 흔들바위를 좋아했다.
‘강인함을 좋아했다.’
태완의 생각은 거기에 멈춘다.
‘아버지는 흔들바위를 사랑했구나.’
태완은 느낄 수 있었다.
흔들바위를 보러 가는 길에 들떴던 아버지의 표정과, 삶에서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늘 흔들바위를 방문하던 아버지, 이름까지 붙여주며 애틋하게 여기던 마음.
그걸 사랑이 아니면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밖에는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나타내는 말로 ‘사랑’은 아주 적절했다. 조금도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없이 귀퉁이가 꼭 맞는 느낌. 그러나 사람이 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명제는 성립 가능한가?
태완은 긴 숨을 내쉬며 눈을 감는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으면서 어딘가 이상하기도 하다. 운전석에 기대 몸을 뒤척이던 태완은 옆구리에서 동글의 존재감을 느낀다. 태완은 동글을 꺼내 손수건을 벗겨준다. 땀으로 축축한 주머니가 왠지 답답할 것 같아서다. 태완은 조수석에 동글을 내려놓고 톡톡 두드리며 다시 생각에 빠져든다.
그 이름이 떠오른다. ‘미르.' 용이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아버지는 흔들바위에게 강인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하셨다. 용은 강인하다.
‘그리고 날아오르지.’
갑자기 드는 생각에 태완은 동글을 바라본다. 그리고 잠시 동안 동글을 응시 하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그래, 용은 날아올라.”
그렇다면 아버지는 미르가 날아오르길 바랐을까? 미르라는 이름에는 그런 뜻도 있었을까.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켰을 흔들바위가 자유롭게 멀리멀리 떠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었을까. 아니, 그건 너무 확대해석인가. 혹시나 그 이름이 이 사건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을까.
태완은 머리가 복잡해진다. '좀 쉬어야겠어.' 우선은 너무 피곤하니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맑아져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운전을 해 숙소로 돌아간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따뜻한 물로 씻어 낸 태완은 바로 잠에 든다. 그의 옆에는 따뜻한 물로 함께 씻고 나온 동글이 새 손수건 위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