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돌멩이 동생이 생겼다 4
아직 5월이지만 벌써부터 여름 느낌이 나는 후덥지근한 공기 속을 가른다.
짙은 풀냄새와 함께 공기 중에 살짝 남아 있는 습기가 함께 느껴진다. 내 몸이 이동하며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를 살짝 띄우고 뒤섞어 한줄기 바람을 만든다. 그래도 아직까지 얼굴에 닿는 바람은 조금 시원하다.
평소였다면 이런 것들을 느끼며 그저 러닝을 하기에 딱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풍경 감상 따위는 사치다. 내 머릿속은 오직 엄마의 만행을 멈추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수많은 돌들, 그 사이에 섞여 있는 사람들. 눈으로 보고도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생경한 풍경들은 애써 못 본척한다.
아무렇지 않게 그것들을 지나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조금 더 빨리 움직이는 것뿐이다.
저 장면이 지금 우리 집에서도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심장이 터질 듯하고 다리가 아파와도 걸음을 멈추지 못한다.
달린다. 약 한 시간 전 배신감과 슬픔, 어쩐지 조금은 억울한 마음으로부터 도망쳐왔던 그 방향으로, 정확히 그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번엔 간절함과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감, 이 모든 것이 아직 믿기지 않는 일말의 의심을 모두 가지고.
이렇게 목구멍에서 비릿한 피맛이 올라올 때까지 달려본 게 얼마만이던가. 어렸을 땐 가볍게 날아다녔던 것 같은데. 무거워 축축 처지는 몸이 이전과 확실히 다르다고 느끼며 어떻게든 그걸 끌고 최대한 빨리 가보려고 이를 악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워 4층까지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손이 떨리는 탓에 비밀번호를 계속 틀려 결국 도어락 경보음이 울리고 만다. 누구인지 이미 알지만 의례적으로 묻는 듯이 누구세요-하는 소리가 나더니 인기척과 함께 문이 열린다. 엄마가 무슨 일이냐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 있다.
뭐야, 비밀번호 몰라? 뭐 하고 왔길래 땀범벅이 됐어.
“엄마, 있잖아.. 지금 밖에... 난리 났어.”
턱 끝까지 차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글자 한 글자 힘겹게 꺼내지만 엄마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말한다. 원래부터 돌멩이가 가득한 세상에 살았던 것처럼 너무나 익숙하고 평온하게.
무슨 난리. 깜짝 놀랐네. 지금 집에 손님 와 있어. 인사해.
“손님?”
허- 딸이 집을 뛰쳐나갔는데 이 여자는 걱정도 안 되나 보다. 그 와중에 무슨 손님까지. 나는 뾰로통하게 입술을 비죽이며,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호흡으로 어기적어기적 신발을 벗는다.
'아니 잠깐만. 혹시 그 손님이.. 뭐 돌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집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려는 순간, 엄마가 보여주었던 돌멩이가 떠오르며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리고 그런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엄마는 손으로 거실 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어, 윤희 이모 있지? 너 어릴 때 자주 만났던. 돌멩이 키운다길래 한 번 놀러 오라 했지. 어쩌다 보니 동네 돌멩이들 친목 모임이 됐네. 들어와.
아, 한발 늦었다. 나쁜 예감은 늘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이미 온 걸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나는 땀범벅이 된 채로 엄마 몰래 눈을 흘기며 거실로 들어선다.
오늘 모인 돌은 셋이다.
아차, 이모들의 말에 따르면 석주들은 '돌'이라고 부르는 걸 싫어한다. 마치 다 큰 개도 ‘강아지’라고 불러야 더 예뻐하는 느낌이 들듯, 돌도 ‘돌멩이’라고 불러줘야 좋아한단다.
하.. 어쨌든 먼저 우리 엄마의 돌멩이.
나랑 ‘주’ 돌림으로 짓고 싶다면서 ‘은주’라고 부르겠단다. 그래,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엄마 돌인데. 어차피 하지 말라고 해도 안 들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놔두자. 이름만큼 반짝이길 기대했겠지만 은주라고 부르기에는 전혀 은 같지도, 구슬 같지도 않다. 아까 내가 말해서 알겠지만 그냥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칙칙하고 울퉁불퉁하면서 못생긴 돌멩이. 딱 그거다. 쟤를 내 동생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모욕감이 들 정도로 볼품이 없다. 쉿, 그래도 아직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겠으니 비밀이다.
엄마가 말하는 은주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착하고 성실하다. 무언가를 시켰을 때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적이 없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면 늘 귀 기울여 들어준다. 둘째, 속이 깊다. 입을 가볍게 놀리는 법이 없고 우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한 후에 의사를 표현한다. 셋째, 자기 할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주체적인 성격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마지막으로, 부모가 해주지 못한 것이 있어도 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해결해보려고 한다. 나랑 비슷하네. 자매라고 그렇게 설정한 건가. 아, 두 번째 '차분하다'는 제외하고.
