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00'의 시대(12)

수사

by 향연

태완은 눈을 뜬다. 시간은 밤 11시.


대체 몇 시간을 잔 건가 싶어 헛웃음이 난다. 태완은 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자신이 배가 고파서 깼다는 것을 인지한다.


‘뭘 좀 먹을까.’


태완은 딱히 먹을 게 없다는 걸 깨닫고는 가방에 있던 비상식량을 꺼낸다. 원래라면 대청봉에 올라가는 길에 먹었을 테지만 여전히 가방에 들어있는 간편식은 자체 발열로 끓여지는 라면밥으로, 옛날 생각도 나고 짐도 줄일 겸 겸사겸사 주문한 것이었다. 설악산에 올라가는 사람이라면 보통 이런 음식을 준비해 간다고들 했었다.


제대 이후 처음 먹는 발열식량이라 조금 들뜬 태완은 봉투를 열고 익숙하게 준비를 한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자 방안에 퍼지는 짭쪼름한 냄새에 입안에 침이 고인다. 잠깐 기다렸다가 봉지를 열고 바닥까지 잘 섞어주면 완성이다. 함께 들어 있던 수저포크로 밥을 떠 호호 불어가며 먹는다.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먹으니 꽤 맛있다.


밥을 먹으며 내일은 무얼 할지 생각한다. 흔들바위를 찾으러 가기로 결심한 다음날, 회사에 이틀 동안 연차를 냈다. 월, 화, 그리고 주말까지 합쳐 총 나흘이다. 급한 업무가 있어 바로 쓰지는 못하고 열흘 정도 지난 뒤에야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태완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만약 흔들바위가 없다면?’


태완의 머릿속엔 하루 종일 이 생각이 돌아다녔고, 잠자리에 누운 뒤에도 생각이 나면 불안하고 긴장이 돼 잠이 오지 않았다. 심장을 누르는 압박감에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이 늘어났다. 물론 흔들바위가 사라졌을 순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주 만약 그렇다면, 꿈이 정말 사실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까지는 아직 하지도 못했다. 흔들바위를 생각하면 거대한 구름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탓에 사고가 완전히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의 부재를 마주하는 순간, 어색하게 텅 빈 공간과 그 앞에서 하얗게 질려 있을 자신이 생생히 떠올라 태완은 요 며칠 업무는커녕 일상생활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태완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상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자세히 말하자면 흔들바위가 사라졌을 리가 없다는 가정 하에, 그 자리를 여전히 잘 지키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편안해진 자신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숨통이 트였다. 그러고 나서 태완은 그때는 뭘 할까 생각하곤 했다. 이틀이나 남은 시간 동안 간만의 휴가를 즐기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아주 즐거운 휴가여야 한다.


그쪽으로 생각을 돌리면 마음이 진정되어, 뭔가 우습지만 태완은 불안할 때마다 가장 완벽할 여행을 계획하며 연차 날을 기다렸다. 등산복 쇼핑은 물론이고 맛집부터 숙소, 온천, 산림욕장, 계획이 틀어졌을 때를 대비한 플랜 B까지. 아침을 먹을 식당이 문을 닫았을 때 점심으로 먹을 메뉴가 어떻게 바뀔지까지 고려했으니 말 다 했다.



그러나 흔들바위는 정말 없었다. 그 꿈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모든 것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마치 예견된 것처럼. 태완은 애써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마주하지 않으려 해도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그저 자기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밖에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릴 적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태완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선 그걸 덮어두려 했다. 그때처럼 잔뜩 움츠러들어 자신을 보호하려 했다. 그리고 그건 습벽이 되어 조금이라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미 그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각인된 아주 익숙한 방식으로.


태완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을 두꺼운 이불로 덮어두고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주 나중에야 꺼내보곤 했다. 그리고 때때로 그런 시기는 영영 오지 않기도 했다. 마치 아버지와 태완의 관계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태완은 자신이 지금 다시 그러고 싶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렇지.’


싹싹 긁어 마지막 숟갈을 입에 넣은 태완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휴대폰을 집어 든다.


