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00'의 시대(23)

어느 날, 돌멩이 동생이 생겼다 2 <돌멩이의 시대>

by 향연

“엄마가 봤어?”



나는 왠지 모르게 설움이 울컥 치민다. 일단 흘러나온 감정은 폭포처럼 걷잡을 수 없이 세차게 날 선 말로 마구 쏟아져 나온다. 비꼬는 듯한 말투와 차가운 미소와 함께.


“울산바위에서 나왔다고? 아니, 길에서 주워 온 건지 어떻게 알아. 엄마가 직접 봤어? 애초에 울산바위가 어떻게 생겼는 알기나 해?”


진주야, 그건 중요하지 않아.



엄마의 차분한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이거 사기야, 엄마. 바보야? 이렇게 뻔히 보이는 수에 속아 넘어갔어? 이거 얼마 줬어? 참 돈도 많다. 나라도 팔겠어. 엄마 같은 사람들이 다 살 텐데. 돈 벌기 참 쉽다 그치.”


너무 빠르게 토해 내듯 말해선지, 감정이 격해져선지 숨이 찬다.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참는다. 나한테나 더 잘해주지. 나나 더 신경 써주지. 나는 항상 엄마가 필요했는데. 상처는 내가 받았는데 엄마는 슬픈 눈을 한다. 그 얼굴을 보는 게 힘들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집을 뛰쳐나온다.




나와서 달린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린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 이르자 역류하듯,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온다. 눈에서, 코에서, 입에서 온갖 설움이 솟구쳐 오른다. 얼굴은 그야말로 범벅이 된다. 쪼그려 앉아 꺽꺽대며 울고 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으세요?”


눈앞에는 휴지가 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이 먼저 나가 그 휴지를 받아 눈물도 닦고 코도 푼다.


“감사합니다.”


정신이 들자 고마운 휴지 주인에게 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드는데, 눈이 마주친다. 아니, ‘눈’이 있지는 않으니까, 무언가 보인다고 하자. 그러니까, 내 시야엔 돌멩이가 보인다. 엄마의 것보다 조금 더 크고 뭘로 닦았는지 표면이 아주 매끈한 돌멩이. 그 돌에는 빨간색 끈이 묶여 있다. 강아지가 산책할 때 입는 가슴줄과 비슷하게 생겼다.


눈앞의 광경을 의심하며 끈을 타고 시선을 위로 올린다. 끝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고 그걸 한 여자가 잡고 있다.


“괜찮으세요? 많이 속상한 일이 있었나 봐요. 자.”


여자가 휴지를 몇 장 더 뽑아 건넨다. 홀린 듯이 휴지를 받아 드는데,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이 말이 나온다.


“이름이 뭐예요?”


아뿔싸. 나는 그렇게 말해놓고는 당황해서 손으로 입을 막는다. 왜 이런 말이 나온 거지. 너무 견주에게 하는 질문이었어. 이름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어머, 초롱이예요. 예쁘죠? 감사해요.”


여자는 진심으로 고마운 표정을 지으며 초롱이에게 가자고 한다.




여자가 초롱이를 끌며 사라진다. 초롱이는 바닥에 긁히지 않도록 한 건지, 작은 바퀴가 달린 판에 오른 채로 뽈뽈뽈 끌려 사라진다. 나는 초롱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리가 저리는 찌릿한 감각에 퍼뜩 정신이 든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나름 논리적으로 해석하려고 애쓴다.


'그래, 어딘가 아픈 데가 있나 보구나. 하여간.. 요즘은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니까.'


미친 여자에게 지나친 관심을 준 것 같아 괜한 짓을 했나 싶다. 모르는 사람이 베푸는 호의는 함부로 받는 게 아닌데 방심했다.


행여나 다시 마주칠까 싶어 부리나케 일어나려는데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 쥐가 난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 통에 열심히 주무르던 도중, 한 커플이 나를 지나친다. 순간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 황급히 뒤를 돌아본다. 여자가 품에 제법 큰 돌을 꼭 안고 남자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멀어진다. 나는 그 둘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나도 모르게 아픈 다리를 일으켜 부리나케 쫓아간다.


“저.. 저기요!”

“네?”


웬 모르는 여자가 다급히 어깨를 두드리자 커플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그 돌.. 그 돌 혹시..”


나는 이상한 돌을, 아니 사람을 또 보았다는 충격과 내가 진짜로 이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버렸다는 당혹감에 그들 못지않게 당황해 두 팔을 허우적 댄다.


“.. 뭐예요?”


겨우 입에서 나온 말이 고작 이거라니. 바보 같은 질문이 마음대로 튀어나오는 내 입을 막아버리고 싶다는 자괴감이 들면서도 나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이 궁금해 안달이 난다. 대체 뭘까. 저 돌이 뭐길래 저렇게 안고 다니는 걸까.


“아..”


여자는 망설이다가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나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큰 잘못을 했다는 죄책감에 안절부절못한다. 남자는 괜한 걸 왜 물어보냐는 듯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저희 보미가 좀 아파요.. 앞으로 얼마나 더 산책을 할 수 있을지 모른대요. 할 수 있을 때 바깥공기라도 많이 맡게 해 주려고요.”


여자는 당황스러움과 미안함, 혼란스러움이 함께 섞여 있는 얼굴을 한 내게 고개를 숙이며 돌아선다. 눈물을 훔치는 여자의 어깨를 감싸며 따가운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는 남자와 함께 여자가 사라진다. 나는 여자의 어깨에 올렸던 손을 여전히 공중에 띄운 채로 멍하니 서 있는다. 보미? 아파?



어지럽다. 갑자기 아지랑이가 피는 듯이 시야가 상하좌우로 일렁이고 시간이 늘어진 듯 주변이 천천히 움직인다. 소리가 점점 희미해지고 삐-하는 소리를 끝으로 정적. 그러다가 테이프가 빨리 감기는 것처럼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온다. 경적 소리, 차가 지나가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그러나 일상적인 소음은 마치 처음 듣는 것마냥 어딘가 다르게 느껴진다.


휘이잉- 바람에 날아온 전단지가 발밑을 배회한다.


'<돌마카세>

드디어 **시에 돌마카세 상륙!

우리 아이 입맛에 맞는 명품 코스 요리’


주변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씨네멩>, <카페 도르>, <꽃잎 멩치원>.


사람들이 웃는 소리에 주변을 둘러본다. 제각각 다른 크기와 모양의 돌들이 초롱이처럼 줄에 묶이거나 보미처럼 안겨 품에 지나간다. 간혹 어떤 돌은 수레를 타고 있고, 어떤 돌은 썰매를 타고 있기도 하다. 밀짚모자를 쓰고 원피스를 입은 돌도 있고, 그중 하나는 명품 브랜드에서 나온 작은 가방을 메고 있다. 스타일과 패션 역시 다양하다. 그것들에게 말을 걸고 쓰다듬으며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길을 거닌다.




내 눈을 의심한다. 손이 떨리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머리를 부여잡고 현실을 부정하려 세차게 흔든다.


‘거짓말이야.. 이럴 순, 이럴 순 없어.’


그러나 아무리 눈을 떴다 감고 비벼봐도, 뺨을 때리고 볼을 꼬집어 봐도 눈앞의 장면은 변하지 않는다.


실로, 하루아침에, 바야흐로 '돌멩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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