두 번째 돌은 엄마가 말한 윤희 이모의 외동딸 보송이.
윤희 이모는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고 싶어 갖은 노력을 했단다. 그러나 결국 출산을 하지 못해 한동안 깊은 상실에 빠져있었다. 이모는 긴 고민 끝에 보송이를 데려왔고, 이후로는 늘 즐겁고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며 말하던 도중에 눈물을 훔쳤다. 신기하게도 겉표면을 만져보면 실제로 복숭아 껍질을 만지듯 보송보송한 느낌이 든다. 진짜 어떻게 한 걸까..? 아무래도 무슨 스프레이를 뿌린 게 아닌가 싶다.
이름값을 하기 위해선지 보송이의 물건들은 전부 그런 재질로 맞춰져 있다. 보송보송한 털실로 짜인 스웨터를 입고 분홍색 니트 모자를 썼으며 가방, 신발, 심지어 선글라스까지 털실로 만들어진 제품을 쓴다. 윤희 이모는 보송이가 지금 앉아 있는 방석 역시 보송이만을 위해 특별히 주문제작된 거라고 설명한다.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방석 위에 ‘까슬한 건 절대 안 돼’라는 문구가 자수로 수놓아져 있다.
보송이는 복숭아 껍질처럼 여려서 상처를 잘 받기 때문에 조심스레 말을 걸어야 한다. 윤희 이모는 부드럽게 보송이를 쓰다듬으며 따스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하곤 한다. 대충 여기가 어디고, 그 앞에 앉아 있는 나는 누구고, 왜 여기에 우리가 함께 있는지 등을 설명한 것 같다.
세 번째 돌은 아랫집에 사는 미영 이모의 쌍둥이 루나/루미.
미영 이모는 타로와 별자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직업마저 대기업 연구원에서 타로 카페 주인으로 바꿀 정도니 말 다했다. 루나와 루미는 쌍둥이 돌로, 그중 루나는 표면에 흰 초승달과 같은 무늬가 있다. 이모 표현을 빌리자면 누가 달 조각을 몸에 박아놓은 것 같다. 그래서 이름이 루나다.
뭔가 좋은 기운이 필요한 날이면 미영 이모가 꼭 방문하는 장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이전에는 못 봤던 주먹 두 개 만한 크기의 돌을 발견한 것이다. 딱 보니 느낌이 좋아 이모는 그 돌을 집으로 데려왔고, 다음날 아침 돌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있는 걸 목격했다. 그리고 갈라진 단면 한쪽에는 흰 초승달 무늬가 있었다고 한다.
마치 돌 안에 핵처럼 하얀 물질이 담겨 있었는데, 바로 그 부분이 끝나는 지점에서 정확히 돌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한쪽에만 흰 무늬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초승달 모양'으로 말이다. 대체 그 확률은 얼마나 될까?(솔직히 말하면 난 여기서부터 미영 이모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고 확신했다. 어쩌면 돌을 파내 초승달 모양으로 뭔가를 주입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그래서 이모는 두 개의 돌이 달이 점지한 쌍둥이라고 믿으며 각각 루나, 루미라고 이름 붙였다. 달의 빛과 달의 어둠. 둘은 함께 있어야 완전해질 수 있다고 이모는 설명한다. 그래서 이모는 쌍둥이 부모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온갖 쌍둥이 육아템들을 갖추고 있다. 물론 '돌' 쌍둥이 말이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은 옷을 입은 쌍둥이들을 보면 늘 의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 쌍둥이들에게도 각자가 좋아하는 서로 다른 옷을 입으며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자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물어봤을 때도 그들의 답은 늘 같았다. "똑같은 옷 입기 싫은데 엄마가 입으래요."
그걸 들으면서 귀여우니까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쌍둥이를 늘 복사 붙여 넣기 한 것처럼 똑같은 스타일로 입히는 것을 고수하는 건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고 쌍둥이 돌을 보자 그 생각은 더 기이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게 아니라 쌍둥이 유모차에 타 색감과 무늬 등이 비슷한 커플룩 차림을 하고 있는 돌을 본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으려나. 어쨌거나 돌 쌍둥이가 주는 인상은 예상했던 것보다, 아니 예상을 하기가 어렵겠구나.. 으레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을 만한' 것보다 꽤 기괴하다고 하자.
네 번째 돌은 동네 꽃집 이모의 막내아들 태양이.