‘흘림골 탐방 코스’


여길 예약해 둔 것을 깜박했다. 태완의 휴대폰에는 과도하게 완벽한 휴가 스케줄표가 들어 있었고, 흘림골 탐방 코스는 그중 하나였다. 태완은 일부러 흔들바위를 보러 가기로 한 다음날에 코스를 예약해 두었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슬렁슬렁 산책하며 경치 구경을 하기 위해서다. 정확히는 제발 그럴 수 있길 바라며 여유로울 자신을 상상하려 애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잠깐 시간을 줘도 될까. 나에게 잠시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해 줘도 될까. 태완은 자문한다. 깨끗하게 비운 그릇 바닥을 숟가락으로 긁으며 태완은 잠시 고민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어릴 적 있던 일로 충분히 상처받을 수 있다고, 그러나 성인이 된 다음엔 그걸 극복하는 건 오롯이 본인의 몫이라고,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건 네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태완은 그 말이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일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태완은 지금까지 그 일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의지가 생기지 않았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잘못이 없다, 그걸 준 사람에게 있을 뿐. 그러므로 그걸 극복해야 할 용기를 가지라는 말은 누구도 자신에게 할 수 없다고 태완은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리고 덮어둔 후 그 문제에 대해 다시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흘림골 탐방 코스는 내일, 9시 첫 타임으로 예약되어 있다. 예약 내역을 한 번 더 확인한 태완은 말없이 눈을 세게 감았다 뜬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지금 자신에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태완은 결국 여기서 계획한 것을 다 하고 가기로 한다.


‘자연 속에 파묻혀 계속 걷고 또 걷다 보면 생각을 정리하기가 더 쉽지 않을까. 마음도 가라앉힐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흘림골은 한 번 가봐야 하지 않겠어. 애써 예약해 뒀는데 아깝기도 하고.’


이렇게 완벽한 계획을 짜두고 못 갈 수는 없다고, 태완은 여러 가지 이유를 줄줄이 대며 그렇게 결론 내린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오색약수터에 차를 대고 나서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 하니 적어도 7시엔 여기서 나가야 할 것 같아. 택시가 얼마나 자주 있을지 모르니까.’


태완은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해 알람을 맞춰 둔다. 6시엔 일어나야 하니 5분 간격으로 6개 정도 맞추면 되겠다 싶다. 그는 먹은 것을 정리하고 양치를 한 뒤 다시 눕는다.


걱정했던 대로 눈이 말똥말똥하다. 낮잠을 아주 푹 잔 덕분에 아무래도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에잇- 태완은 입술을 내밀고 이불을 걷어차며 일어나 침대 옆에 놓인 취침등을 켠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아둔 노트북을 가지고 다시 침대로 돌아온다.


‘그냥 검색만 해보는 거야, 검색만. 흔들바위가 사라진 걸 정말 아무도 기억 못 하는지 그것만 찾아보자.’


통통한 베개를 손으로 모아 더 부풀도록 모양을 잡아준 후 하나는 등받침으로, 하나는 무릎 위에 놓는다. 태완은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흔들바위'룰 검색하려다가, 검색어 순위를 도배하고 있는 '미르'를 발견하고 마음이 바뀐다. 우선 오늘 낮에 있었던 일부터 검색해 보기로 한다. 그 상속 사건의 상세한 전말이 정말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긴장되고 초조한 마음으로 그는 노트북을 켜고 검색창에 조심스럽게 ‘미르’를 검색한다.


바로 수많은 기사와 게시물이 뜬다. 이거 안 되겠다 싶어 우선 다시 나가 바탕화면에 폴더를 만들어 놓는다. 이름은 ‘미르’. 그리고 그 안에 '기사', '영상', '댓글', 'sns' 등 세부 폴더를 만든다. 평소 계획적인 태완의 성격이 자신도 모르게 여기서도 발현된다.


