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00'의 시대(22)

어느 날, 돌멩이 동생이 생겼다 1

by 향연

“무슨 말이야?”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나는 설마 하는 마음에 다시 묻는다.



“나한테 뭐가 생겼다고?”


어쩐 일인지 엄마는 태연한 표정이다. 아니 뭐랄까, 태연하다기보다는 아무 표정도 떠오르지 않은 말간 얼굴이다.


너 어렸을 때 동생 갖고 싶다고 졸랐잖아.


“그건 사람 동생이고. 그리고 어릴 때 무슨 말을 못 해.”


말끝에 한숨이 섞인 실소가 절로 묻어난다. 어릴 땐 하도 엄마가 집에 없었으니까 그렇지-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걸 겨우 참는다. 내뱉지 않은 말이 들렸는지 엄마는 한참 동안 입을 닫는다. 내 시선은 끈질기게 엄마의 입술을 응시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엄마는 입을 몇 번 달싹인다.


.. 어쨌든 키우기로 했으니까 그냥 반갑게 맞아 줘.


고민하다 한다는 말이 겨우 그거라니. 내가 정말 반가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이가 없다. 너무 황당해서 혹시 이게 꿈인가 싶다. 나는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실소를 참지 못하고 그만 소리 내어 웃어버린다. 배꼽을 잡고 눈물이 나올 때까지 멈추지 못한다.


아하하. 푸흐흡. 푸하하하.

웃으면 안 되는데. 이건 전혀 웃을 상황이 아닌데.



나한테 동생이 생겼단다.

그것도 사람이 아닌 동생이.


더 심각한 건 그게 동물도 아니고, 식물도 아니고, 무려 ‘돌멩이’라는 거다. 살아있지도 않은, 길에 널브러져 있는 그 ‘돌멩이’ 말이다.


사람도 아닌 게 무슨 동생이야. 적어도 강아지는 돼야 선심 쓰듯 동생 삼아 줄 수 있을 것 아닌가. 아니, 애초에 돌멩이를 집에서 왜 키우냔 말이다. 키운다는 표현도 이상하지, 왜 집에 ‘놓냐는’ 말이다. 흙과 정체 모를 무언가를 묻히고 어디에서 구르다 온 건지조차 알 수 없는 ‘돌’이란 건, 집에 있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특히 '우리 집'엔. 화분을 장식하거나 어항에 넣는 용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엄마. 혹시 요즘 많이 힘들었어? 스트레스받았어? 아니면 심심해?”


내 말투가 날카로워진다. 화가 난다. 안 그래도 피곤하고 힘든데 엄마까지 나한테 왜 그러냐며 짜증을 내려다가 문득 걱정이 된다. 혹시 그때가 온 건가 싶어서다.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데.


“엄마, 우리 병원 가서 검사해 볼까?”


나는 엄마가 치매인가 의심한다. 꽤 합리적이다. 워낙 자주 깜빡깜빡하는 데다 할머니도 치매가 빨리 왔으니까. 물론, 알고 있다. 얼마 전 대기업 회장이 돌멩이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겠다고 발표해 세간이 떠들썩했었지. 근데 그건 재벌들의 이야기다. 돈이 남아도는 재벌이면 나도 나무에게 집 한 채 사줄 수 있다. 그리고 재벌이 돌멩이에게 상속을 하든 의자랑 결혼을 하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들의 세계니까.


근데 이건 이야기가 다르다. 너무나 평범한 사람인 엄마는 지금 돌멩이에 인격을 부여하고, 심지어 그것을 ‘가족’으로 대할 것을 내게 요구하고 있다. 아니, 강요하고 있다. 이건 일종의 폭력이다.



“엄마, 다시 생각해 봐.”


회유 작전으로 들어간다. 낮은 목소리로 애원하듯 엄마의 팔을 붙잡고 살짝 흔들며 얘기한다.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자고 설득해도 집에 식물을 들이자고 구슬려도 통하지 않는다. 엄마는 돌멩이를, 그것도 꼭 ‘그’ 돌멩이를 키워야겠다고 말한다.


설마 어디서 족보 운운하는 돌멩이를 비싼 돈 주고 사 온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사기를 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뭔데, 그 돌멩이가 그래서 어떤 건데. 봐봐.”


나는 관대한 척 한발 물러서는 듯한 전략으로 넘어간다. 엄마가 어디에서 돌을 구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길에서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돌멩이일 뿐임을 강조해 엄마가 속았고 틀렸다고 설득하기로 한다. 엄마는 조금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뭇 비장하게 빨간 보자기로 싸인 상자를 가져온다.


일단 보자기는 매우 고급스럽게 생겼다. 다소 지나치게. 좋아, 무늬도 너무 화려하고. 이 역시 사기를 위한 장치 중 하나였을 거라 생각하며 나는 눈을 날카롭게 뜨고 그 상자를 노려본다.


뭐가 나오는지 한번 보자. 엄마가 돌을 꺼내는 동안 나는 어떻게 꼬투리를 잡을지 재빠르게 머리를 굴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긴장이 된다. 엄마가 보자기를 조심스럽게 풀자, 무늬가 아닌 진짜 나무로 만든 것 같은 상자가 나온다. 앞쪽에 있는 금색 걸쇠를 열자 문제의 ‘그’ 돌이 모습을 드러낸다.


설악산에서 온 거야. 울산바위가 모암이고.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깎이고 부서지면서 떨어져 나온 거지. 참 예쁘지.



엄마의 말에 나는 더 기가 찬다.


그건, 정말, 지극히 평범하게 생겼다.


방금 내가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강조해서 말한 게 제발 느껴졌길 바란다. 정말 너무 평범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다. 꼬투리를 잡을 것도 없이 정말 그냥 길가에서 발에 차이는 무수한 돌 중에 하나잖아.


“엄마가 봤어?”


나는 왠지 모르게 설움이 울컥 치민다. 일단 흘러나온 감정은 끓는 냄비처럼 걷잡을 수 없이 세차게 날선 말이 되어 입에서 마구 쏟아져 나온다.


“울산바위에서 나온 건지 길에서 주워 온 건지 어떻게 알아. 엄마가 직접 봤냐고. 아니 애초에 울산바위를 본 적이 있긴 해?”


진주야, 그건 중요하지 않아. 엄마의 차분한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이거 사기야, 엄마. 바보야? 이렇게 뻔히 보이는 수에 속아 넘어갔어? 이거 얼마 줬어? 참 돈도 많다. 나라도 팔겠어. 엄마 같은 사람들이 다 살 텐데. 돈 벌기 참 쉽다 그치.”


너무 빠르게 토해 내듯 말해서인지, 감정이 격해져서인지 숨이 찬다.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애써 누른다. 나한테나 더 잘해주지. 나나 더 신경 써주지. 나는 항상 엄마가 필요했는데. 상처는 내가 받았는데 엄마는 슬픈 눈을 한다. 그 얼굴을 보는 게 힘들어 나는 집을 뛰쳐 나온다.



나와서 달린다.


숨이 턱 끝에 차오를 때까지 달린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 이르자 역류하듯, 참았던 울음이 솟구친다. 눈이며 코며 입에서도 온갖 설움이 흘러 나온다. 쪼그려 앉아 꺽꺽대며 울고 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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