이모는 늘 아들을 갖고 싶었는데 딸만 내리 셋을 낳았다. 태양이를 데려오던 날 드디어 아들을 갖게 되었다며 엄청 기뻐했다고 한다. 태양이는 이름처럼 햇빛을 사랑해서 하루에 몇 시간씩 꼭 일광욕을 해야 한다. 그래서 늘 따뜻하게 데워져 있다. 가끔은 데일 정도로 뜨겁다. 꽃집 이모는 날이 흐리거나 눈비가 오는 날엔 전기장판에라도 올려 뜨끈하게 데워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모 말에 따르면, 태양인 온도가 내려가면 기분이 많이 다운되기 때문이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야. 아주 까다로운 도련님 스타일이라니까.”
이모는 웃으며 그래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들이 있으니 든든하고, 밤에 산책을 해도 함께라면 전혀 무섭지 않다며 좋아한다. 또 헬스장에 같이 가면 운동도 더 잘되는 느낌이고, 아들 눈치가 보이니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어 몸이 좋아졌다며 자랑도 한다. 잘생기다 못해 눈부신 우리 왕자님, 이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아들 좋다는 게 이런 건가 봐.”
꽃집 이모는 호호호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여기까지 각자 사연 있는 돌들이 모였으니, 밖에서 겪은 일들이 아무리 충격적이었다고 해도 우리 집 풍경에 비할 바는 못 되는 것이다. 이곳이야말로 진짜 괴상한 돌들의 세상이었다. 풍자와 비판적 시각을 과하게 넣어 만든 한 편의 디스토피아 영화를 보는 것 같달까. 그러나 멈추기엔 러닝타임이 이미 너무 많이 지나버렸다.
“어 맞다, 맞다.”
미영 이모가 무언가 생각난 듯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말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있는 건가 싶어 귀를 쫑긋하던 나는 이어지는 말에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루나랑 루미랑 성격이 완전 반대야. 한 번 들어 볼래?”
나는 또 시작이구나 하는 표정으로 체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미영 이모라면 틀림없이 돌멩이를 키우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워낙 이런 감성을 좋아하니까. 그래도 ‘쌍둥이’ 돌과 그 성격까지 만들어 낼 줄은 몰랐다. 역시 늘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버리는 사람이다.
“루나는 조용한 아이야. 말 그대로 관찰자 스타일.”
첫째 루나는 내성적이고 신중하며 사색을 즐긴다. 말보다 생각이 많고, 감정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으며 속으로 삭이는 편이다. 책 읽기와 명상을 좋아하며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어두운 회색빛이 돌며, 자세히 보면 보라색 광택이 있어 달빛에 반짝반짝 빛난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해 꼭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단정한 무채색의 옷을 좋아하며, 가끔은 보라색 체크무늬를 원하기도 한다.
“루미는 완전 반대지.”
미영 이모는 웃음을 참으며 말을 잇는다.
“아주 에너지 넘치는 활동가야.”
둘째 루미는 밝고 장난기가 넘친다. 외향적이고 사람 일에 참견하는 걸 즐기며, 티비를 틀면 언제든 무엇을 하고 있었든 바로 진지하게 시청 모드에 들어간다. 예쁜 옷을 입어 보는 걸 좋아하며, 딱히 감각은 없어 보이지만 나름 패셔니스타를 지향한다. 이모가 타로점을 볼 때면 꼭 타로카드를 섞을 때부터 곁에서 구경하려 하곤 한다. 하나의 돌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첫째와 달리 조금 밝은 크림색을 띠며 표면에 무광펄이 있어 은은하게 반짝인다. 루나와 달리 레이스와 리본이 달려 있고 화사한 색감을 가진 공주풍의 옷을 좋아한다.
“쌍둥이들 옷 똑같이 입히는 건 이제 유행 지난 거 알지? 요즘은 성격에 맞게 자기 스타일로 입히는 게 대세야.”
말과는 달리 누가 봐도 쌍둥이라고 생각할 거의 비슷한 양말을 신기며 미영 이모가 말한다. 이제 루미에게 레이스가 잔뜩 달린 겉옷을 입히려는데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만 루미가 데굴데굴 굴러간다. 그러다가 다른 돌들 사이, 정확히 가운데에 있는 빈 공간으로 부드럽게 파고든다. 그런 루미를 보며 미영 이모는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호탕하게 웃는다.
“아유, 얘 봐. 얘는 어딜 가든 꼭 이렇게 주목을 받아야 직성이 풀린다니까. 절대 혼자 못 있어. 타고난 관종이야, 관종.”
미영 이모의 말에 다들 깔깔거리며 웃는다. 아, 이 분위기 적응 안 된다. 이제 다들 가겠다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피곤하다고 먼저 인사를 드린 후 방으로 들어온다. 조용한 방에 들어오니 이제서야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이모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는 소리에 한숨 돌리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다. 어쩐지,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예감이 든다. 앞으로 더 큰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불안함이 자꾸만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