고작 반나절이 지났을 뿐인데 온라인에는 이미 미르에 대한 수많은 뉴스 기사와 추측성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미르, 500억 상속받아’

‘돌멩이 시대의 도래’

‘사람보다 귀한 돌멩이? 이제 어쩌나’


역시나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 가득하다. 태완은 먼저 가장 위에 있는 뉴스 기사 하나를 클릭해 본다. 내용은 아까 백반집에서 봤던 뉴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글로 정리된 것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며 머릿속에 넣은 뒤 그대로 스크랩해 폴더에 정리해 둔다.



그 뒤로 태완은 자신도 모르게 이 사건에 몰입했는지 지금까지 올라온 기사와 커뮤니티 반응, 댓글, sns, 블로그 영상을 전부 찾아본다. 상속받은 돌멩이 미르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그의 컴퓨터 파일 ‘미르’에는 수많은 잡다한 자료들이 수집된다.


어언 세 시간이 지나고, 태완은 굳은 목은 돌리며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들을 상기한다. 종이에 끄적이며 중요한 정보를 정리해 본다.


우선 이 돌멩이는 출신을 밝히지 않는단다. 사람들이 추측하건대 이유는 돌멩이의 성분, 출생일시 등을 이용해 사주를 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란다. 그것 참 웃기는 소리다. 아니, 실제로 강아지 사주가 얼마 전 유행하기도 했으니까.. 틀린 말은 또 아니려나? 다음.

크기는 두 손으로 감쌀 수 있을 정도에 무게는 7kg 정도다. 5kg라는 사람도 있다. 대체 얼마만 한 크기에 몇 키로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사실상 정확한 정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모두 추측이고 가설일 뿐이다. 흥미로운 건 자신이 미르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어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거겠지? 하여간 어딜 가나 남들이 그렇다면 그저 따라 하기 급급한 사람들이 있다니까.' 태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가장 많은 케이스는 ‘나 미르 본 적 있는 것 같다’며 생김새와 출신지, 심지어는 성격과 돌의 능력(예를 들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등)에 대한 정보를 흘리는 경우다. 물론 이 사람들의 증언은 하나같이 일관성이 없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너무 유명한 돌이 되어 버렸으니, 그걸 봤다고 말하며 유명세에 올라타려는 걸까? 그러면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설마 사람들이 정말 자신이 미르를 알고 있다고 점점 믿게 되고 있나?


답답해진 태완은 여기까지 적은 후,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눈을 돌린다. 이번엔 법적 대리인, 아니지 '특수 구권리 대상'의 법적 대리인은 '보조인'이라고 한단다. 보조인 A 씨의 인터뷰다. 회장의 유언장을 공개하며 미르의 상속 사실을 밝힌 사람으로 김 회장과 함께 일한지 꽤 오래된 인물이었다. 기자회견에도 등장했는데, 거기서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언장에 따르면 회장은 미르에 대한 세부 정보를 밝히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은 상속한 500억의 현금은 모두 미르를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일, 그리고 그걸 해줄 사람들을 고용하는 데 쓰일 예정이라는 것 정도다. 김 회장이 보유하던 00그룹의 지분 전부 역시 미르게에 상속되어 미르는 해당 그룹의 최대 주주가 되었고, 보조인 A씨가 미르의 의사를 대변해 이사회 구성 및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된다. 또한 재산 중 일부는 반려 돌멩이 문화 진흥에 사용될 계획이다. 그러나 미르의 개인정보만은, 그러니까 외형과 출신지, 구성 성분, 크기 등에 대한 상세 정보는 극비에 부쳐지고 있다.'


또한 보조인은 앞서 밝힌 내용을 말하고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내용 및 유언장 전문은 비공개라 말하며, 회장의 유언에 따라 미르를 공식적으로 세상에 공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즉, 현재 대중들에게 공개된 미르의 사진은 누리꾼들이 김 회장의 과거 사진을 모두 파헤쳐 발견한 단 한 장뿐이고, 그마저도 아주 일부만 찍힌 사진이라 확대하지 않으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며 전신사진은 아예 없다.


'흠, 너무 냄새가 많이 나는데. 수상쩍은 냄새가.'


태완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다음 기사를 클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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